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15장 억만장자 [9]
(320) 15장 억만장자 (17)
저녁, 셋이 호텔 아래층 중식당에서 요리와 술을 시켜먹고 있다.
중식당의 방에서는 대개 원탁 테이블이 회전되어서 요리를 앞에 놓고 덜어먹는다.
이제는 중국 요리에 익숙한 서동수가 요리를 주문했고 여자들은 만족했다.
우량애(五糧液)주 50도짜리를 세 잔 마시고 난 한수정의 볼과 눈 주위가 붉어졌다.
그것을 본 서동수는 목구멍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한수정이 네 잔째 술잔을 들고 서동수에게 말했다.
“서 회장님,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대가는 드리겠어요.”
“대가는 뭔데?”
서동수 대신 정재민이 묻자 한수정이 대답했다.
“미수 공사비의 5%를 드리겠어요.
그리고 들어간 경비도 모두 대금에서 지급하겠습니다.”
한수정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거금이다.
3억 불의 5%면 1500만 불, 160억이 넘는다.
그러나 경비까지 모두 공사비를 받고 나서 준다는 것이다.
만일 공사비를 받지 못한다면 서동수는 경비만 날리는 셈이다.
“검토해 보지요.”
“부탁합니다.”
들고 있던 우량애주를 한 모금에 삼킨 한수정이 물기가 번진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제가 경비를 먼저 드리는 것이 예의이고 정상적인 방법이지만 회사 자금이 부족해요. 아니.”
딸꾹질이 나는지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던 한수정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자금이 바닥난 지 오래 되었어요.
이젠 사채 시장에서도 돈을 빌려주지 않아요.
제 회사 어음은 휴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답니다.”
“얘, 한수정.”
정재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아냐, 언니.”
쓴웃음을 지은 한수정이 빈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 회장님한테는 허세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술잔을 든 한수정이 서동수를 보았다.
붉은 입술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한수정이 그 입술을 열고 물었다.
“회장님, 제 회사 사정 알고 계시지요?”
“예, 조금은 압니다.”
“제가 받은 재산을 다 쏟아 부었어요. 부동산도, 다른 주식까지 다.”
한수정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눈빛은 더 강해졌다.
서동수가 홀린 듯이 한수정을 본 채 시선을 떼지 않는다.
다시 한수정이 말했다.
“6년째 경영에 참여했지만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요.”
마침내 한수정의 두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맑고 깨끗한 눈물방울이다.
서동수는 그것이 보석방울처럼 느껴졌다.
한수정이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훑어 던지고 나서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러고는 한 모금에 삼켰다.
“얘, 그만 마셔.”
정재민이 말렸는데 이런 분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그 동안 한수정은 정재민과 돈거래를 계속했을 것이다.
서동수는 정재민의 성품을 안다.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신용이 없거나 자금 회수 가능성이 없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마침내 서동수가 그렇게 말하고는 술잔을 쥐었다.
“하지만 일을 맡을지 어쩔지는 상황을 보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맡는다면 불공평한 조건도 바꿔야 한다.
(321) 15장 억만장자 (18)
“회사가 어려워.”
한수정이 화장실에 갔을 때 정재민이 말했다.
길게 숨을 뱉은 정재민의 말이 이어졌다.
“난 한수정이 그런 부탁을 할 줄은 생각 못했어. 만나서 사업 이야기나 할 줄 알았지. 그리고 또.”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정재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둘 다 혼자 아냐?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
“넌 어떻게 하고?”
서동수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정재민을 노려보았다.
“넌 싱글 아니냐?”
“넌 날 섹스 파트너 이상으로는 넘어오지 않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서동수가 투덜거렸다.
“별걸 다 양보하고 있어.”
“속으로는 좋으면서 시치미 떼지 마.”
정재민도 눈을 흘겼다.
“아까 한수정이 쳐다보는 걸 보니까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더구만 그래.”
“진짜 섹시하데.”
“어때? 하고 싶어? 내가 방 비워줄까?”
“아, 시끄러.”
“내가 오늘 밤 방 옮겨 줄 테니까 들어가 봐. 눈치로는 오케이 하겠더라.”
“안돼. 그럼 빼지도 못하게 돼.”
“박고 있어. 그럼.”
그때 한수정이 들어섰으므로 둘의 이야기는 끝났다.
한수정은 정재민과 함께 프레지던트룸에 같이 투숙하고 있는 것이다.
방이 세 개짜리 초특급 룸이니까 셋이 들어가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 돌아가십니까?”
서동수가 물었더니 한수정이 힐끗 정재민을 보았다.
“언니하고 목요일에 떠나기로 했어요.”
그러면 이틀 밤을 묵는 셈이다.
그때 정재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화장실.”
정재민이 방을 나갔을 때 서동수가 지그시 한수정을 보았다.
서동수도 술을 일곱 잔 마셨고 한수정은 여섯 잔이다. 다 세었다.
“정 사장은 한 감사님이 그런 말씀까지 하시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던데요.
놀란 것 같습디다.”
“정 언니, 괜찮은 분이에요. 존경하고 있어요.”
한수정이 붉어진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맑은 눈이 깜박이지도 않고 서동수를 응시하고 있다.
“서 회장님 칭찬 많이 하셨어요. 배울 점이 많다고 하시더군요.”
“과찬이십니다.”
“섹스 파트너지만 한 번도 공사를 혼동한 적이 없는 분이라고도 하시데요.”
“…….”
“그 말을 듣고 부탁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미인계를 써도 먹히지 않을 분이니까요.”
“그렇군.”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여덟 잔째 우량애주 잔을 들었다.
술은 달고 부드러워서 어머니 젖처럼 술술 넘어간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한수정을 보았다.
화장실을 간 정재민은 늦게 들어올 것이다.
그 여우는 정보는 다 쏟고 나서 둘에게 기회를 주려고 화장실에 앉아 있다.
“난 졸부, 그러니까 벼락 재벌이 되고 나서 내 기준을 설정하는 데 지금 혼란기를 겪고 있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인데도 한수정은 경청했다.
“그래서 재벌 가문에서 태어난 성골 재벌은 도대체 어떤 사고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 기회가 온 것 같네요.”
서동수가 트림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같이 자면서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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