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18장 꿈꾸는 세상 [1]
(369) 18장 꿈꾸는 세상 <1>
전에는 대통령이 같이 식사하자면서 사람들을 부른 모양이지만 한대성 대통령은 다르다.
청와대 비서관은 서동수에게 저녁식사를 하고 오시라는 것이었다.
시간도 오후 8시로 적당했다. 대통령 앞에서 밥이 제대로 들어가는 인간은
좀 덜되었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거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대성은 그렇게 실용적이었다.
자, 서동수는 8시 정각에 청와대 대통령 관저 안 다과실에서 대통령과 비서실장 양용식,
국정수석 장경수와 넷이 둘러앉았다.
서동수는 오늘 국정수석 장경수의 얼굴을 처음 본다.
대통령과 비서실장 양용식이야 언론에 자주 비쳤지만 장경수는 못 보았다.
그리고 애당초 청와대 조직에 관심도 없었고 국정수석이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도 모른다.
“TV 잘 보았습니다.”
대통령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아주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동수가 앉은 채로 머리를 숙였다.
가문의 영광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거저먹는 자리인가?
요즘 정치인이 가장 비난받는 무리지만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
그래야 난맥 같은 국정이 풀린다.
말 몇 마디, 공약 몇 개에 풀리는 정치라면 나도 하겠다.
그것이 서동수의 신념이다.
한대성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의 가슴이 뛰었다.
한대성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이다.
이 ‘오리발’의 머릿속에 지금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것이 한대성의 장점이자 무기다.
그때 한대성이 말을 이었다.
“서 회장님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재능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정치 해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있었습니다.”
한대성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입술 끝만 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사양했습니다.”
“어떤 점 때문에 사양하신 겁니까?”
“첫째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지요.”
한대성이 잠자코 있는 것은 계속하라는 신호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정치도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형체도 없는 유권자의 지지만 얻고는 견뎌 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
“조직을 갖추고 뜻을 함께하는 심복을 키우고, 자금력을 확보한 후에 국민한테
덤비기에는 시간이 너무 들 것 같고 남는 장사가 안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왜요? 누구는 30, 40년씩 노력하는데…….”
웃지도 않고 한대성이 말하자 서동수는 머리를 저었다.
“대통령이 되어야만 애국하는 것이 아닙니다.
떡볶이 아줌마도 세금으로 애국합니다.
저는 대통령 5년 하려고 그렇게 투자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국회의원을 몇 십 년씩 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연봉이나 면책특권, 다른 특전을 다 없앤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하겠습니까?”
“그렇군.”
“제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업가로 족합니다.
아직 신념도 굳지 않아서 대기업도 과분한 인간입니다.”
“겸손하시군.”
혼잣말처럼 말한 대통령이 머리를 들고 양용식과 장경수를 번갈아 보았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분이야.”
그러자 장경수가 당장 뭘 적으려고 덤벼들었지만
막상 적을 것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으로 다시 머리를 들었다.
그것을 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장 수석을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만 내 자문을 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70) 18장 꿈꾸는 세상 <2>
그날 밤,
서동수가 이태원에 위치한 요정 ‘이화’의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11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어이구, 어서 오너라.”
반색을 하면서 맞는 사내는 물론 고교 동창 강정만이다.
강정만은 10시 반에 약속을 했는데도 9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제 파트너는 물론 서동수 파트너까지 방에다 불러놓고 야금야금 술을 마신 것이
양주 한 병을 다 먹었다.
“어서 오십시오.”
서동수가 방 안 아랫목에 앉자마자 마담과 함께 중년 여자가 들어와 정중하게 인사 했는데
척 보아도 이 집 사장이다.
“제가 이 집 대표 양선화입니다.”
그렇게 인사한 여자가 정성이 깃든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잘 모시겠습니다.”
대표는 서동수를 TV에서 본 것이다.
이어서 새 상이 들어왔고 아가씨들이 각각 자리에 앉는 것이 한 치도 중복되지 않고
물 흘러내리는 것처럼 진행된다.
특급 요정은 이런 데서 표시가 나는 것이다. 이곳은 대기업 회장, 장관급 이상 관료,
정치인도 3선 이상급만 온다는 특급 요정이다.
아가씨도 티나게 연예계에서 픽업해온 것이 아니라 산에서 산삼을 찾아내듯 마담들이
시중에서 데려온다고 했다.
물론 소문만 듣고 이곳을 예약한 강정만도 처음이다.
“인사해라.”
대표는 나갔고 상 끝에 앉은 마담이 아가씨들에게 말했다.
“오수정입니다.”
서동수의 파트너가 치마를 부풀리면서 큰절을 했다.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자는 그야말로 그림 같다.
가슴 밑의 잘록한 허리를 보자 치마 속에 감춰져 있는 풍만한 하체가 눈앞에 떠올랐다.
서동수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대통령을 만나고 온 흥분이 뜨거운 열기로 덮이면서 기쁨과 욕망의 시너지로 증폭되었다.
인사를 마치고 서동수의 옆에 앉는 오수정을 마담이 소개했다.
“스물다섯인데요. 경선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오양상사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가
이곳에서 일한 지 두 달 반 되었습니다.”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이것은 영업사원이 제품을 건네주면서 품질 내역을 설명하는 것이나 같다.
이것은 또한 품질보증을 의미한다.
옆에 두고 묻고 자시고 할 과정을 생략까지 해준 터라 약간 삭막하긴 해도 일석 삼조다.
마담은 이연숙,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농염했다.
요정에서는 파트너 대신 가끔 마담하고 연애하는 서동수가 혹할 만한 상대다.
서동수가 바닥이 보이는 술병을 보더니 마담에게 물었다.
“저놈이 벌써 한 병을 다 마셨군. 저거 얼마짜리야?”
대기업 회장은 그런 것은 안 물어보는 모양인지 이연숙이 주춤하다가 대답했다.
“300만 원인데요, 회장님.”
“제일 비싼 술이 있을 텐데, 얼마지?”
“500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이연숙이 겸손하게 술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놈을 마시자고.”
소리 없이 일어서는 이연숙의 치마에서 물컹한 향기가 맡아졌다.
색향(色香)이다. 모두 서동수가 대통령을 만나고 온 것을 아는 것 같다.
서동수가 강정만에게 말해줄 때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대통령은 소문이 나면 하루 전에도 장관 임명을 취소했다지만 서동수는 다르다.
그래서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대통령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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