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33. 신천지(2)

오늘의 쉼터 2014. 8. 23. 11:59

333. 신천지(2)

 

 

 

 

(1261) 신천지-3

 

 사흘후 아침, 조철봉과 어머니 박여사는 영일이를 저택 근처의 초등학교에 전학시켰다.

 

영일이는 조금 주춤거렸고 불안한 듯 자꾸 아빠와 할머니를 보았지만 엄마를 찾지는 않았다.

 

며칠간 할머니하고 지내면서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담임 선생한테 영일을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면서 조철봉은 세번이나 이마의 땀을 닦았다.

 

집에서 나올 때 담임한테 주려고 10만원권 수표 10장을 넣은 봉투를 갖고 있었는데

 

학교에 도착하기 직전에 최갑중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저기.”

갑중이 망설이더니 작심한 듯 말했다.

“지금 영일이하고 학교 가시죠?”

“응, 다 왔다. 어머니도 같이 계셔.”

“그런데 말씀입니다.”

“뭔데? 빨리 말해.”

“거시기, 혹시 선생 주려고 봉투 준비하셨습니까?”

“아, 당근이지. 근데 백이면 될까?”

그러자 수화구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나더니 갑중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내, 그럴 줄 알고 전화를 드린 겁니다. 그 봉투 주시면 안됩니다.

 

지금은 우리 때하고 달라서 문제가 있습니다.”

“왜? 선생은 모래로 밥 지어 먹나?”

“어쨌든 주지 마세요. 일단은.”

“일단이라.”

“예, 먼저 상황을 보시고, 잘못하면 역효과가 나니까요.”

“그러지, 그럼.”

조철봉의 눈치가 보통 사람하고 같은가?

 

선선히 대답한 조철봉은 결국 담임한테 봉투를 주지 않았지만

 

영일에 대해서 꽤 오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진땀을 흘린 것이다.

 

옆에 앉은 어머니가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더 쏟을 뻔했다.

 

선생이 묻는 영일의 성격이나 취미, 학습 능력까지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

 

거의 대답을 못했기 때문이다.

 

영일의 담임은 30대 초반쯤으로 미모에 날씬한 몸매의 여자였다.

 

그러나 조철봉에게 이은지 선생은 전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앞에서도 이렇게 얼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선생, 참하게 생겼더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생각난 것처럼 말하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너 같은 놈이 그런 여자를 마누라로 앉힐수가 있겠냐? 어림없는 짓이지.”

“나아, 참.”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어머니를 흘겨보았다.

 

어머니는 요 몇년 사이에 부잣집 마나님이 다 되었다.

 

체중이 5㎏이나 늘었다면서 70이 다 된 나이에 헬스에다 사교춤까지 배운다.

 

철마다 단체로 외국여행을 다니고 옷도 백화점에서 브랜드 제품만 산다.

 

그러면서 그렇게 만들어준 자식을 우습게 보다니….

“그 선생보다 백배는 더 나은 여자가 있어요. 어머니.”

그렇게 엉겁결에 말해버린 조철봉의 눈앞에 첫번째로 고영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딸자식 딸린 이혼녀를 어머니가 어떻게 대할지는 뻔하다.

“누구냐?”

어머니가 그렇게 물었을 때는 이미 조철봉의 마음이 변해 있었다.

“그런 여자를 찾을 수 있단 말이지요.”

“내가 매일 영일이 학교 데려다 주고 데려오면서 그 선생 알아봐야겠다.”

작심한 듯 눈까지 치켜뜬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영일이 담임이겠다. 아주 안성맞춤이여.”

“아이구, 제발 어머니.”

조철봉이 사정하듯 말을 이었다.

“좀 내버려 두세요. 당분간은.”

“이놈아, 영일이를 위한 일이여.”

어머니는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1262) 신천지-4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후부터 조철봉은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왔다.

 

해외 출장도 가지 않았다.

 

약속은 낮시간에 했으며 술도 낮에 마셨다.

 

섹스 충동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낮에 다 했다.

 

고영민의 집에도 낮에 찾아갔으며 성남에서 분식집을 차린 최성희도 낮에 만났다.

 

낮에 할 건 다 한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영일이와 함께 지냈다.

 

모두 영일이 때문에 이런 것이다.

 

그렇게 한달반이 지나자 초등학교 2학년인 영일이가 슬슬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할머니한테는 진즉 열었지만 이쪽의 시간이 더 걸린 이유는 서경윤 때문이었다.

 

경윤은 영일이를 붙잡고 아비되는 작자의 험담을 밤낮없이 늘어 놓았던 것이다.

 

오늘도 조철봉은 숙제를 끝낸 영일이와 마주 앉아 바둑을 두었다.

 

영일은 처음 시작할 때 질색을 했지만 본래 제 아비를 닮아 승부 근성이 있었다.

 

며칠 수를 배우더니 저 혼자 바둑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지금은 조철봉한테

 

다섯점을 깔고 막상막하의 실력이 되었다.

“아차.”

호구에 잘못 둔 조철봉이 놀라 다시 알을 쥐었다.

“물리자.”

“안돼.”

영일이 소리치듯 말하더니 조철봉의 알쥔 손가락을 손으로 눌렀다.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일수불퇴야.”

“그런 말이 어딨어?”

“한번 둔 건 물릴 수 없단 말이야.”

“야, 이건 실수였어.”

“실수로 길 잘못 들었다고 역주행해서 나올 수 있어?”

“허, 누가 그런 말 해주데?”

“아빠가 지난 번에 해놓고선.”

“야, 봐주라.”

“안돼.”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굽어보다가 혀를 찼다.

“어째 넌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냐? 바둑도 어린 아들한테 지는구나.”

“아니, 내가 왜?”

조철봉이 어머니한테 대들었다.

“내가 잘하는 일이 없다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하게 하슈?”

“지금 바둑도 영일이한테 지고 있잖어?”

“내가 왜 져?”

“니가 이기면 내가 손에다 장을 지지마.”

그러고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주방에서 간식을 만드는 이모와 친척 아주머니한테로 갔다.

 

그때 힐끗 할머니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었던 영일이 조철봉에게 슬쩍 말했다.

“아빠, 물러줄까?”

“응, 부탁한다.”

정색한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내 체면 좀 봐주라, 인마.”

“어서 알 가져가.”

“고맙다.”

알을 집어내면서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진 조철봉은 숨을 들이켰다.

 

쇼다.

 

수를 잘못 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영일이 기 살리면서 제 아비를 측은하게 느끼도록 쇼를 했다.

 

어머니가 누군가?

 

조철봉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분이 아니신가?

 

그때 영일이가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아빠, 외국 출장 안나가?”

“응? 왜?”

“요즘 만날 집에만 있어서.”

그러더니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나, 다 컸으니까 출장 다녀도 돼. 집에 할머니가 셋이나 있잖아.”

잠깐 말을 그친 영일이가 씩 웃었다.

“내 걱정은 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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