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16 회
막사로 돌아온 우중문은 양광이 보낸 옥정과 더불어 자리를 펴고 누웠다.
옥정은 한때 양광이 탐닉했을 만치 아름다운 여자였다.
비록 방년의 꽃다움은 한풀 꺾였지만 적당히 살이 붙은 육후하고 풍만한 아름다움과
나무랄 데 없는 이목구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리에 누워서도 우중문은 을지문덕에 대해 좀처럼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곁에서는 옥정이 시종 교태 어린 눈빛과 달콤한 말로 유혹하였지만 우중문의 머릿속에는
줄곧 을지문덕의 일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안 되었던지 옥정의 손길을 뿌리치고 막사를 빠져나와 유사룡의 거소를 찾아갔다.
그리곤 이미 곤히 잠든 사람을 큰 소리로 두들겨 깨웠다.
“무슨 일이오?”
유사룡이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불을 밝히며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승과 내가 을지문덕에게 속은 것 같소.”
“속다니, 새삼스럽게 무얼 가지고 그러시오?”
“을지문덕이 황제가 계시는 서쪽을 놔두고 하필이면 남쪽 진채로 찾아온 까닭이 수상하지 않소?
이는 처음부터 항복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요,
오직 이곳에서 길을 얻어 오골성으로 가기 위한 계략임이 분명하오.
그렇다면 목을 치라고 운운하며 수작을 부린 일들은 죄 교활하게 계산된 언동이었고,
그렇게 나오면 우리가 자신을 믿고 놓아줄 줄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게요.”
우중문의 의심하는 말을 듣자 유사룡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웃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않소?
공을 세우자면 어차피 오골성으로 가서 대원왕을 만나야 하니
이곳에서 길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나도 그가 진심으로 죽을 곳을 찾아 여기에 왔다고는 생각지 않소.
그의 마음이야 어쨌든 우리는 그가 대원왕을 사로잡아서 바라던 공을 세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오?”
“글쎄, 그걸 믿을 수가 없단 말이오.
대원왕이 오골성으로 온다는 것도 순전히 그의 말이요,
왕을 해칠 의사가 있다는 것도 우리를 속여서 빠져나가기 위한 둔사인지 어찌 아오?
게다가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부랴부랴 서둘러 떠난 것도 수상하고,
아까 보니 말잔등에 갑옷과 무기까지 감추고 있습디다.
그는 항복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계략을 부린 거요!”
그리고 우중문은 마침내 결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보내 을지문덕을 다시 불러보겠소.
만일 그가 순순히 따라온다면 딴마음이 없는 것이요,
오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를 속인 것이니 마땅히 뒤를 밟아 주살하는 일이 시급하오.”
“내가 보기엔 장군의 의심이 지나친 것 같지만 정 믿지 못하겠거든 뜻대로 해보시구려.”
유사룡도 거기까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우중문은 황급히 휘하의 믿을 만한 장수 두 사람을 불렀다.
이들은 장흔(張欣)과 상기(祥奇)라는 자들로 우중문이 가장 아끼는 장수들이었는데,
쌍검을 잘 쓰는 장흔은 크고 작은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일이 없음을 늘 자랑하던 맹장이요,
텁석부리 상기는 150근 무게의 가시가 돋친 철퇴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장사였다.
“너희는 지금 즉시 을지문덕을 뒤쫓아서 그를 만나거든 내가 할말이 있으니 다시 좀 와달라고 해라.
을지문덕이 순순히 너희를 따라오거든 정중히 데려올 것이지만 만일 거역하고 오지 않거든
죽여서 그 목을 취하여 가져오라.”
명을 받은 장흔과 상기가 황급히 말에 올라 떠나고 나서도 우중문은 안심이 안 되었는지
다시 문태(汶太)와 곽사천(郭斯天)이라는 휘하의 편장 두 사람을 불렀다.
“지금 장흔과 상기가 을지문덕의 뒤를 쫓아갔으나 을지문덕은 무예가 뛰어난 자라고 한다.
장흔과 상기를 믿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너희는 맹졸 1백 명을 뽑아 시급히 두 사람의 뒤를 따르라.”
이리하여 아닌 밤중에 수군의 장졸들이 맹렬한 기세로 을지문덕을 뒤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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