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열망(13)
(1193) 열망-25
다시 회사로 돌아온 조철봉은 일을 했지만 건성이었다.
결재도 대충 했으며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외부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해놓고는 소파에 눕듯이 앉아 두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자 그때서야 차츰 가슴이 진정되면서 두서없던 사고가 정리되었다.
“자, 너,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냐?”
그때 첫번째로 떠오른 질문이 그것이다.
“너, 왜, 자꾸 뒤로 빼기만 하는 거냐?”
두번째는 힐난하듯 그렇게 묻는다.
“네가 16년전 그날 밤에 영민한테 했던 말처럼 올라간 후에 내려올 때의 허망함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냐?”
이번에는 질문이 꽤 길었다.
“너, 오늘 저녁에 영민한테 갈 생각이 없지?”
그렇게 스스로를 향해 반문해본 조철봉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대답했다.
먼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어떻게 하기는 마, 먹어야지.”
간단하다. 잠시 두번째 질문을 떠올렸던 조철봉이 대답했다.
“빼기는 머, 잔뜩 기름칠을 하는 거지.
그런다고 걔(영민)가 도망치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꽉 쥐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이때 조철봉의 두 눈에 생기가 번쩍였으며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조철봉은 세번째 질문을 머릿속에서 읽고나서 이번에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아주 고상한 질문이다.
물으려면 이런 걸 물어야지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것처럼 인기영합식으로 물으면 쓰나?”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마, 지금은 그 질문이 내 위치와 현실에 딱 맞는 질문이 되겠다.
과연 그렇다. 영민을 두시간, 또는 고등학교 교가까지 부르면 세시간 동안쯤은
천국과 극락, 홍콩을 교대로 왕복시킬 자신은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던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다음부터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조철봉은 속으로 주고받고 있으면서도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 먹는 것 위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먹을 때만 성취감을 얻었을 뿐 그 시간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그 행태가 영민에게까지 작용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비극이 될 것 아닌가?”
그순간 조철봉의 부릅뜬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물이 흘러내리도록 한동안 내버려 두고 나서 조철봉은 휴지를 집어 얼굴을 닦았다.
그러자 눈동자도 더 맑아졌고 얼굴은 생기를 띠었다.
“먹자.”
조철봉은 배달시켜 놓은 자장면을 먹자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했다.
“우선 먹고 보자.”
“그럼 오늘 저녁에 갈 거냐?”
하고 속에서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가야지.”
심호흡을 한 조철봉은 탁자 위의 전화기를 집어들고는 버튼을 눌렀다.
“예, 사장님.”
신호음이 두 번 울렸을 때 박경택이 응답했다.
“응, 열심히 하고 있지?”
조철봉이 묻자 경택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사장님.”
“철저히 하라구, 알았지?”
“예, 사장님.”
경택은 지금 제주도에 놀러간 서경윤을 감시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조철봉은 경택을 격려한 것이다.
(1194) 열망-26
“어서오세요.”
문을 연 고영민이 그렇게 인사는 했지만 시선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옆을 스치고 들어서는데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향수다.
화장품 냄새는 아니다.
“애주는?”
들고온 컴퓨터 게임기를 영민에게 내주면서 묻자 영민이 여전히 시선을 내린채 대답했다.
“자요.”
저녁 9시20분이다.
조금 늦게온 셈이지만 이시간에 잔다는건 조금 이른 감이 있다.
억지로 재운것 같았다.
“씻으세요. 국만 데우면 되니까요.”
영민이 뒤로 다가와 저고리를 벗기면서 말했다.
분위기가 TV 드라마에 나오는 신혼부부 같았다.
왜 드라마를 대느냐하면 조철봉은 신혼부부 시절에 이런 분위기를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경은은 한번도 뒤에서 옷을 받아 준적이 없다.
조철봉이 던진 저고리를 앞에서는 몇번 받았다.
그것도 엉겁결에.
“저기, 갈아 입으실 옷.”
하고 영민이 파자마하고 내의를 내밀었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철렁했다.
심장근처에서 무언가 쿵 떨어진 느낌이 온 것이다.
영민은 새 내의와 파자마도 준비해 놓은 것이다.
머리만 끄덕인 조철봉은 바지와 셔츠까지 벗어 영민한테 건네 주고는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발칙하게도 영민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인지 바지를 벗었을때 철봉이
건들거리며 텐트를 쳤다.
그래서 황급히 파자마로 앞은 가렸지만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철봉은 순수하다.
그러나 순수한 철봉만을 따르다가는 대부분 교도소에 간다.
욕조에는 가득 물을 받아 놓았는데 온도가 적당했다.
조철봉이 욕조에 들어가 누웠을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20센티쯤 열렸다.
“저기요, 철봉씨.”
여전히 시선을 내린 영민이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저기, 그거 준비했는데.”
“뭘?”
조철봉이 묻자 영민이 얼굴을 더 뒤로 뺐으므로 문틈에서 목소리만 들어왔다.
“저기, 비아그라.”
숨을 들이켠 조철봉이 물속에 잠겨있는 철봉을 내려다 보았다.
그말을 들은것처럼 철봉이 건들거리고 있었다.
“아니, 비아그라는 왜?”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묻는것은 테크닉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대사는 인간관계의 맞물린 톱니바퀴에 칠해지는 기름같은 역할이 되며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전희 기능도 한다.
“아, 비아그라.”
하고 금방 알아듣는척, 잘난척 하는 놈은 십중팔구 조루일 것이었다.
그러자 문틈에서는 3초쯤 후에야 대답이 흘러 나왔다.
“저기, 그거 괜찮아요?”
조철봉은 빙그레 웃었다.
방금 욕조의 물속에서 잠수함의 잠망경같은 철봉이 벌떡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찾을수가 있는 것이다.
이틀쯤 굶었다가 라면 한개를 얻게 되었을때도 그렇고 이렇게 철봉이 기운차게 솟아 오르는
것을 볼때도 그렇다.
그러고보면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행복을 찾을 기회가 많지 않을까?
항상 서는 사람보다 가끔 서는 사람이 서는 기쁨을 더 누리게 될 것이다.
물론 조철봉같은 사기꾼은 한술 더 떠서 못선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이런 기쁨을 얻는 것이지만 말이다.
“응, 괜찮을것 같은데.”
일단 그렇게 대답은 해놓고 조철봉이 심호흡을 했다.
너무 괜찮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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