소설방/장군의 아들

제1부 黑龍의 트림-대결 3회

오늘의 쉼터 2014. 8. 24. 15:41

제1부 黑龍의 트림-대결 3회

 

 

엄동욱은 나타난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봐, 아우들! 새 마적이 태어났으니 우리 축배를 들자구!”

마적은 엄동욱이 승리한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학생패를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그는 입가에 패자 같지 않은 여유 있는 미소까지 띠었다.

패자는 웃었지만 그러나 승자는 시무룩하기만 했다.

(일부러 져주었는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는 그처럼 완강하게 버티던 힘이 어떻게 그처럼 속절없이

단숨에 무너질 수가 있단 말인가.

학생패 두목으로서의 체면을 그는 생각해 준 것이다.

엄동욱은 마적의 협객다운 아량과 의리가 고마웠다.

“선배님!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꾸벅 고개까지 숙였다.

꾸밈없이 터져 나온 진정이었다.

“자아, 맥주를 가져와! 형제의 의(誼)를 맺는 축배를 들게!”

엄동욱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뻑 문질러내면서 소리쳤다.

엄동욱이 마적을 꺾었다는 소문은 서울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학생패는 물론 망나니패 사이에도 그것은 하나의 경이로서 받아들여졌다.

“엄동욱이가 장사는 장사야! 마적을 거꾸러뜨렸다니…….”

“마적이 스스로 마적의 이름을 내놓고 엄동욱을 새 마적으로 모시기로 했다더군”

“새 마적은 힘도 세지만, 배운 사람답게 도량도 있거든…….

싸움에서 이기고도 선배에 대한 의리를 지켜,

마적을 형으로 모시기로 했다는 거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때부터 30년대 중반까지 종로·관철동 일대의 주먹 세계는

구마적(舊馬賊)과 신마적(神馬賊)의 양대 세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이렇다 할 마찰 없이 공존 체제를 유지해 갔다.

신마적이라고 하면 곧 엄동욱을 가리켰고,

신마적패라고 하면 엄동욱을 중심으로 한 학생패가 주축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구마적패는 학생패가 아닌 종래의 망나니패를 총칭해서 그렇게 불렀지만,

구마적이 그 두목 행세를 하지는 못했다.

주먹으로서야 그에게 맞설 만한 자가 없었으나,

역시 조직력도 통솔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구마적은 그후로도 가끔 종로 일대에 얼굴을 내밀기는 하였으나 마적 칭호를 양도한 이상,

되도록 이를 삼가는 듯 행차가 뜸했다.

그 대신 동대문 시장이나 유곽가(遊廓街)인 ‘신마찌(新町)’로 방향을 바꾸어

주로 ‘낙화유수’·‘꼴뚜기’ 등과 어울렸다.

낙화유수나 꼴뚜기는 힘은 좋았으나 질이 좋지 않아, 망나니패에서도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당대를 풍미하던 마적이 이런 부류와 어울리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김두한은 아직 우미관의 매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열다섯이라고 하지만 이미 소년의 티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약간 얽은 그의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하였다.

우람하게 큰 키와 체격은 어지간한 청년을 능가했다.

그 작은 눈을 숫제 감아버릴 정도로 눈웃음을 치며 웃을 때만이 소년 같았다.

게다가 힘이 장사였다.

그 자신도 자기가 어느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채 온몸에 힘을 주면 재봉틀로 박은 실밥이 후드득 뜯겨,

어깨의 이음새가 찢겨 나갈 정도였다.

매점의 일은 벅찰 것이 없었다.

크고 넓은 나무 상자에 메이지(明治) 밀크 캐러멜, 라모데(사이다의 일종),

풍미당에서 받아온 국화빵 등을 담아서 파는 것이었다.

극장 공연이 끝나는 5분간의 휴식 동안 객석을 누비며 팔고 다녔다.

‘심청’과 둘이서 팔았다.

벌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직업에 만족했다.

스스로 번다는 것에 대견함을 느낀 것이다.

아무리 주먹이 강하다 해도 무위도식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직업을 찾아서 호구지책을 마련해야만 하는 것이다.

배운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에게 극장 매점원은 입에 맞는 떡이었다.

보다 어렸던 악동 시절부터 그는 유난히 극장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극장의 선전 간판을 메고 다니는 가두 선전원이 되었겠는가.

극장에서는 새 프로를 상영하게 되면 선전원을 사서 둘이서 간판을 들고 다니게도 했고,

혼자 지고 다니게도 하였다.

