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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신성(新城)함락 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8. 21:38

 

제14신성(新城)함락 3

 

 

 신성을 함락시킨 우문술은 성을 신세웅에게 맡기고 자신은 즉시 대군을 몰아 학익진의 심장인

요동성의 동편으로 향했다.

이는 양광이 북방 3성의 장수들에게 두루 명한 것이었으나 현도성과 개모성은 아직 견고하였으므로

제대로 명에 따른 이는 우문술이 유일했다.

우문술의 군대가 요동성의 동편과 남편에 이르러 함성을 지르며 위협을 가하자

을지문덕은 비로소 신성이 함락된 것을 알았다.

요동성은 이로써 사방이 완전히 적병들에 포위된 셈이었다.

“범동의 성급함이 또 일을 그르쳤구나!”

문덕은 길게 한숨을 토하며 개탄하였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성의 동남변으로 진격한 우문술의 군대는 신성을 무너뜨린 여세를 몰아

제법 매서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덕이 버티고 있는 요동성은 가히 철옹성이라 할만했다.

우문술의 군대가 성벽 가까이로 접근하면 문덕은 가끔 동문과 남문을 열고 기병(奇兵)을 내어

순식간에 기습을 가하고는 재빨리 돌아와 다시금 굳게 수비하는 전략으로 나왔다.

한번 그런 기습을 당하고 나면 수군들의 움직임은 자연히 둔해졌고,

한동안은 무춤거리며 성안의 눈치를 살피게 마련이었다.

우문술이 요동성 공략에 가세한 지 이레쯤 지났을 때였다.

육합성에 머물고 있던 양광은 요동성 남쪽으로 행차하여 그 성지의 형세를 살핀 뒤

우문술의 막사를 찾아왔다.

“그대에게 성을 함락시킬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가?”

양광이 묻자 우문술이 공손히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을지문덕은 그가 비록 한줌도 안 되는 소국의 장수라고는 하나 결코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니올시다.

게다가 고구려 마군들은 무기가 날카롭고 행동이 재빨라서 우리 군사 열 사람으로

그 하나를 대적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신이 요동에 와서 여러 성지의 형세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그 성곽이 높고 견고하며

방비가 굳세어 오랫동안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알고 미리 대비를 해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성들을 일제히 함락시키기 어렵다면 각 성으로 흩어진 군사를 끌어 모아

을지문덕이 있는 이곳 요동성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우문술의 말을 들은 양광은 못내 불쾌한 듯 상을 찌푸렸다.

일찍이 요동성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 양광이었으나 정작 우문술의 말을 듣고 나자

슬그머니 배알이 뒤틀렸다.

기껏 요동성 하나를 취하려고 백만 대군을 모조리 긁어모은다는 것이 자존심이 강한 그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다.

이때쯤 양광의 가슴속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뚜렷한 전공을 세우지 못한 휘하의 제장들을 불신하고

불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탁군을 떠난 지가 대체 언제인데,

반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단 말이냐?

 저따위 개미집 같은 성곽을 취하는 데 무슨 지략이며 계책이 따로 필요한가?

군사들을 일렬로 세워 밟고 지나가도 벌써 수십 번은 더 쑥밭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은가!”

양광은 분통을 터뜨렸고, 우문술은 신성을 취한 자신에게 공치사보다는 책망이 돌아오자

문득 억울한 느낌이 들어 안색이 좋지 않았다.

시종 상을 찡그린 채 입맛을 다시고 앉았던 양광이 우문술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요동성 하나를 취하자고 각지의 제군을 모조리 다 불러모으는 것은 대국의 수치요,

짐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미 지금의 군사로도 과할 만큼 충분하지만 만 사람이 대국의 최고 장수라고 말하는 공이

한낱 을지문덕 따위를 두려워하여 그렇게 말하니 과연 다른 장수들의 뜻은 어떤지를 물어보아야겠다.

만일 모든 장수들이 공과 같이 여긴다면 짐은 현세와 후세의 조롱을 당할지언정 이쯤에서

요동 정벌을 단념하고 군사를 되돌려 서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양광은 즉시 육합성에 데리고 있던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연기를 올려 우중문과 형원항,

설세웅에게도 우문술의 진채로 오도록 하였다.

장수들이 요동성의 동남쪽에 모이자 양광은 불쾌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을지문덕을 두려워하여 모든 군사를 요동성으로 모으자고 한다.

그런데 그의 말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탁군을 출발한 지 반년 만에 우리는 겨우 신성 하나를

취하였을 뿐이다.

만일 사정이 이렇다면 차라리 전에 배구의 말을 좇아 군사를 내지 말고 을지문덕을 믿어보는 편이

더 나을 뻔하였다.

그때 그대들은 오늘 출병하면 내일 당장 요동 전역을 휩쓸기라도 할 듯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다분히 원망 섞인 어투로 장수들을 힐책했다.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늘어뜨린 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아아, 천하에 어찌 이리도 인물이 없단 말인가!

짐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요동에 이르렀으나 대업을 보필할 믿을 만한 장수는 없고,

힘과 궁리는 다하였으며, 식량마저 떨어져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니

비록 만승의 위엄이 곤두박질을 친다 하더라도 이쯤에서 군사를 되돌려 귀환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무오년에 이어 짐과 수나라는 다시금 만천하의 조롱거리가 되는구나!”

양광은 짐짓 땅이 꺼지도록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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