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쫓고 쫓기다 (4)
오후 2시가 되었을 때 아래쪽 도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장 다가와 식당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가평 교외의 국도변이어서 차량 통행량이 많았지만 오늘은 평일에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도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에는 손님이 중년 여인 셋과 강한 일행 두 팀뿐이다.
강한은 차에서 내리는 두 명의 중년 사내를 보았다.
둘 다 긴장한 듯 몸이 굳어 있는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강한의 눈짓을 받은 백용철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식당의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막 들어서는 두 사내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는 황택수와 합류하려는 것이다.
둘은 곧장 강한 앞으로 다가왔는데 앞장선 사내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뒤를 따르는 사내는 여전히 얼굴을 굳히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유 선생님."
사내는 최광규의 고문 유기호였다.
강한의 손을 잡은 유기호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데서 만나게 되는구만요."
"윈윈이죠."
가볍게 받아넘긴 강한이 뒤에 선 사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강한의 손을 건성으로 쥐었다 놓은 사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앉았을 때 종업원이 다가왔다가 강한이 머리를 흔들자 바로 돌아갔다.
강한은 이미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손을 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유기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박 부장이 원체 조심스러운 사람이라서 말요.
거기에다 최 회장을 10년 가깝게 모시고 있었거든."
유기호가 옆에 앉은 사내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박 부장이 집안 정리하는데 열흘은 걸린다던데. 너무 빨라도 고민이오."
"출국하는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정색하고 말한 강한이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최광규의 빌딩 임대회사인 안국상사의 경리부장 박순홍인 것이다.
박순홍은 강한에게 최광규의 탈세 증거를 가져다주는 조건으로 10억을 받기로 했는데
물론 유기호가 설득을 했다.
그때 사내가 식탁 위에다 들고온 비닐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가방은 꽤 묵직했고 부피도 커서 음식 그릇을 옆으로 치워야 했다.
"5년간 최광규가 탈세한 내역입니다.
내가 다 모으지는 않았지만 이것만 해도 탈세 액수가 800억이 넘습니다."
"당장 구속감이지."
말을 받은 유기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오면서 잠깐 보았지만 엄청난 금액이고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터지면 최광규는 꼼짝 못합니다."
"만일."
한숨을 내쉰 박순홍이 말을 받았다.
"최광규가 구속되더라도 난 한국을 떠나야 됩니다.
최광규가 부하들을 시켜 복수를 할지도 모르니까요."
"안전한게 좋지."
유기호가 맞장구를 쳤을 때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훑어보던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가방을 들고 안쪽 중년 여인들에게 다가가 건네주고 돌아왔다.
놀란듯 입만 딱 벌리고 있는 유기호에게 강한이 말했다.
"회계사하고 변호사 분들이죠. 요즘은 여자분들의 활동이 많아서요."
"그, 그렇죠."
유기호가 여자들을 힐끗거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확인이 끝나면 약속한 금액을 드리지요."
강한이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정색하고 말했다.
강한은 유기호에게도 5억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틀림없겠지?"
조금 걱정이 되는듯 유기호가 정색하고 박순홍에게 물었다.
강한이 회계사와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올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박순홍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틀림 없습니다. 난 사기꾼이 아닙니다."
"거물이야."
먼저 운을 뗀 김희선이 지긋이 장미를 보았다.
국도가 내려다 보이는 모텔의 라운지여서 둘은 마주앉아 있었는데
이곳은 청평댐 근처여서 행락객이 많았다.
라운지 손님들도 모두 가벼운 차림의 남녀들이다. 의자에 등을 붙인 장미가
잠자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순금에 다이아가 박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김희선이 탁자에 놓인 라이터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대한당 재경위원장까지 지낸 4선 의원이라구. 여당 실세야.
당 10역 안에는 항상 들어가는 거물이지."
"얼마 낸데요?"
김희선의 말을 자르듯이 장미가 불쑥 물었다.
그리고는 깊게 빨아들인 담배를 앞쪽에다 대고 뿜었다.
김희선의 얼굴과는 50cm쯤 떨어진 곳에 연기가 뿜어졌다.
이는 도발이나 같다.
그러나 김희선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돈은 얼마 안돼. 하룻밤이고 500쯤 될까?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싫어요."
정색한 장미가 머리를 저었다.