그 앞뒤로는 나팔을 불기도 하고, 북을 치기도 하는 또 다른 선전원이 따랐다.

이 선전원을 흔히 ‘마찌마와리’라 했다.

우미관에서는 이 마찌마와리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면

현금 10전과 5전짜리 극장표 한 장을 주었다.

주로 종로 일대와 낙원동·인사동·관훈동·안국동을 거쳐 청진동을 돌았다.

김두한에게는 10전의 현금도 요긴한 것이었으나 극장표도 소중한 것이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똑같은 프로를 몇 번씩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마찌마와리로서 한 바퀴 돌고,

10전의 현금과 극장표 한 장을 타가지고 우미관을 나왔다.

배가 고파서 막 호떡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5전짜리 호떡은 쭉 찢으면 꿀물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것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미리부터 입맛을 다시며 막 호떡집으로 들어서려는데,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패거리들이 있었다.

대여섯 명쯤 되었다.

보아하니 더러는 관철동 골목의 낯익은 똘마니들이었다.

앞장선 훤칠한 키의 청년이 말했다.

김두한보다 서넛은 윗길인 열 여덟 살쯤은 되었을까?

“임마……, 그 극장표 이리 내놔!”

“싫다면?”

“맛 좀 봐야 알겠어?”

주먹이 날아든 것은 동시였다.

바람을 끊는 듯한 날쌘 주먹이었다.

그러나 윽! 외마디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진 것은 상대방이었다.

그의 주먹이 김두한의 턱에 터지기도 전에 어느새 김두한이 가한 일격이

먼저 상대의 턱에서 작렬한 것이다.

길바닥에 길게 뻗은 상대의 모습은 서 있을 때의 훤칠한 키보다도 더 길어 보였다.

오래간만에 시도해 본 자기 주먹의 위력에 김두한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웃으면 감겨버리는 작은 눈으로 남은 졸개들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서 있더니,

그중의 굵은 것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이들은 김두한을 얕잡아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얕잡아보면 얕잡아본 것만큼,

넘봤으면 넘본 것만큼 손해를 볼 따름이었다.

그는 뒷걸음질칠 것도, 그 자리에서 물러설 것도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그의 발이 다시 땅에 닿았을 때는

벌써 두 놈이 똑같이 땅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뛰어오른 것과 동시에 왼쪽 발은 한 놈의 턱에,

오른발은 다른 한 놈의 명치에 정확하게 꽂은 것이었다.

“으악!”

“으윽!”

둔중한 비명이 남았을 뿐이었다.

자기가 직접 싸우는 것은 싫어하지만 남이 싸우는 건 구경하기 좋아하는 구경꾼들이

삽시간에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남은 졸개 하나둘이 후닥닥 골목 안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그 뒤를 쫓지 않았다.

“임마…… 극장 구경 하고 싶음 마찌마와리라도 해…….”

나동그라져 있는 놈들에게 듣건 말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뿐, 숨을 헐떡일 것도 없었다.

옷에 묻지도 않았고 묻었어도 털 필요가 없는 허름한 차림새의

그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듯 하면서 바로 앞 호떡집으로 들어갔다.

구경꾼들이 호떡집 안을 기웃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그 싸움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 것이다.

김두한은 잠시 생각했다.

이 경우, 싸움 현장에서 멀리 피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패거리를 갖고 있는 똘마니들이 오야붕(두목) 등

다른 힘센 놈들과 함께 복수를 위해 다시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망을 친다는 것은 비겁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차피 우미관 골목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마찌마와리를 계속해야만 하니까…….

안으로 들어간 그는 피하는 대신 거리 쪽을 향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떼거리가 몰려들더라도 나름대로의 채비를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호떡집 주인이 주문을 받기도 전이었다.

호떡집 문이 좁다고, 바라진 어깨를 비스듬히 옆으로 하고 들어서는 것은 쌍칼이었다.

유행인 리젠트 머리에 기름을 자르르하게 바른, 료마에(兩前: 더블 재킷) 양복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늘씬한 키와 딱 바라진 어깨에 비해 얼굴이 좀 작았다.

그 불균형으로 하여 동체와 머리를 따로따로 만들어 올려놓은 눈사람 같았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이 매섭고 섬뜩했다.

김두한은 그가 구두 기술자로, 종로 바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명한 ‘주먹’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몰랐어도 그 체구와 인상만으로 짐작하고도 남았다.

