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야망(1)
(1199) 야망-1
오후 3시가 되면 조철봉은 아무데서나 20분쯤 낮잠을 잔다.
소파에 기대 눕거나 사우나에서, 또는 차 안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충만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이 이젠 습관이 되어서 밥 먹는 것하고 똑같이 빼놓으면 생체 균형이 깨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 없어도 낮잠을 잔다. 조철봉이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3시40분이었다.
언제나 자기 전과 후에는 꼭 시계를 본다.
오늘은 25분을 잤다. 서경윤의 불륜을 보고받고 나서 조금 심란해졌기 때문인지
다른 때 같으면 2분쯤 후에 잠이 들었겠지만 오늘은 4분쯤 지나서야 잤다.
소파에서 일어난 조철봉이 몇번 목을 돌려본 후에 인터폰을 누르자
곧 미스 오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사장님.”
“최사장 기다리고 있나?”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최갑중이다. 갑중은 조철봉의 계열사중 3개의 사장을 맡고 있는데다 제 지분도 있어서
수백억 재산가가 되었다.
조철봉이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장점이 있다면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어도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장 타이틀을 싫어해서 여전히 사장이다. 잠시 후에 갑중이 방으로 들어섰는데
뭔가 들뜬 표정이었다.
10여년을 겪어온 터라 조철봉은 갑중의 눈빛만 봐도 좋은 일인지 그 반대인지를 안다.
이번에는 좋은 일 같다.
자리에 앉은 갑중이 말을 꺼냈다.
“사장님. 신의주 특구 아시죠?”
조철봉이 잠자코 시선만 주었지만 갑중은 기세를 떨어뜨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북한에서 신의주 특구를 완전히 자유무역지대로 개방한다는 겁니다.
제가 개성에서 김을수 비서를 만나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미스 오가 찻잔을 들고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갑중은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조철봉은 이미 개성공단에 커다란 공장을 건설해놓은 상태였다.
중국 공장에서 기계를 떼어내 옮긴 것이다.
거기에다 백두산 관광단지의 독점개발업체로 선정되어 곧 호텔과 카지노가 오픈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신의주 특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미스 오가 방을 나갔을 때 갑중이 눈썹을 모으고는 조철봉을 보았다.
“사장님, 신의주 특구의 장관을 한번 해보시지요. 김을수 비서가 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뭐야?”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다.
김을수 비서는 비서국 소속의 경제담당 비서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 중 하나인 것이다.
그가 밀어준다는 것은 곧 김정일 위원장의 내락을 받았다는 말이나 같다.
“야, 쓸데없는 소리 말아, 나 바쁘다.”
조철봉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장관이라면 정치를 해야 되는데 난 체질에 안 맞는다.”
“누구는 나면서 장관하라고 이마에 붙어 있습니까?”
굳어진 얼굴로 갑중이 반박했다.
“형님, 이런 기회가 또 올 줄 아십니까?”
“또 와도 안 해,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되는 거다. 난 이 정도면 끝까지 올라온 거야.”
“이 정도나 장관이나 같단 말입니다. 장관이 뭐 별거인 줄 압니까?”
“글쎄, 난 정치 못한다니까?”
“형님 스타일이면 정치 7단쯤은 될 겁니다. 누구처럼 9단은 못 되더라도 말이죠.”
“이런 젠장.”
했지만 조철봉은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1200) 야망-2
“신의주특구 장관이면 대한민국 장관보다 더 가치가 있단 말입니다.”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최갑중이 말을 이었다.
“중립국 장관이 되는거죠. 대한민국하고 북한에다 양다리를 걸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고는 갑중이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힘도 생기게 되구요. 그리고 또, 누가 압니까? 형님이.”
“내가 뭐?”
“남북한이 통일되면 형님이 통일 대통령 일순위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형님 팬카페가 생기는 건 당근이고 형님책, 형님 노래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야, 시끄러워.”
“누가 그랬습니다. 보이스, 비, 엠비시.”
“뭐? 엠비시? 엠비시에서 뭘 방송해?”
“아니, 그게 아니고 ‘보이들아 야망을 가져라’는 영어가 그렇습니다.”
“호텔 보이가?”
“아, 그 보이도 그렇고.”
짜증난 표정이 된 갑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쨌든 나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개성공단의 공장도 그렇고 백두산 관광단지 사업도
걸려 있는 판국에 신의주특구 장관을 맡으면 여러모로 사업에 이득이 될 것 아니냐
그 말씀입니다.
더구나 김을수 비서가 밀어준다는데 사양한다면 말이나 됩니까?
형님답지않게 왜 이러십니까?”
“내가 무슨 장관을 하느냐 이 말이다.
내말은, 차라리 회장을 하라면 또 모르지만 말이야.”
“제가 형님 모시고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개성에서 김을수 비서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 자식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개성 공장도 보실겸 그냥 만나 보시지요.
그러고나서 결정하셔도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날 오후 5시경에 조철봉은 갑중과 함께 자유로를 달려 개성으로 향했다.
자유로가 잘 뚫리면 개성은 신촌에서 한시간반밖에 안걸린다.
자동차 판매회사 영업사원에서부터 시작한 조철봉이다.
사기와 협박, 때로는 공갈에다 강도질까지 하면서 한걸음씩 목표를 향해 나아간 지
햇수로 7년, 7년 만에 중국과 베트남, 북한에까지 수십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기업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려도 될 것이다.
기업 경영에 대한 조철봉의 방식은 철저한 전문경영인에 의한 위탁 경영이었다.
회사를 인수하고 나면 전문 경영인을 선정해서 일체를 맡기는 것이다.
조철봉은 경영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조가 있다.
그것은 자리에 맞는 처신을 한다는 것이다.
과장일 때, 부장일 때, 사장일 때의 사고와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사장이 되면 부장때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빈 머리로 사장 직위에 맞는 일을 만들었다.
절대로 부장의 고유 업무를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수십개의 기업체로 나눠진 지금은 각 기업체의 사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맡겨 놓은 상태다.
개성공단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을수에게 미리 연락을 해 놓은 터라
그들은 곧장 개성호텔의 한식당 ‘선죽교’로 들어섰다.
예약된 방에서 5분쯤 기다렸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김을수가 일행 한명과 함께 들어섰다.
“조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조철봉과는 구면인 터라 김을수가 웃음띤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일행을 소개했다.
“이분은 정무원 경제담당 부총리 박훈 동무십니다.”
거물이다.
조철봉은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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