"날 뭘로 보고 이래요? 그럴 바에야 나하고 손 끊읍시다.
얼마든지 브로커 만날 수 있으니까."
옛날 같았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미는 김희선한테 맞아 죽었다.
아니, 언감생심 기가 질려서 김희선 앞에서 눈도 제대로 못떴던 장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입장이 된 것이다.
물론 고용주는 장미였다.
김희선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내 얘기 좀 들어. 그 사람을 잡으면 든든한 백이 된단 말야.
그 사람을 이용해서 수백억을 챙길 수가 있다니까."
"몸 팔고 사기까지 치란 말예요?"
장미가 눈을 치켜떴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난 안해."
"너, 제2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예정이란 소문 들었지?"
"못 들었어요."
"정부가 발주한 그 공사를 몇 구간 만이라도 따면 수백억이 남아.
그 로비만 해도 100억대를 챙긴단 말야."
"어쨌든 사기구만."
"얘가 로비가 뭔지 모르는구만."
혀를 찬 김희선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미국 같은 데선 로비가 정식 사업이야.
로비스트도 명함에다 그렇게 박고 다녀.
한국에서나 인식이 잘못돼서 그렇지."
"미국에선 한국처럼 사기 안치니까 그러겠지."
"어쨌든 이 의원을 만나도록 해. 내가 네 동업자한테도 말해 놓았으니까.
강 사장도 승낙했어."
"강 사장?"
"강한 사장말야."
"어머, 그 사채업자 똘마니가 출세했네. 사장이라니."
눈을 치켜뜬 장미가 김희선이 강한이나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다 내 몸 팔아서 먹고 사는 기생충같은 것들이 사장 소릴 듣는데 난 뭐야?
나 없을 때 날 뭐라고 불러요?
말해봐요. 나간다씨라고 부르나?"
"얘, 그러지마. 누가 널."
"경부고속도로건 고속철도건 난 그런 사기 안치겠어.
난 밑만 대주고 걍 받을 거야. 다만."
장미가 다시 김희선을 노려보았다.
"미사리 송 선생은 내 그게 100만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명기라고 했어.
그러니까 값을 올려야겠어. 하룻밤에 1억으로."
김희선은 눈만 깜박였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대상 고를 때 내 허락부터 받아요. 전직 사채업자 똘마니는 놔두고."
"너."
눈을 가늘게 뜬 김희선이 정색하고 보았으므로 장미는 심호흡을 했다.
김희선이 또박또박 물었다.
"너, 강한이 좋아하지?"
장미가 눈을 치켜떴다가 입술이 웃을 것처럼 펴지더니 곧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뱉듯이 말했다.
"아줌마. 제발 오버하지마. 피곤해."
핸드폰의 발신자 번호를 본 강한이 긴장했다.
조재일의 전화였다.
당분간 잠수 상태로 있으라고 한터라 연락이 온 것은 나쁜 상황임을 의미했다.
더욱이 밤 10시반이다.
저도 모르게 이층 계단에다 시선을 주고난 강한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웬일이야?"
"사고가 났습니다."
불쑥 조재일이 말하자 강한은 눈만 치켜 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조재일과는 서로 반말하는 사이였지만 이제 상하관계로 바뀌었다.
만일 급박한 사고였다면 조재일은 존댓말을 쓸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조재일이 말을 이었다.
"배복수가 잡혔습니다."
"……."
"내가 말렸는데도 어머니 병문안을 갔다가 병원 앞에서."
"……."
"나는 조금 전에 알았지만 잡힌 시간은 두 시간 쯤 전입니다."
"배복수하고 연결된 건 다 버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조재일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놈한테 조직 정비를 맡겼는데 끝났습니다."
"네가 맡아서 해."
"죄송합니다. 형님."
"너도 조심하고."
통화를 끝낸 강한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배복수는 조재일의 교도소 동기로 함께 최광규를 배신하고 뛰쳐 나왔지만
강한에게 신의를 지킬만한 입장도 아니다.
그리고 배복수는 강한의 거처는 물론이고 연락처, 연락 방법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당장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꺼림칙했다.
강한이 손을 뻗쳐 인터폰을 들었다.
이층과 연결된 인터폰이다.
"네."
하고 이층에서 응답했지만 대답이 짧아서 강한은 그것이 한미연인지 장미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난데."
