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신천지(1)
(1259) 신천지-1
“도장을 찍으시는 것이 낫습니다.”
변호사 최길수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졌고 탁자 위에 놓인 녹음기를 마치 변이나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그는 방금 1시간 반 분량의 녹음 테이프를 서경윤하고 같이 들은 것이다.
헛기침을 크게 하고 난 최길수는 말을 이었다.
“길게 끌수록 손해 봅니다. 내 경험상,
그러니까 내가 이혼 소송을 맡은 지 올해로 18년이 되었지만 이건 가장 심한 케이스요.
이거 잘못하면 구속됩니다.”
최길수의 시선이 옆에 앉은 이수동에게로 옮아갔다. “여기 이 사장이 때맞춰서 나한테 이 사건을 가져오시지 않았다면 아주머니는 어물거리다 당하게 되셨을 겁니다.”
그러고는 최길수가 다시 머리를 저었다. “여기, 김병문씨는 살인교사 혐의가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이거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간통에다 살인교사 공모 혐의가 돼요.
그럼 아주머니는 적어도 5년은 사셔야 합니다.
김병문씨는 10년쯤 될까? 이거 아주 중죄지요.”
조철봉의 변호사 박규영이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온 것은 오늘 오전 10시경이었다. 박규영은 서경윤에게 녹음테이프와 함께 합의이혼 서류를 가져왔는데 내일 10시까지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경찰에 고발한다고 했다.
서경윤으로서는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같았다.
그래서 박규영이 돌아간 후에 녹음테이프를 틀어보고는 혼비백산했다.
정신이 나가서 오줌까지 찔끔 흘렸는데 이수동을 부른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후였다.
당사자인 김병문한테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도움이 될 인간도 아닐 뿐만 아니라 갑자기 놈과 엮인 현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떠오른 인간이 조철봉의 약점을 캐라고 용역을 준 이수동이었던 것이다.
전세가 갑자기 역전이 되어서 이쪽이 먼저 약점이 잡히기는 했지만 상의 대상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수동이 테이프를 듣더니 이건 법적으로 검토를 해야 한다면서 힘센 변호사한테 가자면서
여기로 데려왔다.
그때 최길수가 말을 이었다.
“도장 찍으세요. 이 사건은 대통령이 나서도 안됩니다.
끌었다가는 큰일납니다.”
변호사한테서 이런 소리를 듣고 버틸 인간은 세상에 없다. 있다면 정신이 어떻게 된 인간이다.
마른 입안에 겨우 침을 모아서 삼킨 경윤이 입을 열었다.
“그럼 아이도 내놓으란 말인가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최길수가 거침없이 말했다. “제주도에서 아이를 옆방에 두고 그런 일을 벌인 증거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이건 사회적으로도 용납이 안되는 일이지요.
법관도 인간입니다.
이 녹음테이프가 불법으로 제작이 되었다고 해도 듣고 나면 분노할 테니까요. 그리고.”
다시 머리를 저은 최길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었다. “만일 매스컴쪽에 이 테이프가 넘어가면 큰일납니다.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한국땅을 떠나야 될 겁니다.”
경윤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 놀람이 가셔지면서 이곳에 왔을 때는 조철봉에 대한 분노로 살이 떨렸다.
그놈은 뒷조사를 해서 이런 테이프까지 만들어 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복수하고, 대항하고 싶었다.
영일이를 데려간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변호사의 말을 들으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윽고 경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럼 변호사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
(1260) 신천지-2
매수, 횡령, 사기, 공갈, 협박 때로는 폭력까지 조철봉이 사용하지 않은 방법이 없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온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그 과정은 무시되었으며 승자는 곧 선이었고 패자는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결국 역사도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는 전리품처럼 정의를 행사했고 불의는 패자의 몫이 되는것을 조철봉은 보아왔다.
인간 조철봉이 정의나 역사 따위의 의식을 품고 행동한적은 없다.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익힌 권모술수에 탄력이 붙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서경윤과의 이혼 작전도 치밀하게 조작했다.
다음날 오후 3시가 되었을때 작전은 종료되었으며 이혼 수속도 완벽하게 끝났다.
조철봉이 한 일은 아파트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윤이 데리고 나오는 영일을
안아온것 뿐이었다.
그러고는 영일과 함께 곧장 어머니와 이모, 친척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일산 저택으로 돌아왔다.
나머지는 최갑중이 변호사하고 다 알아서 처리했다.
경윤이 고용한 이수동과 변호사 최길수까지 갑중이 다 손을 써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만일 경윤이 부르지 않았다면 이수동이 직접 찾아갈 계획이었으므로 함정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이로써 조철봉은 경윤과 두번째 이혼을 했다.
이 이혼으로 경윤은 10억 상당의 아파트와 5억의 위자료를 받았다.
영일이가 성인이 되었을때 만날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주었다.
그러나 김병문은 조금 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병문은 다리를 걸치고 있던 두 여자하고 처참한 결말을 맞았는데 사진과 녹음테이프등
모든 자료가 두 여자한테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여자에 대한 자료는 경윤에게도 배달되었으며 그 결과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경윤이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병문의 행각에 대한 녹음과 기록을 듣게되면 그 배신감은
조철봉에 대한 것보다 더 클 것이 분명했다.
저택의 응접실에 일당이 둘러 앉았을때는 오후 6시경이었다.
상석에 앉은 조철봉의 양쪽으로 최갑중과 박경택, 그리고 변호사 박규영이 앉았는데
모두 큰일을 치른터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불쑥 입을 열었다. 갑중이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장님께서 집에 일찍 들어오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작심을 한 듯 갑중이 어깨를 펴고는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외박도 삼가시고 출장도 될 수 있는 한 줄이셔야 됩니다.”
조철봉은 눈만 껌벅였고 갑중의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그리고 당분간 재혼은 안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결혼을 하시면.”
“알아.”
갑중의 말을 자른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어색한 표정이다.
“걱정 안해도 된다. 그럴 생각 없으니까.
그리고 네 말대로 외박도 안할거다. 출장도 줄일 것이고.”
“그러셔야죠.”
경택과 규영은 잠자코 눈동자만 굴렸다.
그들한테는 거북한 화제인 것이다.
그때 응접실로 영일이 들어오더니 조철봉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빠, 게임 해도 돼?”
“응, 된다.”
반갑게 대답했다가 조철봉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일은 벌써 적응하고 있다.
“어디, 무슨 게임인가 보자.”
조철봉이 영일의 손을 쥐고는 생각난듯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웃음띤 얼굴이었다.
“나, 잠깐 게임하고 올테니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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