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12장 도전 (7)
(252) 12장 도전 - 13
오후 7시, 양곤 시내의 한식당 한국관에서 서동수는 대우섬유 박기출 사장과 만나 저녁을 먹는다. ‘대우섬유’라고 해서 대우그룹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대우’ 상호가 자주 보인다.
한국에서는 대우가 몰락했지만 동남아에서의 ‘대우’ 명성은 아직도 가셔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기출은 46세, 베트남에서 3년 동안 섬유업을 하다가 미얀마로 넘어온 지 2년째,
베트남 이전에는 중국에서 5년을 살았다고 했다.
소주잔을 든 박기출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여기도 경쟁이 심해지면 인도로 갈 겁니다.
인도도 지금 급발전을 하고 있지만 인구가 많은 데다 교육수준, 손재주가 좋아요,
난 인도까지 가서 서정(西征)을 그치렵니다.”
“서정(西征)이라고 하셨어요?”
서동수가 웃으며 묻자 박기출이 손가락으로 탁자에 한문을 써 보였다.
“나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섬유업계처럼 단순 임가공업체들이 말이죠.”
서동수는 칭다오 공장에 있을 적에 박기출의 대우섬유에 대해서 알아놓은 것이다.
이곳은 인건비가 중국의 30% 수준이다.
베트남의 50% 수준이라고 했다.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킨 박기출이 말을 이었다.
“미얀마는 금방 개방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50년 군부통치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가능성은 희박해요. 하지만…….”
박기출이 검게 그을은 얼굴을 펴고 웃었다.
“하나씩 나사가 풀어지면서 허점이 드러나지요.
비집고 들어갈 구멍 말입니다.
그 구멍을 파고드는 건 한국인이 제일입니다.”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박기출이 실핏줄이 번진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중국도 한국인이 그렇게 뚫고 들어갔지요.
나는 중국 사업가 대부분이 한국 사부들한테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내 사업체를 내가 가르친 중국인 부장 놈한테 넘기고 떠났으니까요.”
서동수의 머릿속에 이인섭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
중국의 개방 이후로 한국 사업체, 특히 중소기업체가 물밀 듯이 중국대륙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지금은 단순 임가공업체는 중국에서 괄시를 받는 입장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각 성(省)은
한국 기업체를 유치하려고 온갖 특혜를 다 내놓았다.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한 모금을 삼켰다. 앞으로 서동수의 의류는 이곳에서 생산할 계획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업 수단이 뛰어나다는 유대인, 중국인은 물론이고 인도인까지 훑어봐도
한국인처럼 치열하게 뻗어나가는 민족이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 건국 65년, 2차대전 이후의 신생국으로 선진 20개국 대열에 든 국가는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이것은 모두 이런 기업인들의 열정이 만들었다.
박기출이, 지금 미얀마 손님을 맞는 한국관 주인도, 주방의 부인까지.
서동수가 박기출의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말했다.
“양곤에 사무실을 차릴 겁니다.”
“잘하셨습니다.”
박기출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제가 힘껏 돕지요.”
한국관을 나왔을 때는 오후 10시경이다.
영업용 택시는 한국산 중고차였는데 유리창이 절반쯤 내려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부는 깨끗했고 잘 달렸다.
서동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함께 탄 박기출이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 사장님, 한잔 더 하셔도 되겠지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박기출이 눈웃음을 쳤다.
“오신다고 해서 제가 준비를 했습니다.”
(253) 12장 도전 - 14
“어떤 준비 말입니까?”
대충 짐작이 갔지만 서동수가 묻자 박기출이 새끼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여자가 없으면 안 되지요. 제 집에 가십시다.”
“집에 가다니요?”
놀란 서동수의 표정을 본 박기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와이프는 서울 갔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내 세상이지요.”
“집에 여자가 있단 말입니까?”
“둘 준비해 놓았습니다.”
박기출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집에서 노는 것이 안전합니다.
애들이 영어도 잘하고 괜찮아요.
오늘밤은 제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면 됩니다.”
그때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그냥 호텔로 가렵니다.”
박기출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웃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에 하지요.”
“아니,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애들도 괜찮구요.”
“다음에 꼭.”
서동수가 다시 사양하자 박기출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입맛을 다셨다.
“할 수 없지요. 그럼 저 혼자 놀아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성(性) 접대가 가장 활발했던 때가 80년대와 90년대일 것이다.
그때는 접대술을 마시고 2차 가는 것이 필수 코스였다.
90년대 초기에 한국을 떠나온 박기출은 그 습관이 그대로 박혀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접대 문화가 남아 있긴 해도 고급화, 다양화되어서 예전처럼 술 마시고 2차를 찾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호텔 앞에서 박기출과 헤어질 때 서동수가 정색하고 해명했다.
“저, 여자 좋아합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바쁜 일이 있어서요.”
“그러시다면 다음 기회에 하십시다.”
박기출은 바이어 입장인 서동수를 2차까지 접대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었을 때 서동수는 호텔 아래층 식당에서 레이를 맞는다.
테이블에서 기다리던 서동수가 다가오는 레이를 보았다. 아름답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다.
레이는 남방계 특유의 넓은 콧등, 광대뼈가 두드러진 용모가 아니다.
콧날이 곧은 데다 갸름한 얼굴형, 도톰한 입술이 단정하게 닫혀 있다.
다가온 레이가 앞자리에 앉더니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제 소주 많이 드셨어요?”
박기출을 만난 걸 아는 것이다.
레이는 소주를 그대로 한국어로 발음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호텔 아침식사는 뷔페식이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지.”
삶은 계란과 토스트, 썰어놓은 야채를 접시에 담아온 서동수가 토마토 주스와 토스트만 가져온
레이에게 말했다.
“양곤에 사무실을 낼 작정이야.
어젯밤에 만난 대우섬유 박 사장이 내 오더를 생산하게 될 텐데
제품생산과 품질을 현장 체크할 사람이 필요해.”
긴장한 레이가 몸을 굳혔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당장은 한 사람이 필요해. 레이가 맡아 주겠어?”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레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숨을 한 번 마시고 뱉는 동안 레이는 서동수의 셔츠 두 번째 단추쯤에 시선을 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차분한 성품이다.
이곳은 일자리도 많지 않아서 레이는 2년 가깝게 거의 실직 상태다.
이윽고 레이가 머리를 들어 서동수를 보았다.
얼굴이 더 붉어졌다.
“일자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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