하고 강한이 말하자 저쪽은 가만 있었다. 그래서 강한이 말을 이었다.
"나, 지금 올라간다."
그리고는 인터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터폰 설치는 장미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이층에서 다 들리는데도 장미는 인터폰을 사용하라고 한 것이다.
특히 이층으로 올라올때는 꼭 인터폰으로 허가를 맡아야 했다.
계단을 올라간 강한은 이층 응접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여자를 보았다.
둘은 가운 차림이었는데 장미는 붉은색, 한미연은 은색이다.
다가선 강한을 향해 한미연은 따뜻한 시선을 보냈지만 장미는 TV에 시선을 준 채로 모른 척했다. 앞자리에 앉은 강한이 리모컨을 찾다가 못찾고는 곧 손을 뻗어 TV전원을 껐다.
그때서야 장미가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의 초점도 조금 멀어서 강한의 뒤쪽을 보는 것 같다.
"최광규를 정리하는 중인데 조금 전에 갑자기 우리하고 관계가 있는 사람이 최광규한테 잡혔어."
강한이 말하자 한미연은 긴장했지만 장미는 딴전을 부렸다.
다시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번 작전은 당분간 보류해야겠어. 하지만 길어야 일주일이야. 곧 최광규를 끝낼 테니까."
"아니."
그때 머리부터 저은 장미가 똑바로 강한을 보았다.
이제는 초점이 잡힌 시선이었고 그것이 차가웠다.
"그게 내 일하고 무슨 상관야? 난 최광규인지 피규인지 그자하고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예정대로 할거야."
"이봐, 넌 나하고 얽혀 있단 말이다."
혀를 찬 강한이 말하자 장미는 풀썩 웃었다.
"표현 한번 천박하네, 이 작자. 넌 날 따르는 역할야.
계획하고 실행은 다 내몫이고 넌 개 역할이란 말이다."
한미연은 숨을 죽이고 침만 삼켰다.
노크 소리가 들렸으므로 강한은 머리를 들었다.
다시 노크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문이 열리면서 한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미처 강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한미연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도 되죠?"
들어오고 나서는 문에 등을 붙이고 서서 그렇게 물었으므로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미연은 짧은 바지에 반팔 셔츠 차림이었는데 조금전 2층에서 보았을 때는
은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려고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내려오는데 장미씨가 아무 말 않고 보기만 하더군요."
다가선 한미연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한미연한테서 옅은 향기가 맡아졌다. 여자의 체취가 섞인 향내였다.
강한의 시선이 한미연의 가슴에 닿았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서 셔츠 밖으로 유두의 흔적이 선명하게 돌출되었다.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죠. 강한씨 한테 간다고. 그랬더니 웃더군요. 소리없이."
"……."
"여자인 내가 봐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웃음이었어요."
"……."
"난 장미씨같은 여자 첨 봐요. 저렇게 매력있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강한이 손을 뻗어 한미연의 팔을 잡아 끌었다.
옆쪽에 한미연을 앉힌 강한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잘 왔어. 내가 올라갈까 하던 참이었는데."
"거짓말."
그러면서 한미연이 앉은 채로 바지를 벗더니 방안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욕실이 있네."
"자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
"그럴 참예요."
한미연이 셔츠를 벗자 예상했던대로 알몸이 드러났다.
이제 팬티 차림이 된 한미연이 강한의 앞에 와 섰다.
이번에는 젖가슴이 통째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왜 내려온 줄 알아요?"
"하고 싶었겠지."
강한이 손을 뻗어 한미연의 팬티를 끌어 내렸다.
그러자 눈앞에 한미연의 눈부신 알몸이 드러났다.
"질투죠."
한미연이 말했을 때 강한의 손이 숲을 더듬었다.
그러나 턱을 조금 치켜든 한미연의 얼굴이 어느덧 상기되었고 가슴이 가쁜 호흡으로 흔들렸다.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 둘이 격렬하게 다툴수록 끈적이는 분위기가 돼요.
마치 둘이 엉켜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강한의 손이 아래쪽으로 더듬어 내려가자 한미연은 입을 딱 벌렸다.
얼굴은 더 상기되었고 눈이 가늘어졌다.
강한의 손가락이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미연은 헐떡이며 말했다.
