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야망(2)
(1201) 야망-3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부총리 박훈이 조철봉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이제야 뵙게 되는군요.” 박훈은 50대쯤으로 보였는데 수려한 용모에 옷차림도 깔끔했다. 인사를 마치고 넷이 원탁에 둘러앉았을 때 음식이 나왔다.
한정식이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먹어본 한정식으로는 전주의 한정식이 가장 좋았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온 한정식 상이 ‘전주 한정식’과 똑같았다. 전주에서 주방장과 음식을 수송해온 것이 분명했다.
“부총리 동무께서 조사장님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식사중에 먼저 김을수가 입을 열었다. “조국에 꼭 필요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그 조국이 대한민국은 아닌 것 같았지만 조철봉은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기분 좋은 것이다.
그때 박훈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조사장님, 우리는 신의주 특구를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아니, 세계 제1의 무역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얼굴을 굳힌 박훈의 목소리에 열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그럴 능력도 자신도 있습니다. 지도자 동지께서 적극 지원해 주신다고 한 이상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조철봉은 막 좋아하는 게장의 게딱지에다 밥을 넣고 비빈 참이었다. 그런데 박훈의 열기에 몸이 굳어지면서 그 맛있는 것을 입에다 넣지 못하고 있다.
박훈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신의주 특구는 동서양을 잇는 무역, 금융의 허브가 될 것이며 민족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염병하고, 속으로 중얼거린 조철봉이 마침내 수저를 내려 놓았지만 얼굴에는 감탄했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게딱지 안의 밥은 식어가는 중이다.
그때 박훈이 물었다.
“조사장님, 이 위대한 사업에 동참하실 의사가 있습니까?” “저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겸손한 표정이 된 조철봉이 머리까지 저으면서 말했다. “저같은 인간은 그저 시킨 일이나 하고 지내는 것이 분수에 맞습니다. 부총리님.” “우린 조사장님에 대해서 다 알아 보았습니다.” 박훈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고 최갑중은 긴장했다. 조철봉의 본색을 갑중만큼 잘 아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박훈이 말을 이었다.
“맨손으로 단 5년 만에 이렇게 기업을 일으키신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장님이야말로 위대한 사업가이십니다.”
“저는.” 밥맛이 뚝 달아난 조철봉이 똑바로 박훈을 보았다. 박훈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해를 풀지 않으면 곤란하다. 위대한 사업가라니?
조철봉은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비례한다는 사실을 체험해왔다.
만일 조금만 기대에 어긋나도 이 사람들은 더 크게 소동을 부릴 것이었다.
“부총리님, 제 본색이 사기꾼입니다.”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했다. “별놈의 사기를 다 쳤지요. 공갈, 협박은 물론이고 강도질까지 해온 인간입니다, 제가요.” 엄지를 구부려 제 가슴을 가리켜보인 조철봉의 말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그런 저를 위대한 사업가라뇨? 아주 엄청난 오해를 하신 겁니다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사기는 치지 않는다. 조철봉이 누구인가?
제 거짓말을 비판할 수준의 사기꾼이다.
다 뒤가 있다. |
(1202) 야망-4
그날 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형님, 어디 가실랍니까?”
차가 마포로 진입했을 때 최갑중이 물었다.
갑중은 서경윤이 지금 제주도에 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왜?”
조철봉이 창밖에 시선을 준 채 묻자 갑중은 목소리를 낮췄다.
“저, 좋은 데가 있는데요.”
“뭐가?”
“거시기 말입니다.”
앞에 운전사 미스터 김이 앉아 있다고 해도 행동이 과장된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시기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저기, 노래방입니다.”
“…….”
“요즘은 노래방이 끝내줍니다.”
“…….”
“일급 노래방은 일급 여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수준에 맞게 파트너를 대줍니다.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요.”
“너, 노래방 삐끼로 직업 바꿨어?”
“한시간만 놀다 가시죠. 형수님도 안계신데다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 아닙니까?
곧 장관이 되실텐데.”
“시끄러워 짜샤.”
“장관이 되시면 그런 데도 함부로 못다니실테니까요.”
“내가 왜?”
“아무래도 그럴 것 아닙니까?”
“신의주 특구에서 룸살롱, 요정, 노래방 사업이 잘 될거다.”
조철봉이 화제를 바꿨다.
“그 사업은 대한민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지.
최고급 수준으로 만들어 놓으면 돈많은 중국인부터 일본인, 미국인들까지 몰려들거다.”
“그럼요.”
맞장구를 친 갑중의 목소리가 다시 은근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번 가보시죠.
일급 노래방인데 특구에 그렇게 해놓으면 장사 잘 될 겁니다.”
“그럼 가보기로 하지.”
“예, 형님.”
얼굴을 편 갑중이 미스터 김에게 지시를 했고 30분쯤 후에 차는 아현동 주택가 입구의
5층 빌딩 앞에서 멈춰섰다.
“이쪽으로.”
갑중이 앞장서서 빌딩 안으로 조철봉을 안내했다.
조철봉은 갑중을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가 청록이라고 씌어진 노래방 안으로 들어섰다.
노래방은 넓고 깨끗했다.
방음장치도 잘 되어서 밖으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자가 갑중을 보더니 반색을 하고 일어났다.
“특 2호실로 가세요, 사장님. 모두 준비 해놓았습니다.”
조철봉은 잠자코 갑중을 따라 특 2호실로 들어섰다.
방은 룸살롱과 같았다. 벽에 대형 스크린과 노래방 기기가 붙어 있는 것이 더 화려했다.
소파는 진짜 가죽이었고 대리석 탁자 위에는 이미 양주와 안주가 가득 놓여 있었다.
“제가 몇번 왔지요.”
자리에 앉았을 때 갑중이 말했다.
“먼저 주인이 와서 고르라고 할 겁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인 여자가 들어섰다.
40대쯤으로 수수하게 차려 입었지만 세련되었고 몸매도 미끈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여자가 수줍게 웃었다.
웃는 얼굴도 매력이 있다.
“저, 오늘 여자들은 20대 후반의 주부인데 교양있고 날씬해요. 용모도 수준급이구요.”
주인여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좀 늦게 예약하셔서 걔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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