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8. 21:18

 

제14신성(新城)함락 1

 

 

 

그런데 이와 같이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어그러진 것은 추범동이 성주로 있던 북방의 신성에서였다.

신성의 추범동은 수장 우문술이 걸핏하면 홀로 말을 타고 나와 자신을 조롱하고 을지문덕을

겁쟁이라고 빈정거려 가뜩이나 울화통이 터지는 데다, 두 달이 넘도록 성안에만 갇혀 지내게 되자

날이 갈수록 주리가 틀리고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는 우문술이 고함을 지르고 있노라면 성루에 나가서 양주먹을 폈다가 쥐었다가 하며,

“우문술인가 하는 저 빌어먹을 놈은 주둥이도 안 아프나?

쌍판은 꼭 문틈에 낀 늙은 말대가리처럼 생겨가지고 밥만 처먹으면 나와서 개처럼 짖어대니

당최 눈이 괴롭고 귀가 시끄러워 못살겠구나!”

“저런 요란스런 놈은 잡아다가 껍질은 벗겨 북을 만들고 뼈는 깎아서 북채를 만들면 소리가 되우 좋겠다. 대관절 언제까지 저놈의 짖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

“허, 저놈이 또 나왔네? 아이고, 복장 터져 못살겠다!”

그만하면 이골이 났을 법도 하련만 날이 갈수록 자꾸만 마음을 쓰고 분통을 터뜨렸다.

범동의 기질을 아는 부장들이 입을 모아 간하기를,

“들어서 마음 상하는 소리는 아니 듣는 것이 상책이올시다.

우문술이 저러는 것은 장군을 노하게 하여 성문을 열려는 얄팍한 수작이니

상대하지 않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어서 들어갑시오.”

하며 권하였으나 범동이 그때마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느냐?

그러니까 저따위 소리를 두 달이 지나도록 듣고만 지내는 것이 아닌가!”

대답은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일일이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하루는 우문술이 역시 홀로 말을 타고 신성의 북문 가까이 이르러,

“추범동은 들으라! 소문에 듣자니 네가 을지문덕의 졸개로 있을 적에 제법 장도깨나 휘둘러

무예가 절륜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인데, 이는 한줌도 안 되는 소추의 무리 가운데 있었던 일이다.

너는 고사하고 네가 하늘처럼 신봉하는 을지문덕도 우리 대국에 이르면 후군의 마초나 관리할 자격이

될는지 의문이다.

내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너희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대국의 진정한 무예를 한수 가르쳐주고자 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말을 타고 나오라.

만일 이를 거절한다면 너에게는 장부의 기개조차 없는 것이니

비록 성은 지킨다 하더라도 어찌 후대의 조롱거리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겠느냐?”

하고 말하자 시종 아니꼬운 눈으로 성루에 새초롬히 앉아 있던 범동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장 말과 안장을 준비하고 나의 장광도를 가져오라!”

놀란 부장들이 황급히 범동을 만류했지만 이미 범동의 귀에는 부장들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

“저놈의 구린 입으로 희롱하는 사람이 나 하나에 그친다면 언제까지라도 참을 수 있겠지만

우리 상장군을 모욕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자고로 장부는 적의 도전을 받았을 때 피하지 않는 법이며,

섬기는 사람을 능멸할 적에 나서서 꾸짖고 벌하지 않는다면 의가 아니다!

이제 상장군께서 말씀하시던 여름도 되었으니

내 저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서 다시는 저와 같은 광담패설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리라!”

말을 마치자 곧 말잔등에 올라 장광도를 휘두르며 성문을 달려나갔다.

우문술은 추범동이 나오는 것을 보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언제고 성문이 열릴 것에 대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워두고 기다리던 터였다.

“어서 오너라! 그래도 딴에 사내라고 오기는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우문술이 웃으며 말하자 추범동은 노한 음성으로 꾸짖었다.

“수나라의 늙은 개가 감히 어디까지 와서 주야장천 시끄럽게 짖어대는가?

그놈의 주둥이가 땅에 떨어져서도 그처럼 나불거릴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범동은 단숨에 우문술의 목을 취하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우문술은 한 손으로 화급히 말머리를 잡아채며 다른 손으론 범동의 장광도를 막았지만

워낙 내리치는 힘이 거세어 칼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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