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3
그런데 요동에서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수나라 내지에서는 양광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정월, 요동 정벌의 동원령이 내린 직후부터 양광이 요하를 건너 요동성에 당도한
5월 초순간에 걸쳐 요동 정벌의 피해와 부담이 극심했던 하북(河北)과 산동(山東) 일대의
여섯 지역에서는 각기 수만을 헤아리는 군도(群盜)와 농민 봉기가 잇달아 횡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민심의 이반과 심상찮은 기운을 등에 업고 평소 양광의 압정과 독단에 불만을 품어온
일부 중신들이 드디어 반역의 깃발을 쳐든 것이었다.
요동성을 사이에 두고 연일연야 치열한 공방전이 스무 날 가량 계속될 무렵,
양광의 진채로 수도 대흥에서 급한 전갈이 날아들었다.
내용인즉 군량과 물자의 수송을 감독하기 위해 여양(黎陽:개봉 북방)에 가 있던
예부상서 양현감(楊玄感)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거였고,
이에 양현감과 내통하던 병부시랑(兵部侍郞) 곡사정(斛斯政)이 문책을 받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고구려로 도망을 쳤다는 것이었다.
양광에게는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본래 수나라에는 문제 양견이 북주의 장군으로 있을 때부터 지극히 총애하던
책사 양해정(楊解汀)이란 이가 있었다.
양견과는 먼 인척간이기도 했던 양해정은 양광이 아비를 죽이고 제위에 오르려는 것을 알고
이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양견과 함께 죽임을 당한 인물이었는데,
반역한 양현감은 바로 그의 아우였다.
특히 양현감은 예부상서(禮部尙書)란 직책을 맡고 있었으므로 고관의 자식들이
모두 그의 문하생들이었고,
이 점이 양광으로 하여금 더욱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을 갖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수군의 사정과 군사 기밀에 누구보다 정통한 병부시랑 곡사정이
고구려로 달아났다는 소식은 놀라움과 분노의 단계를 넘어 낭패감과 무력감까지도 느끼게 하였다.
양광은 수도 대흥을 출발할 때 곡사정을 내호아와 함께 등주로 보내 수군(水軍)의 출병하는 일을
지휘하고 감독하라고 분부해둔 터였다.
그런 곡사정이 고구려로 달아났다면 내호아의 수군은 필경 몰살을 당하거나,
어쩌면 아예 출병도 못했을 공산이 컸다.
“아,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양광은 백지장 같은 얼굴로 위문승을 바라보았다.
우중문이 민사(悶死)한 후로 양광의 총애와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던 지장 위문승이 대답했다.
“잠시라도 머뭇거릴 일이 아니올시다.
요동 정벌이야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지만 내란을 평정하는 일은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양현감이 여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니 신성에 가 있는 왕인공을 불러 신과 함께 여양으로
보내주십시오.
반드시 양현감의 목을 취하고 반역한 무리들을 모조리 응징하겠습니다!”
위문승의 말에 양광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동성은 눈앞에 있었지만 양광은 분루를 삼키며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날 밤에 당장 각군의 장수들을 불러모으고 시급히 철군할 것을 명하니
이때가 계유년 6월 초순으로, 탁군을 출발하여 요동 정벌에 나선 지 만 석 달 만의 일이었다.
퇴각하는 수군들은 사정이 얼마나 급했던지 반년 이상 준비한 엄청난 물자와 기계들은
그대로 요동에 버려두고 돌아갔다.
그 바람에 요동성 앞에는 충제와 어량대도, 8륜누차를 비롯한 수많은 군자, 기계, 공구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보루와 장막도 옮기지 않았으며, 군사들은 대오도 짜지 못한 채
여러 길로 분산하여 달아났다.
전쟁은 본래 상식과 그를 토대로 한 지략으로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이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상대하는 쪽에서도 덩달아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수군 진영의 급박한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던 요동성의 을지문덕은 막대한 물량을 사용하며
한창 기세를 올리던 수군들이 하룻밤새 일제히 사라지자
혹시 이것이 양광의 거짓 꾀인가 의심하여 이틀이 지나도록 쫓지 못하였는데,
나중에야 눈치를 채고 그 후군을 공격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겨우 수천 명을 참살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양만춘이 지키던 신성에서도 왕인공이 갑자기 도망가는 바람에 섣불리 추격하지 못한 것은
요동성의 사정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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