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3장 요하(遼河) 28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7. 10:30

제13장 요하(遼河) 28

 

 

 

그러나 일은 양광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고구려 성곽들은 둘레가 사오 리에 달하고 높이는 예닐곱 길이 넘는,

내외 겹축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석성들로, 북방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들이었다.

사다리를 놓고도 오르기 힘든 높고 가파른 성벽에다,

굳게 닫아건 성문 주변에는 철질려와 행마를 빈틈없이 설치하였고,

행여 수나라 군졸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들기라도 하면 위에서는 범접하지 못하도록

포차(砲車)와 차노(車弩)를 배치해 돌과 화살을 정신없이 날려대거나

끓는 물과 기름 따위를 마구 퍼붓곤 했다.

또한 성의 주변을 돌아가면서는 도처에 울타리(柵)를 세우고 구덩이를 깊게 판 뒤

흙과 검불을 덮어 평지처럼 위장해두었는데,

그 아래로는 날카로운 흉기들을 설치해둔 터라 사람이건 말이건 한번 둘러빠지면

살아서 나오는 이가 없었다.

그 바람에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석을 피하여 제법 호기롭게 달려들던 수군들도

 땅이 송두리째 꺼지며 동료들이 그대로 매장되는 것을 보고는 한결같이

두려움에 떨며 좀체 나서기를 꺼려하였다.

대치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서 성에서는 이따금씩 과하마를 탄 날쌔고 용감한

마군(馬軍:기병) 부대가 전광석화처럼 기습을 해오기도 했다.

예로부터 고구려의 군사들은 보군(步軍)보다 마군이 숫자도 많고 훨씬 우세하였는데,

이것은 농부들이 주축이 된 수나라 군사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요,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고구려의 마군들은 자신들도 목가리개가 높고 소매가 손목까지 내려오는 철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였지만 비호처럼 달리는 과하마에도 투구와 얼굴 가리개를 씌우고

잔등에는 철갑을 덮어 타고 다녔다.

이 쇳덩이 철갑부대가 예고도 없이 불시에 달려나와서는 보군들이 주를 이룬 수나라 대군을

종횡무진 무자비하게 습격하고 사라지는데,

그 재빠른 것이 가히 번개와 같았다.

더욱이 이들 마군들이 사용하는 무기에는 길이가 18자에 달하는 장창과 맥궁(貊弓)이라는

작은 활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맥궁은 고구려의 소수맥(小水貊)에서만 나던 것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움직이는 물체를 쏘아 맞추는 데는 더할 나위가 없이 효과적이었다.

장창과 맥궁을 든 쇳덩이 마군 부대가 바람처럼 수군 진영을 헤집고 지나가면

뒤로 남는 사상자는 가히 부지기수였다. 성곽을 사이에 둔 기습전과 단병접전에서

비록 숫자로는 수군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들은 고구려 군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북방의 신성에서는 수나라의 최고 장수 우문술과 젊은 장수 신세웅이 직접 말에 올라

군사들을 독려하며 나란히 남북으로 진군하였으나 세 번 출병하여

모두 군사만 잃고 소득 없이 돌아왔다.

그러자 우문술은 홀로 말을 타고 성곽 근처로 나가서 추범동의 약을 올리며

성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는 듣자니 을지문덕의 졸개로 실은 보잘것없는 인물이나 아첨과 아부를 일삼아

가까스로 성주 자리 하나를 얻어찼다고 하니 어찌 우리를 보고 혼비백산하지 않겠는가?

네가 하늘처럼 따르는 을지문덕이 이미 요동성 성문을 걸어 잠그고 두 달이 넘도록

얼씬거리지 않는 터에 하물며 그의 졸개 따위가 무슨 대책이 있으랴!

그러나 쥐새끼처럼 성안에만 숨어 지낸다고 피할 수 있는 화가 아니니

너는 냉큼 성문을 열고 나와서 자신과 처자의 살 길을 도모하라!

내 너를 보아 말이나 탈 줄 알고 동서만 제대로 구분할 줄 안다면 우리 황제께 말하여

그대로 신성을 다스리게 하겠노라!”

성질이 급한 추범동은 성루에서 우문술의 조롱하는 말을 듣자

연방 안색을 붉히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하지만 그는 요하에서 이미 한 차례

을지문덕의 군령을 어긴 일이 있었으므로 어금니를 깨물며 이를 상대하지 않았다.

현도성과 개모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현도성의 낙우발은 수장 우중문의 군대를 맞아 성변에 미리 설치해둔 건목초

덤불과 볏짚 더미에 성루에서 불화살을 쏘아 화책(火柵)을 올려 방어하였고,

형원항을 맞이한 개모성의 방고는 성루의 사방에 명궁과 팔매꾼들을 일렬로 배치하여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활과 시석을 퍼부었다.

노장 형원항은 며칠을 두고 고전한 끝에 야음을 틈타 민첩한 자들로 하여금

가만히 성벽을 기어오르도록 하였는데, 선발대가 사다리 네댓 개를 상하로 묶어

가까스로 벽의 상부에 이르렀을 때 홀연 성변의 목책에 불이 붙어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지며 위에서는 뜨거운 물과 기름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니

수백 명이 한꺼번에 화상을 입고 추락사하였다.

형원항은 개모성을 장악한 뒤에 어서 군사를 재촉하여 요동성으로 가야 했지만

개모성마저도 쉽게 취하지 못하니 자연히 마음이 바빠졌고,

그 바람에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자주 내려 많은 군사를 잃고 말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변의 목책이 불에 탄 뒷날의 재공격이었다.

그는 군사들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이제 목책이 모두 탔으니 불을 밝힐 재목이 없다.

제군들은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다리를 엮어 성벽을 타고 오르라!”

하니 부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비록 목책은 불에 탔으나 성안에서 우리가 성벽을 타고 오를 것을

미리 간파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어찌 방책이 없겠나이까.”

 

 



하며 만류하였는데 형원항은 고개를 저으며,

“저들은 어제 우리 군사가 패한 것을 보고 오늘은 십중팔구 방심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이다.

잠자코 영대로 행하라!”

하고 언성만 드높였다. 하지만 밤에 수군들이 성벽을 기어오르자

개모성 성주 방고는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양광이 불쌍하구나. 상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나라 백만 군대는 모조리

어중이떠중이를 뭉쳐놓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더니 과연 그 말이 틀림없는 소리다.

어찌 저런 것도 장수라고 대병을 인솔하여 왔더란 말인고!”

하고는 곧 성 중에 명하여 아예 불 붙인 검불더미와 기름에 절인 홰를 아래로 떨어뜨리니

오히려 전날보다 사위가 더 밝아졌다.

전날에 이어 수군들이 참패한 것은 다시 말할 나위가 없었다.

노포와 전차를 이끌고 백암성으로 진격한 설세웅의 10만 군대는 해찬이 5년 동안이나

물감을 먹여 겹겹이 쌓아둔, 석회암처럼 위장한 바윗덩이에 무너졌고,

안시성을 공략한 조효재의 군대도 고각상이 성문을 잠근 채 일절 응전하지 않으니

날짜와 양식만 축내며 가슴을 태울 뿐이었다.

또한 탁군 태수 최홍승은 보름여 만에 안시성의 샛길을 열고 용케도 비사성 북방에 이르렀으나

바닷물을 끌어들인 해자와 깊게 판 참호를 넘지 못해 양편에서 시나브로 팔매질과 시석전만

벌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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