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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20장 신의주특구 [2]

오늘의 쉼터 2014. 7. 31. 01:20

<209> 20장 신의주특구 [2]

 

 

(413) 20장 신의주특구 <3> 

 

 

 

킹덤호텔 스위트룸에서는 나일강과 강 건너편의 카이로 시가지까지 다 보인다.

오후 10시 반,

베란다의 의자에 나란히 앉은 서동수와 진윤화가 발 밑의 나일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강가에 정박한 배 한 척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배를 식당으로 개조해놓은 것이다.

서동수가 잠자코 술잔을 들었더니 진윤화도 술잔을 집는다.

기자에서 돌아온 둘은 씻고 룸서비스로 저녁을 시켜 먹은 후에 다시 베란다에 술상을 차린 것이다.

진윤화는 흰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는데 마치 신혼여행을 온 20대처럼 앳되어 보인다.

도무지 40대 같지가 않다.

유병선을 따라 라고스에서 카이로까지 날아오는 동안 진윤화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불안한 기색도 없었으며 들뜬 표정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1등석에 익숙한 유병선보다 진윤화는 더 자연스럽더라고 했다.

지금 아래층에 투숙하고 있는 유병선이 진윤화가 씻는 동안에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보고한 것이다.

한 모금 술을 삼킨 서동수가 머리를 돌려 진윤화를 보았다.

위스키의 짜릿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향이 코를 통해 빠져나갔다.

“어색한 것 같지 않아서 기쁘다.”

툭 던지듯 말했더니 진윤화가 빙긋 웃었다.

베란다의 등 빛을 받아 진윤화의 두 눈이 반짝였다.

“서동수 씬 프로 다 되셨던데요? 라고스에도 서동수 씨 테이프가 돌아다녀요.”

“곧 포르노도 돌아다니겠군.”

“미얀마 법인장 레이의 인터뷰도 감명 깊게 보았어요.”

“내가 걔 때문에 주가가 높아졌어.”

서동수가 빈 잔에 술을 채우고는 진윤화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강바람이 불어와 물비린내가 맡아졌다.

후끈하면서 습기를 띤 대기가 느껴진다.

“날 부른 이유를 듣죠. 이젠.”

술잔을 든 진윤화가 다시 강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두 다리를 의자 위로 길게 뻗어서 종아리와 맨발이 드러났다.

“내가 좋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부담은 갖지 않아도 돼요.

이런 제의를 거절할 여자도 없겠지만.”

“반가웠어.”

“버스 떠나고 지금은 지하철 왔어요.”

“그러지 마.”

“버스가 한 바퀴 돌아온 셈으로 쳐요?”

서동수가 다시 한 모금 술을 삼켰다.

19년 전에도 진윤화는 당돌했다.

자신감이 넘쳤고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그만 만나요.”

세 번째 만났을 때 진윤화가 그랬다.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진윤화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상황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서동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고 돌아서서 헤어졌다.

그놈의 희망이란 단어가 그때처럼 아득하게 들린 적이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헤어진 여자였던 것이다.

서동수가 이제는 강 건너편의 카이로 시가지를 보면서 말했다.

 

 “어때? 날 보면 희망이 보이나?”

머리를 돌린 진윤화가 서동수의 옆 얼굴을 보았다.

옛날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 것 같다.

바로 이것이다.

서동수는 진윤화에게 이 ‘희망’을 돌려주려고 불렀다.

네가 절망으로 안겨주었던 그놈의 희망을 어디 가져가 보아라.

그때 진윤화가 말했다.

“네. 보여요.”

됐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인간은 가끔 그냥 뱉는 말로 타인에게 수십 년간 흔적을 남긴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지만.

 

 

 

(414) 20장 신의주특구 <4> 

 

 

 위스키를 둘이 반 병쯤 비웠을 때 12시가 되었다.

그러나 아래쪽 식당 배의 불빛은 더 환해진 것 같고 노랫소리까지 들려왔다.

술을 마시면서 서동수는 진윤화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진윤화도 제 신상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라스팔마스, 나이지리아 이야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며칠 밤을 새울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서동수는 주로 듣는 편이었는데 어둠이 덮인 나일 강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진윤화의 이야기가 그친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돌린 서동수가 진윤화를 보았다.

나란히 앉아 있어서 진윤화의 옆얼굴이 보인다.

서동수는 진윤화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린 자국을 보았다.

눈물 줄기가 베란다의 불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리고 있다.

그때 진윤화가 나일 강에 시선을 준 채로 말했다.

“세상사가 다 주고받는 것이라고 알기까지엔 시간이 좀 걸렸죠.”

다시 서동수가 듣기만 했고 진윤화의 말이 이어졌다.

“비서실장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내놓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

“그래도 내 몸 가치는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어요.”

그때 머리를 돌린 진윤화가 정면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이제는 눈물 줄기 두 개가 다 보였지만 진윤화의 표정은 멀쩡했다.

“제가 분위기 깼나요?”

“아니.”

“안을 만한 가치는 있죠?”

“그럼.”

“그러면 말해봐요.”

“뭘?”

“그냥 부르지는 않았을 거 아녜요?”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맞는 말이다.

유병선을 보내기 전부터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당연히 진윤화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분수를 모르는 공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답다는 착각을 한다.

진윤화의 시선을 받으면서 서동수는 가슴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지금 신의주특구를 개발 중이야.”

한 모금 술을 삼킨 서동수가 눈으로 식당 배를 가리켰다.

“내가 특구에 식당을 세워 줄 테니까 신의주로 와.

하루에 손님이 수천 명씩 몰려오게 될 거야.”

“…….”

건설현장에 함바라고 있지?

현장의 식당도 하고, 정통 레스토랑도 세워야겠지.”

“…….”

“수의계약을 하면 말이 많을 테니까 동성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하자고.”

“…….”

“진윤화 씨가 동성 자회사의 대표가 되는 거야. 물론 지분도 떼어주지.”

그러고는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식당 운영 경험이 있을 테니까 도움이 될 거야.”

나일 강 쪽 소음이 올라왔다.

그것도 베란다에서 잠깐 정적이 덮였기 때문이다.

그때 진윤화가 말했다.

“너무 과분해요.”

서동수가 잔에 술을 채울 때 진윤화는 말을 이었다.

“감당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밑지는 거래는 안 하기로 했어.”

진윤화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한 모금 술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조건부로 네 몸을 안지 않겠다는 말이야.”

머리를 돌린 서동수가 진윤화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냥 줄게. 가져가.”

나는 지금 너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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