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16장 영웅의 조건 [1]
(326) 16장 영웅의 조건 (1)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서동수는 본사의 비서실장 유병선의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KBC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유병선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공한 사업가편이 방영되는데 꼭 참석해주시라고 합니다.”
“나를?”
서동수는 제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렸으므로 헛기침을 해서 목을 다스렸다.
“내가 왜?”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회장님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누구 맘대로 판정을 하고 지랄이야?”
“회장님.”
유병선의 목소리가 더 차분해졌다.
“제 생각입니다만 나가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
“회사 선전은 둘째 치고 KBC의 ‘영웅캠프’에 한번 출연하는 것으로
엄청난 프리미엄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
“거기에 나가려고 은밀하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회장님.”
그건 안다.
현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제가 제 돈 내고 PR하는 시대인데 이건 방송국에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전을 해준다는 것이다.
유병선이 답답해할 만도 하다.
유병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 프리미엄 중 가장 큰 것이 호감도 형성입니다.
회장님, 그 호감도가 형성되면 ‘동성’의 이미지는 몇 단계 상승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었으니 명색이 ‘동성’의 창업자이며 대주주인 서동수가 등을
돌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서동수는 일단 서울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좋아, 오늘 본사에서 보자구.”
그리고 오후 2시반에 서동수는 중국인 비서 임청과 함께 본사 빌딩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병선이 옆을 따르면서 다시 보고했다.
“그동안 또 KBC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작본부장이 꼭 출연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지나던 남녀 사원들이 힐끗거렸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니 비서실장 유병선은 아는 것 같다.
유병선이 외부 손님을 모시고 오는 줄로 보는 모양이다.
하긴 한국은 대통령 사진을 집에 걸어 놓지도 않는 나라다.
만일 누가 걸어 놓는다면 자식들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쪽 팔린다면서
가출을 하거나 나중에는 아버지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런 나라다.
그러니 ‘동성’의 회장이 어느 놈인지 알릴 방법이 있겠는가?
슬슬 서동수의 마음이 정리되어 갔다.
회장실에 앉았을 때 비서 민혜영이 들어와 공손히 절을 하더니 앞에 인삼차 잔을 놓았다.
마침 유병선이 자료를 가지러 갔으므로 서동수가 민혜영에게 물었다,
“중국 비서는 어디 있나?”
“예, 비서실에서 스케줄 보고 있는데요.”
중국비서 임청은 영어, 한국어, 일어까지 능통한 재원이다.
중국 본사 비서실에 근무한 지 3년째, 서동수의 수족이나 같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민혜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단정한 얼굴, 굳게 다문 입술이 이지적이다.
서동수가 불쑥 물었다.
“자넨 내 KBC 출연을 어떻게 생각하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대답한 민혜영의 눈에 생기가 떠올랐다.
민혜영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선 방송에서 ‘동성’의 비전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입시켜 주셔야 합니다.
회장님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시거든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그 정도인가?
(327) 16장 영웅의 조건 (2)
“넌 어떻게 생각해?”
아직도 칭다오에 남아 있는 한수정에게 그것을 물은 것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3할쯤 섞여 있었을 것이다.
출연을 결정하지 않았어도 그렇다.
그러자 한수정이 펄쩍 뛰는 것처럼 반겼다.
“오빠, 해, 해.”
어제 처음 만났지만 뜨거운 밤을 보낸 사이는 금방 이런 분위기가 된다.
“오빠는 대번에 영웅이 되는 거야.”
한수정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국동실업 김 회장, 산호통상 정 회장도 그 프로에 나가려고 로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과연 재벌 가문이어서 재벌 정보가 전해져온다.
숨을 죽인 서동수는 수화기에서 울리는 한수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젯밤의 열기를 떠올렸다.
“오빠는 그 프로에 나가면 인정을 받게 되는 거야.”
그것은 상민에서 양반으로 승격이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다시 한 번 KBC 영웅캠프의 위력을 실감한 셈이다.
통화를 끝냈을 때 유병선과 사장 박한재가 같이 방으로 들어섰다.
박한재도 들뜬 표정이다.
앞쪽에 앉은 박한재가 입을 열었다.
“영웅캠프가 지금까지 14회 방영되었고 2주일에 한 번씩 거의 7개월 동안 이어졌는데
기업가는 회장님이 유일합니다.”
이미 유병선한테서도 들었지만 박한재의 열기 띤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프로를 대통령까지 본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두 달 전에 과학부장관으로 임명한 이길수 장관이 바로 그 경우지요.”
박한재가 숨을 돌렸고 유병선이 이어서 말했다.
“그 한 달 전에 한국대학 교수였던 이길수 씨가 영웅캠프에 나와서
과학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꽤 감동적인 강의를 했습니다.
KBC는 두 번이나 재방을 했다는군요.
대통령이 그것을 보고 이길수 씨를 장관으로 낙점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서동수가 말했지만 둘은 웃지 않았다.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곧 길게 숨을 뱉고 말했다.
“나보다도 회사를 위해서 출연해야겠구먼.”
“잘 생각하셨습니다.”
얼굴을 환하게 편 박한재가 머리까지 끄덕였고 평소에 차분했던 유병선이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으면서 말했다.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뭘 준비하겠다는 거야?”
“답변 내용부터 그동안에 회장님 이미지 관리까지 해놓아야 합니다.
인터넷 안티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고 회장님께서는 대화 교육도 받으셔야 됩니다.”
“아니, 이런.”
당황한 서동수를 무시한 채 유병선이 박한재에게 말했다.
“사장님께서 영웅캠프 준비위원장이 되셔야겠습니다.”
“아, 그거야 당연히.”
어깨를 편 박한재가 말을 이었다.
“유 실장이 실무책임을 맡지.”
“알겠습니다.”
그때 입맛만 다시고 있던 서동수가 둘에게 말했다.
“그럼 난 중국 본사로 돌아가 있을 테니까 연락을 해주도록.”
“알겠습니다만 영웅캠프 준비 일정이 나오면 회장님께선 그대로 따라주셔야겠습니다.”
유병선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으므로 서동수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불쑥 나왔지만 이것이 서동수의 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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