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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3장 대한국인 (10)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51

<142> 13장 대한국인 (10)

 

 

(280) 13장 대한국인 (19)

 

 

미혜가 가장 재미있게 놀 때는 제 또래인 친구들하고 모였을 때다.

어머니는 학교가 끝나면 자주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불렀는데 거기에

두 살 위의 언니 정미가 끼어 놀았다.

형수는 성품이 착하고 자상해서 항상 미혜부터 챙겼으니

어머니의 빈 자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동수는 미혜를 보면 가슴이 아팠고 미안했다.

어머니의 자리는 정신없게 만들고, 또는 물질로, 대역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악처라고 해도, 악질 엄마라고 해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특히 어린 나이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에 서동수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새엄마는 안 돼요.”

일요일이다.

서동수는 가능하면 일요일에는 집에서 미혜와 함께 놀았는데 전에는 안 그랬다.

박서현과 살 때는 일요일에도 대부분은 나가 일했다.

미혜는 제 친구들하고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었고

소파에 서동수와 어머니, 형수 박애영이 둘러앉았다.

TV에는 한국 드라마가 재방되는 중이었는데 음소거를 시켰다.

둘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오히려 미혜 정서에 해롭습니다.

혼란스러워지고 새엄마한테 아빠를 빼앗겼다는 의식이 들 것이고

어머니, 형수하고의 조화도 깨집니다. 아무리 그 여자가 잘해도 말이지요.”

어머니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는데 말을 참는 눈치였다.

박애영은 외면한 채 듣기만 한다.

이야기의 발단은 어머니가 서동수에게 재혼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때 방에서 미혜와 정미가 달려나와 이층 계단으로 사라졌다.

미혜는 활짝 웃는 얼굴이다.

미혜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사업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도 드문데 새엄마까지 등장시켜 보세요.

미혜가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너는?”

마침내 어머니가 물기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가 주름진 얼굴을 더 찌푸리고 서동수를 보았다.

“이놈아, 네 인생은? 마누라 없이 살아갈 작정이냐?”

“집 지키는 마누라 말인가요?”

불쑥 물었던 서동수가 곧 시선을 내리더니 머리를 저었다.

“어머니, 내 걱정은 말아요.

난 미혜한테 죄를 지었고 그 죗값으로 혼자 살 겁니다.

여기서 새엄마를 미혜 앞에 등장시키면 안 돼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래?”

어머니가 턱을 쳐들고 물었을 때 박애영이 나섰다.

“아휴, 어머님도, 왜 그러세요? 시아주버니 속상하라고 일부러 그러시죠?”

이번에도 박애영이 수습했다.

소리 죽여 숨을 뱉은 서동수가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돼. 미혜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아이고, 이 망할 놈, 말하는 것 좀 봐.”

어머니가 펄쩍 뛰었으므로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분간 어머니는 재혼 이야기를 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또 시작한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 되었을 때 서동수가 박서현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집안사람 모두, 미혜까지도 눈치를 챈 듯 찾지 않는 박서현이 전화를 해온 것이다.

서동수가 베란다로 나오고 나서 통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대뜸 물었더니 박서현이 잠깐 주춤하다가 대답했다.

“미혜 잘 있지?”

서동수가 숨을 들이켜자 박서현이 다시 묻는다.

“서울에는 언제 오는 거야?”

 

 

 

 

 

(281) 13장 대한국인 (20)

 

 

칭다오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칭다오로 갈 적에는 맞바람을 받아서 1시간 15분쯤 걸리지만

돌아올 때는 뒷바람 덕분에 50분 만에 도착할 때도 있다.

서동수가 서울 시내로 진입했을 때는 오후 1시 경이다.

뒷바람을 타고 50분 만에 왔지만 시간을 1시간 더 먹어서 2시간이 걸렸다.

서울과 칭다오는 1시간 시차가 있는 것이다.

예약한 서교동의 호텔방에 들어간 지 10분도 안 되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느긋한 태도로 핸드폰을 거낸 서동수가 발신자를 보았다.

박서현이다.

어제 전화가 왔을 때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통화 버튼을 누른 서동수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어디야? 나, 지금 커피숍에 있는데.”

박서현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뛰었고 입 안이 갑자기 바짝 말랐다.

그러나 서동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나, 1208호실에 있어.”

그러자 잠깐 주춤했던 박서현이 말했다.

“내가 올라갈게.”

핸드폰을 귀에서 뗀 서동수가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덧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문득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서동수의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때 문의 벨이 울렸다.

서둘러 다가간 서동수가 문을 열자 선물상자를 든 박서현이 잠자코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시선만 주었을 뿐 인사도 없고 조금 굳어진 얼굴이다.

선물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박서현이 코트를 입은 채로 소파에 앉았다.

파마한 머리는 잘 어울렸고 옷차림은 세련되었다.

코트를 입었기 때문인지 임신 7개월째의 몸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동수도 입을 다물고는 앞쪽 소파에 앉았다.

네가 만나자고 했으니 이야기를 하라는 표시다.

그러나 짐작하고는 있다.

지난번 오더를 만들어준 대가를 받아야겠다고 한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대가가 바로 몸이다.

이윽고 시선을 든 박서현이 서동수를 보았다.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

“내가 당신이 그렇게 비열하고 더러운 인간인지 잠깐 잊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오더 만들어 준 거에 잠깐 감동을 했지.”

“…….”

“내 몸을 더럽히면 우리 가정을 깨뜨리는 기분이 들겠지만 천만에 말씀이야.

당신 뜻대로 안 돼.”

“…….”

“그래, 한강에 배 지나간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구.”

그러더니 박서현이 코트의 벨트를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트를 벗자 원피스 밑의 둥근 배가 드러났다.

임신부의 배다.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미혜를 임신했던 박서현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저 배에 귀를 붙인 적도 수십 번이다.

배에 귀를 붙이고 있다가 안에서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박서현이 원피스를 벗으면서 말했다.

“뒤에서 해.”

서동수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선물상자로 옮겨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선물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바비 인형이 드러났다.

미혜가 좋아하는 인형이다.

인형을 집어든 서동수가 물었다.

“이거 누구 인형이야?”

그때 원피스를 벗던 박서현이 내쏘듯 말했다.

“놔 둬, 내 딸 거야.”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제 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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