지독한 독종이란 말도 들었지만, 어떻게 독종인가는 아직 몰랐다.

그가 싸우는 것을 본 일도 없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쌍칼과 대항해서 싸울 수 있다고는 애당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만용 이전의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저 당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얻어터질 때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쌍칼에 맞는 것이 명예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도 그는 쌍칼의 리젠트 머리와 료마에 차림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머리 한가운데서 가르마를 타고, 양쪽 옆머리를 길게 길러 머리 뒤까지 닿게 하고,

기름을 처덕처덕 발라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형이다.

거기다가 료마에 차림의 모습은 정말 신사다웠고 멋이 저절로 났다.

그는 자기의 텁수룩한 머리가 길어지고, 양복을 차려입을 여유 있는 나이가 되면

꼭 한 번 료마에 차림에 리젠트 머리를 해야겠다고 엉뚱한 생각을 굴렸다.

그러나 쌍칼은 전혀 험상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의외로 부드러운 표정에 마음을 놓은 김두한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미관에서 마찌마와리를 하고 있어요.”

“그래? 처음 보는데?”

“얼마 되지 않았어요.”

“너 몇 살이야?”

“열넷이에요.”

“열넷?”

쌍칼은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싸움은 어디서 배웠어?”

“배운 일 없어요.”

“배운 일이 없는데 무슨 싸움을 그렇게 잘하지?”

“타고났어요…….”

씩 웃는 김두한의 실눈이 간들거렸다.

“뭐? 타고났어? 자식, 헛헛!”

어이없는 듯 껄껄 웃는 쌍칼은 소문처럼 독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열네 살이라! 운동을 하면 쓸 만하겠구나. 운동을 시켜줄게, 날 따라와!”

“호떡을 먹구요.”

“허헛, 녀석! 좋다! 나도 오랜만에 호떡 한 장 먹어보자!”


거짓말 보태서, 작은 방석만한 크기의 따끈따끈한 호떡을 김두한은 석 장씩이나 먹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내지 않았다. 거저 먹은 것이다.

그렇다고 쌍칼이 돈을 낸 것도 아니다.

호떡집 주인은 그저 먹어준 것만도 고맙다는 듯 ‘띵호…… 띵호……’,

‘셰, 셰……’를 연발하면서 허리까지 몇 번 굽실거렸다.

쌍칼은 들리지도 않는 코 먹은 목소리로 입 안에서 몇 마디 중얼거리며

손가락 두어 마디를 간당 흔들어주었을 뿐이었다.

의젓하게 대접받으면서 공짜로 먹을 수가 있는 세계.

김두한은 그것이 그처럼 신묘하고 신통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거다…….’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자신의 인생의 나아갈 바의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주먹의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세계,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그 세계를 개척해 놓고 있는 쌍칼이 더 이상 부러울 수가 없었다.

기름이 번드르르하게 흐르는 그의 리젠트 머리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이튿날부터 그는 쌍칼의 소개로 우미관의 매점원이 되었다.

쌍칼은 정말 종로 바닥에서 얼굴도 넓었다.

우미관 주인인 일본인 와까사끼(若崎)까지 알아, 단 한마디의 소개로

거뜬히 우미관의 매점원을 시켜준 것이다.

그것은 아직 어린 소년의 눈으로는 틀림없는 경이였다.

(나도 멋진 협객이 되는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불한당이 아닌,

피와 눈물이 있고, 의리와 정의가 있는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는 용솟음치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느꼈다.

“하지만 난 너무 무식해!”

교동보통학교(校洞普通學校) 1학년 2학기 때 학교를 뛰쳐나온

자신의 학력이랄 것도 없는 학력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언문(諺文: 국문)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고, 한자로 이름도 쓸 줄을 몰랐다.

쇠금(金), 말두(斗)까지는 간단해서 쓰기가 좋았는데,

한수한(漢)에 이르면 획이 하나 더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하기만 해서

이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듯 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풍미당으로 국화빵을 받으러 갔다.

학생들의 소굴과 같은 풍미당은 언제나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가방이 항상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책가방을 맡겨놓고 우동이며 국화빵을 외상으로 먹는 것이었다.

주인은 책가방을 맡고 빵이며 우동을 건네주었다.

때로는 모자도 맡고, 콘사이스도 맡았다.

빵이나 우동을 외상으로 주는 것뿐만 아니라 10전이고 20전이고 대부를 해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것으로 우미관극장 구경을 가는 것이었다.

김두한은 학생들의 그 자유분방함이 또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