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11장 세상은 넓다 (10)
(236) 11장 세상은 넓다 - 19
서동수의 의류 브랜드는 5개, 물론 한영복과 분가한 후에 개발한 진영아의 작품이다.
브랜드 소유권은 서동수가 쥐고 있었지만 진영아는 착실하게 제품 이미지를 고양시켰다.
소량 다품종 생산 방식을 원칙으로 했고 서동수는 매장 또한 소형화시켜서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고급 이미지는 지키도록 해서 선전효과를 노렸다.
동양그룹과 에이전시 계약을 맺은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서동수는 쿠웨이트에서 구형 휴대폰
1만 개를 팔았다.
동양전자에 쌓여 있던 재고를 처리해준 것이다.
재고 가격은 기준이 없어서 상황에 따라 조정이 되고 많이 사가면 가격도 내려간다.
수시로 신제품이 나오는 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재고품 가격이 떨어져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동수는 부가세를 포함한 생산가에 15퍼센트 마진까지 붙여 팔았기 때문에 회사측의
신임을 받았다.
서동수의 사무실로 정재민이 찾아왔을 때는 서동수가 중동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이다.
“어유, 대단하네.”
쇼룸부터 둘러본 정재민이 탄성을 뱉었다.
이제 서동수의 회사는 국제빌딩의 5층 200평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100평이 전자제품과 의류의 전시장이었고 사무실 앞에는 ‘동양그룹 아시아 에이전시’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다.
그러나 사원은 이인섭을 포함하여 여전히 셋, 서동수까지 넷이다.
“사무실이 너무 커.”
사장실로 들어선 정재민이 말했다.
사무실에는 마침 이인섭이 출장 중이어서 여직원 둘이 분주하게 전화를 받고 있을 뿐이다.
“커피 마실 거야?”
커피포트를 집어들고 서동수가 묻자 정재민이 소파에 앉으면서 웃었다.
“아, 커피까지 직접 주시려고? 좋아.”
정재민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는 일주일쯤 전이다.
그때는 요르단 암만에 있었을 때여서 오늘로 약속을 한 것이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정재민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서동수가 앞쪽에 앉으면서 물었다.
“뭐, 그 생각이 나서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니겠고, 용건부터 듣자.”
“박세영이 이야기 들었지?”
정재민이 묻자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였다.
15일쯤 전에 박세영도 한영복과 갈라섰다.
서동수가 떠난 후에 한영복이 직접 업무상대가 되다 보니 수시로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조직사회를 겪지 못한 인간은 상하 관계의 한계와 영역을 모른다.
월권은 상관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뿐만이 아니다.
하급자의 업무까지 상관하는 것도 월권이다.
한영복은 공장에서만 자수성가한 인물이어서 조직의 생리에 어두웠을 것이다.
정재민이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눈에 교태가 섞여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정재민의 입이 열렸다.
“세영이가 나한테 합작사업을 하자는 거야, 투자하라는 것이지.”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정재민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조사를 했어. 박세영과 함께 동업을 했던 한영복, 그리고 자기까지.”
“…….”
“그랬더니 답이 나오더군. 세영이는 가게 두어 개만 하면 돼. 더 이상은 무리야.
한영복 씨는 공장 운영하면 되겠더군. 그것이 한계야.”
“…….”
“내가 내 재산을 어떻게 불려나간 줄 알아?
분수를 지켰고 철저한 사전조사를 했기 때문이지.”
정재민이 정색하고 서동수를 보았다.
“자기하고 동업할 수는 있어.”
(237) 11장 세상은 넓다 - 20
“동업이야 진즉 시작했지 않아?”
서동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더니 정재민이 혀를 찼다.
“장난 말고.”
“난 동업 안 해.”
“그럼 돈 빌려 가. 싼 이자로.”
“싫어.”
“왜?”
“빌릴 바에는 은행 돈 쓴다.”
“왜?”
“내가 정상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니까.”
“웃기고 있네.”
“지금은 그래.”
그때서야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자금을 만들려고 에이전시 사업을 병행한 거야.
이건 거간꾼 노릇만 잘하면 중개수수료가 생기니까.”
“그래서 의류사업을 키우겠다고?”
“아니. 곧 전자제품 매장, 또 종합매장이 생기겠지.”
서동수의 계획 일단이 펼쳐졌다.
잠자코 시선을 주던 정재민이 다시 물었다.
“나한테 매일까봐서 그래?”
“그것도 있네. 참.”
“거꾸로 된 거 아냐? 그런 우려는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니냐구?”
“참. 네가 위에서 하는 거 좋아하지? 잊었다.”
“말 돌리지 마.”
정색한 정재민이 서동수를 노려보았다.
“200억 빌려줄 테니까 은행 이자만 내. 원금은 10년 안에 갚으면 돼.”
“싫어.”
머리를 저은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배부르면 게을러져. 배고프면 닥치는 대로 삼키게 되고. 적당한 상태가 좋아.”
“만일의 경우에도 대비해야지. 바보야.”
“글쎄. 너하고 밤에 동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니까 그러네.”
“알았어.”
정재민도 소파에 몸을 붙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살다 보니 자기 같은 남자도 만나게 되는구나.”
“야, 돼지가 안 되려고 그러는 거다.
솔직하게 말하면 목구멍 안에서 손이 나오려는 걸 꾹 누르고 있는 거야.”
“나, 프린스호텔에 있어.”
정재민이 지그시 시선을 준 채 말을 이었다.
“세영이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전화를 하는데 급한가 봐.
내가 여기 와 있는 줄 알면 놀랄 거야.”
박세영은 한영복한테서 가게 두 개를 떼어 받고 분가했는데 운영자금이 있을 리가 없다.
제품개발은 뒷전이고 돈 구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걔가 자기하고 나하고 맺어준 은인이기도 한데 말이야.”
혼잣소리처럼 정재민이 말했다.
“걘 신용이 없다고 소문이 나서 돈 빌리기가 힘들 거야.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알지만 아직도 사채 빚이 많아.
제 남자친구한테서도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어.”
“돈 이야기 그만.”
손바닥을 들어보인 서동수가 벽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내가 퇴근하고 바로 네 호텔방에 갈게.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돼.”
“몇 시에 올 건데?”
“7시쯤.”
“같이 저녁 먹을 거야?”
“밥 먹고 뛸 시간이 어디 있어? 바빠 죽겠는데. 홀랑 벗고 기다려.”
그러자 정재민이 환하게 웃었다.
흰 이가 다 드러났다.
“아유, 이 남자. 달아오르게 하는 데는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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