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야망(6)
(1209) 야망-11
“죄송해요.”
얼굴을 굳힌 여자가 문으로 다가가더니 손잡이를 쥐고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전 그런 흥정에 익숙하지 못해서요.”
“섹스는 잘 해요?”
“실례할게요.”
“하고 싶지는 않아요?”
조철봉이 다그치듯 물었을 때 문을 열었던 여자가 다시 닫았다.
그러고는 문에 등을 붙인 자세로 조철봉을 보았다.
이제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입술은 굳게 닫혔고 눈초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내가 혼자 산다고 무시하지 마요.”
여자가 또박또박 말했다.
“이런 일을 한다고 함부로 대하지도 마시고.”
“나도 와이프한테 이혼당하고 이런 일은 처음이오.”
이제는 조철봉도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가정에 불성실했고 바람까지 피우는 바람에 이혼 당했는데
5년 동안 혼자 살면서 나도 숱한 사연을 겪었지요.”
여자는 똑바로 조철봉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 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듣는 중이었다.
아무리 주의가 산만하고 머리가 나쁜 학동이라도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내용은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된다.
이번에는 이혼 당한 것으로 줄거리를 만든 것은 교통사고나
암보다 그쪽 분위기가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내가 걔하고 이차 안나간 건 당신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오.
내가 당신한테 대뜸 흥정을 한 것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더 정직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난 이 날 이 때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오.
내가 지금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했다면 돌아가신 아버지한테서 천벌을 받을 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러실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얼른 들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천벌이란 단어가 입력되어 상당한 신빙성을 줄 것이었다.
“그래, 난 지금 섹스에 굶주린 상태요.
그래서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됐어요.”
말을 자른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는 조철봉을 보았다.
“그럼 오늘밤 제 집에 갈수 있어요?”
“당연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철봉이 대답했다.
침까지 삼킨 조철봉이 지긋한 시선으로 여자를 보았다.
그야말로 예상밖이다.
오늘은 인상만 깊게 심어놓고 다음날을 기약할 계획이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이 분명했다.
“갈 수 있지요.”
“비밀 지키실 수도 있지요?”
“지킵니다. 세상 종말이 올 때까지.”
“마침 아이가 한달간 어학 연수를 가서 혼자 있어요.”
그러더니 여자가 문의 손잡이를 다시 쥐면서 말했다.
“길 건너편에 ‘타임’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기다리세요. 20분쯤 후에 나갈테니까.”
“기다리죠, 밤이 샐 때까지라도.”
“흐흥.”
가볍게 웃은 여자가 아직도 테이블 위에 놓인 수표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건 넣어 두세요.”
“이따 드리지.”
그러자 여자는 잠자코 방을 나갔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문이 닫혔을 때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다.
(1210) 야망-12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경우는 라면 먹으려다 한정식 상을 받은 꼴이 되었다.
‘타임’카페로 들어와 앉은 조철봉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커피를 시켜 마셨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런 오늘밤이 있다면 그런 대로 지낼만은 할 것이다.
사과나무는 못 심는다.
조철봉의 기준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은 바로 복상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연히 읽었지만 미국의 부호 록펠러 가문의 넬슨 록펠러가 복상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복을 받은 것이다. 죽고 나서 무슨 말을 듣는 건 다 필요없다.
조철봉이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카페 입구로 들어서는 주인여자가 보였다.
바바리 코트 차림이었는데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가요.”
다가선 여자가 앉지도 않고 말했다.
“피곤해요.”
새벽 두시 반이었다.
두 말 않고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카페 밖으로 나왔을 때 여자가 팔짱을 끼었다.
“제 이름은 홍지숙이에요.”
여자가 앞쪽을 본 채 말했다.
“아아, 새벽 공기가 맑네, 시골 공기는 얼마나 맑을까?”
그순간 조철봉은 마음을 굳혔다.
이럴 때 기분을 내지 않으면 언제 내겠는가?
“그럼 시골 공기를 마시러 갑시다.”
조철봉이 지숙의 팔을 낀 채 이끌었다.
“내 별장이 용인에 있어요. 여기서 한시간 반 거리밖에 안돼.”
“별장요?”
하면서 지숙이 조철봉을 올려다 보았다.
가로등 빛에 반사된 지숙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자세로 3, 4초 동안 망설이던 지숙이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설마.”
“설마, 뭘?”
“날 납치하려는 건 아니죠?”
“최갑중이가 단골이라며?”
“최사장님요? 그렇죠.”
“그놈이 내 이야기 안합디까?”
“아까 가실 때.”
“뭐라고?”
“형님으로 모시는 거물이라고, 그룹 회장님이시라던데.”
“내가 거물이기 때문에 따라 나온 건가?”
“천만에요.”
그러면서 지숙이 팔까지 풀었다가 풀석 웃더니 다시 끼었다.
“필이란 게 있죠? 느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색녀야.”
“색녀?”
눈을 동그랗게 떴던 지숙이 다시 풀석 웃었다.
“어째서요?”
“내 느낌이, 필이지.”
조철봉이 다가오는 모범택시를 세우고는 지숙과 함께 올랐다.
목적지를 말해준 조철봉이 옆에 앉은 지숙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난 요즘 섹스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지숙의 귀에 입술을 붙인 조철봉이 속삭였다.
“한 반년쯤 된 것 같은데.”
“거짓말.”
상반신을 비튼 지숙이 간지러운 듯 머리를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어떻게 반년이나 참아요?”
“지숙씨는?”
“여자는 오래 참을 수 있어요.”
“거짓말.”
조철봉이 지숙의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가 놓았다.
“하루에도 여러 놈이 유혹할 텐데.”
“내가 걔처럼 그렇게 헤프게 보여요?”
그러면서 지숙은 손을 조철봉의 허벅지 위에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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