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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1장 세상은 넓다 (11)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32

<121> 11장 세상은 넓다 (11)

 

 

(238) 11장 세상은 넓다 - 21 

 

 

 

서오후 6시 반,

곧장 집에 돌아와 미혜하고 놀아주던 서동수는 벽시계를 보고 나서 혼자 침실로 들어왔다.

창가의 의자에 앉은 서동수가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누른다.

발신음이 꽤 오래 울리는 이유도 짐작이 갔으므로 서동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박서현이다.

서울은 7시 반,

박서현은 집에서 전화를 받을 것이었다.

임신 5개월, 아니 6개월이 되었나?

요즘은 미혜한테 한 달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하지만

곧 석 달에 한 번, 애를 낳고는 1년, 2년에 한 번씩으로 늦춰지겠지,

다시 애가 생긴다면 소식이 끊긴다. 그것이 인간사(人間史)다.

서동수의 어머니 말씀이다.

“응, 난데.”

발신자 번호를 보고 나서 박서현은 망설였던 것이다.

서동수의 목소리를 들은 박서현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웬일이야? 미혜는 잘 있어?”

“잘 있어, 미혜 걱정은 말고.”

“그럼 왜?”

서동수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거기, 네 남편 퇴근했어?”

“글쎄, 왜?”

박서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빨리 용건을 말해, 나, 밥상 차리는 중이야.”

그 순간 서동수의 가슴이 울컥, 했다.

저런 열성으로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뱉는 사이에 박서현이 또 입을 놀렸다면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으로 박서현은 기다렸다.

“네 남편 좀 바꿔줘.”

“왜?”

놀란듯 박서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쳤어? 왜 그래?”

사업문제로 그래, 이 병신아.”

마침내 서동수가 욕을 했다.

옛날 같으면 바락바락 대들었겠지만 지금은 전화를 끊을 가능성이 많았으므로

서동수가 서둘러 말을 잇는다.

“니 남편 회사 제품을 중국 자동차 회사에 납품해 보려고 하는 거야. 개소리 그만하고 빨리 바꿔.”

“뭐?”

‘개소리’라는 말에 다시 열이 올랐던 박서현이 주춤했다.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시 서동수는 심호흡을 했다.

저 자식, 정영철은 무슨 재주가 있길래 무능하면서도 박서현에게 저런 보호를 받는가?

물건이 큰가? 아니면 넣고 다섯 시간은 돌리는 놈인가?

그때 박서현이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그러고는 5분쯤이나 지났을 때 박서현의 새 남편 정영철이 전화를 받았다.

서동수와는 처음 통화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먼저 결혼, 축하드립니다.”

서동수가 그렇게 인사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정영철의 목소리는 굳어져 있다.

병신, 입술로 중얼거린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제가 중국에 있는데 얼마 전에 베이징의 대동(大東)자동차 간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한국 자동차 부품 공장소개시켜 달라고 해서요.”

보나마나 정영철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어 있을 것이었다.

연결만 되면 대박이다.

숨을 돌린 서동수의 눈앞에 박서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는 얼굴이다.

저 웃는 얼굴을 언제 보았던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도 안 난다.

“제가 문자로 주소 보내드릴 테니까 샘플하고 오퍼 보내 주시지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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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맙습니다.”

대화가 끝났을 때 정영철이 인사를 했다.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서동수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천만에요. 문득 자동차부품 공장을 하신다는 것이 생각나서요.”

“내일 아침에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수수료는 얼마로…….”

“가격에 수수료 10%를 넣으시면 10% 안에서 가격을 절충해 보겠습니다.”

“아. 예, 좋습니다.”

정영철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어쩔 수 없이 오더를 받고 수수료까지 떼어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공장을 돌리려고 손해가 나면서도 오더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정영철의 회사는 부도 일보 직전이 되었다.

통화를 끝낸 서동수가 응접실로 나왔더니 어머니가 물었다.

“저녁은 밖에서 먹을 거냐?”

“예, 약속이 있어서.”

서동수가 두리번거리자 형수가 말했다.

“미혜는 정미하고 영진이하고 방에서 공부해요.”

형 서민수의 남매까지 같이 사는 터라 미혜는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다.

“저, 오늘 출장을 가서요. 내일 아침 일찍 들어올게요.”

뻔하지만 그렇게 말했더니 어머니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여자 조심해라.”

현관까지 따라오다 형수가 몸을 돌렸고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딴 데서 자식은 맹글지 말란 말이다. 나, 미혜 하나만 키울 거다.”

“어머니도, 참, 걱정하지 말라니깐.”

머리칼이 솟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서동수는 서둘러 현관을 나왔다.

오정미한테서 정영철의 공장이 부도 직전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서동수는

인연을 통해 베이징의 대동자동차 간부와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찾으려고 노력하면 길이 보인다.’

이것이 서동수의 사업정신이다. 정영철을 돕는 것이 박서현을 안정시킬 것이고,

그것이 미혜의 정서에 이롭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두 번째가 또 있다.

박서현에게 ‘넌 병신 같은 놈을 만났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실패한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한 위안이 될 것이다.

서동수가 프린스호텔 스위트룸 앞에 섰을 때는 오후 7시 반이다.

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렸는데 그 순간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앞에 선 정재민이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들어와.”

웃음 띤 얼굴로 정재민이 말하더니 옆으로 비켜 섰다.

“쇼 타임이야.”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의 뒤에서 문을 닫은 정재민이 브래지어를 풀면서 말했다.

자기도 벗어.”

“미쳤구나.”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환하게 웃었다.

“그래. 미쳤다.”

이젠 팬티를 벗은 정재민이 서동수를 향해 던졌다.

팬티가 서동수의 어깨에 맞더니 걸쳐졌다.

검정색 레이스가 달린 팬티다.

서동수가 팬티를 쥐더니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하고 만날 때 목욕을 하지 말라고 했어. 이 냄새를 맡으려고.”

“이리 와서 맡아, 그럼.”

알몸으로 선 정재민이 허리에 두 손을 짚고 서동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내 몸을 마음 놓고 드러내는 인간은 세상에 자기 하나뿐이야.”

“영광이군.”

서동수도 옷을 벗으면서 말했다.

정재민의 온몸을 샅샅이 훑어보면서 저고리를, 바지를, 셔츠를, 팬티를 벗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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