"난 보면 알아. 둘은 증오하는 것 같지만 서로 원하고 있는 거야. 아주 강하게."
"……."
"내가 끼어들어도 둘은 아무렇지도 않아. 당신은 물론이고 장미도."
"……."
"당신은 나하고 섹스하면서 장미를 떠올릴 거야. 그렇지?"
"전혀."
한미연의 몸에서 손을 뗀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강한이 사납게 곤두서서 건들거리는 자신의 물건을 내려보면서 웃었다.
"얘한테 물어봐."
"뭐라고 물어?"
따라 웃은 한미연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강한을 올려다 보았다.
불빛을 받은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금니를 문 강한이 두 손으로 한미연의 머리칼을 움켜 쥐었다.
그리고는 흔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강한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미연은 2층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어젯밤의 흔적은 침대에 남아 있었다.
한미연은 적극적이었고 마치 마른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래서 다섯 번이나 절정에 올랐는데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강한은 마지막 판에 가서야 함께 절정에 올라 대포를 발사했지만 한미연은
강한이 다섯 번 사정한 줄로 알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미연이 절정에 올랐을 때마다 잠깐 쉬었다가 계속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강한은 장미의 인터폰을 받았다.
한미연이 오기 전부처 장미는 식사 때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층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강한이 인터폰을 귀에 붙였을 때 장미가 대뜸 말했다.
"오늘 나 따라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으므로 강한은 입맛을 다셨다.
장미는 오늘도 미사리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백용철과 황택수가 기다리고 있다.
장미는 벌써 보름째 미사리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는데
백용철은 한번 훔쳐본 후부터 장미 앞에서는 제대로 얼굴도 못들었다.
물론 미사리 학교는 강한의 팀에서만 그렇게 불렀고 장미는 모른다.
팀에서는 미사리의 이상한 여자를 미사리 귀신이라고도 불렀다.
30분쯤 후에 강한은 장미와 승용차의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앞쪽에는 백용철과 황택수가 탔다.
미사리 학교에 천상태만 뺀 팀원이 모두 출동하는 셈이었다.
차가 올림픽 대로에 들어설 때까지 장미는 반대편 창밖을 내다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강한도 말을 걸지 않았으므로 차 안은 어색한 정적에 덮였다.
장미는 황택수나 백용철한테는 가끔 농담도 했다니까 오늘 분위기는 강한 때문일 것이다.
"저기."
장미가 입을 열었을 때는 차가 천호대교를 지났을 무렵이었다.
강한은 앞쪽을 향한 채 눈만 껌뻑였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한미연씨를 아래층으로 내려보내. 괜히 오가면서 눈치보게 하지말고."
차 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그러나 장미는 상관하지 않았다.
"2층에는 나 혼자 있겠단 말야. 그러니까 오늘부터 당장 조치해."
그때 강한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저도 내려오면 될 걸 갖고 일 어렵게 만드는군."
"뭐라고?"
눈을 치켜뜬 장미가 강한을 쏘아보았다.
"너, 뭐라고 했어?"
"네 심사를 긁은 이유나 듣자."
이제는 정색한 강한이 장미를 마주 보았다.
"한미연이가 내 방에서 자고 가는게 배가 아픈 거냐?"
"미친 놈, 웃기네."
"너도 내려와서 선생한테 배운 기술을 실험하면 되잖아?"
"이 세상 남자 씨가 말랐다고 해도 그건 안돼."
"한미연도 당분간 아래층으로 못내려 간다. 그건 내 권한이야."
"네."
장미가 눈을 치켜뜨고는 어금니까지 물었다가 풀었다.
"내가 남자 옆에다 두고 너하고 이런 일 하면 어쩔래?"
"어쩌긴 뭐가."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그놈 연장을 뽑아 버리는 거지."
손으로 무를 뽑는 시늉을 하고난 강한이 장미를 똑바로 보았다.
"넌 일 외에는 남자 못 만나.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기가 막힌듯 입이 조금 벌어진 장미를 향해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넌 내 소유물이야. 아니, 그말이 듣기 거북하다면 포로라고 해주지."
강한의 시선을 받은 장미가 지긋이 웃었다.
그러나 눈은 번들거렸다.
"가장 바람직한 너하고 나하고의 관계가 바로 그거야.
그건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영리한 여자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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