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12장 도전 (8)
(254) 12장 도전 - 15
칭다오에 돌아온 것은 그날 밤 12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양곤의 밍글라돈 국제공항에서 방콕, 베이징을 거쳐 돌아왔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탄
시간까지 합하면 걸린 시간이 10시간 반이다.
“아빠, 지금 와?”
자지 않고 기다리던 미혜가 달려와 안기는 바람에 서동수는 콧등이 시큰거렸다.
미혜는 밝다.
어머니와 형수가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성이 밝다.
베이징 공항에서 산 인형을 안겨 주었더니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미혜가 안 자는 바람에 같이 놀아준 조카 정미와 영진에게도 선물을 나눠준 서동수에게
형수 박애영이 말했다.
“아주버님은 신경 쓰시는 데가 많아서 피곤하시겠어요.”
저고리를 어머니에게 넘겨준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형수.”
머리를 저은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머리를 많이 쓰면 이런 일은 보통이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어머니가 꾸짖었다.
“네 형수는 네가 안정이 되기를 바라는게다. 이놈아.”
서동수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머리를 많이 쓸수록 함량이 많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동선 관리만 철저히 해도 보통 인간의 몇 배가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씻고 나왔더니 어느새 집안이 조용해져 있었다.
아이들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는 인형을 껴안고 잠이 든 미혜를 내려다보았다.
같은 방을 쓰는 사촌언니 정미도 반대쪽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뒤로 다가선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미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엄마는 없지만 잘 큰다.”
“미안해, 어머니.”
미혜를 내려다보면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미혜를 돌볼 시간이 없어.”
“시간이 지나면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두 형제를 키웠다.
미혜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다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내가 겪어봐서 안다.”
방으로 돌아온 서동수가 문득 침대 옆에 내려놓은 핸드폰이 깜박이는 것을 보았다.
메시지가 저장되었다는 표시다.
핸드폰을 집은 서동수가 메시지창을 켰다.
박서현한테서 온 메시지다.
창가의 의자에 앉은 서동수가 메시지를 읽었다.
“서울 올 때 이틀 전에는 연락할 것.”
읽고 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박서현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한동안 메시지를 바라보던 서동수가 머리를 들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화가 난 김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박서현의 새 가정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맨정신으로 어찌 그 짓을 하겠는가?
박서현의 새 남편 정영철을 오입시켜 준 것으로 끝내자.
박서현까지 망가뜨려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
새벽 1시가 되어가고 있다.
박서현은 30분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은 지금 밤 12시일 테니까 11시 반에 이 메시지를 보냈단 말인가?
남편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가 길게 뿜었다.
제 딸 미혜의 안부 정도는 물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 번 달라는 것에나 집중하고 있다니,
서동수의 어금니가 물려졌고 다시 생각이 바뀌어졌다.
서동수는 호흡을 고르면서 일어섰다.
생각이 많으면 걱정도 많은 것 같다.
(255) 12장 도전 - 16
“야, 메이가 빨랑 오란다.”
우명호의 전화가 왔을 때는 오후 6시 반, 서동수가 마악 사무실을 나온 참이었다.
오늘은 칭다오 매장을 둘러볼 작정이었기 때문에 서동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메이의 세탁소 이층은 안 간 지가 다섯 달쯤 되었다.
우명호가 틈틈이 찾아가 즐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나 바빠, 다음에.”
전처럼 그렇게 거절했더니 우명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야, 오늘은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가수란다.
대동강악단 소속이었다는 거다. 메이가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끝내준다는 거야.”
우명호가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것도 부족한지 우명호의 말이 이어졌다.
“마음에 안 들면 메이가 수수료 안 받는단다. 칭다오에 처음 온 애들이래.”
마침내 서동수가 헛기침을 했다.
“네가 책임질 거냐?”
“내가 술 살게.”
“좋아. 속는 셈 치고 가지.”
“7시 반이다. 늦지 마.”
요즘 들어 메이의 세탁소 2층도 한물갔다고 제 입으로 씹어댔던 우명호다.
메이가 아무나 끌어들이는 바람에 창녀촌같이 되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오는 것이 여자 만나러 술집 가는 놈들의 운명이다.
서동수 또한 ‘혹시나 축’에 끼어서 메이의 세탁소로 들어섰다.
저녁 7시 30분, 세탁소로 들어서자
메이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맞으면서 눈으로 이층을 가리켰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놈이 벌써 왔구먼.”
이제는 중국어로 대답했더니 메이가 대답했다.
“여자들도 와 있습니다.”
걸음을 멈춘 서동수가 메이를 보았다.
“메이, 정말 북한 가수야? 조선족이나 탈북자 잡아놓고 위장한 것 아냐?”
“아닙니다.”
“아니라는 증거를 대봐.”
“만나보시면 알 겁니다.”
메이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둘은 베이징에 있다가 칭다오로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다고 합니다.
칭다오에 북한 식당을 개업하려고 온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도 돼?”
“달러를 벌려고 그런다네요.”
메이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아주 예뻐요, 마음에 드실 겁니다.”
반신반의했지만 마음이 급해진 서동수가 계단을 두 개 세 개씩 건너뛰어 이층에 올랐다.
그러고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먼저 우명호가 활짝 웃었다.
“웰컴.”
서동수가 우명호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좌우에 앉은 두 여자를 보았다.
그 순간 두 여자가 일어섰는데 키가 크다.
왼쪽 여자는 파마한 머리에 베이지색 재킷과 스커트 차림이었고 오른쪽은 긴 생머리에
몸에 딱 붙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었다.
그래서 볼륨 있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으음.”
저절로 신음을 뱉은 서동수가 앞쪽 자리에 앉고 나서야 우명호를 흘려보았다.
여자 둘이 우명호 좌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한테 선택하라고 해.”
그러자 두 여자는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선 채였고 긴장된 표정이다.
그때 서동수가 설명했다.
“아가씨들이 남자를 고르란 말씀이야.”
서동수의 얼굴에 활기가 띠어졌다.
“코를 보고 고르던가, 나는 두 시간, 저 놈은 10분짜리니까 그걸 기준으로 고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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