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11장 세상은 넓다 (2)
(220) 11장 세상은 넓다 - 3
상하이와 베이징에 각각 두 개씩의 매장이 오픈된 다음 날 서동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공장장 윤명기보다 한 달쯤 먼저 떠나는 셈이었다.
공장장실 안에서 탁자 위에 사직서를 내려놓고 윤명기와 서동수는 마주 앉아 있다.
일주일 전부터 서동수는 업무1과장에게 업무 인계를 했던 터라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서울에 오면 연락해라, 둘이서 술이나 마시자.”
윤명기가 심란한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나도 한 달 후에 떠날 테니까 덜 서운하다. 남아 있었다면 속상할 뻔했어.”
“죄송합니다. 공장장님.”
갑자기 목이 멘 서동수가 외면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제가 폐만 끼쳤습니다. 제 마지막 직장 상관이자 은인으로 가슴 깊게 모시겠습니다.”
“이 자식이 조문 외우는 것 같네.”
혼잣소리처럼 투덜거린 윤명기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그 말, 연습한 거냐?”
“예, 꽤 오래 궁리해서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공장장님.”
“진심이냐?”
“진심이니까 그렇게 만들었지요.”
“성공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 사장 조심하고.”
“명심하고 있습니다.”
윤명기가 길게 숨을 뱉더니 소파에 등을 붙였다.
“나도 언젠가는 떠날 거야. 네 결단이 부럽다.”
서동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잘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는 자가 결단이 부족하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
잘난 놈이 떠난다는 누구의 말도 틀리다.
인생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사람마다 다른 그 변수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타인(他人)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따라 일어선 윤명기가 손을 내밀었다.
서동수가 손을 쥐자 윤명기는 어깨를 당겨 안았다.
“잘해.”
윤명기가 안긴 서동수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공장장님.”
갑자기 목이 멘 서동수의 목소리가 잠겼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몸을 뗀 서동수는 절을 하고 나서 서둘러 몸을 돌렸는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방을 나온 서동수의 심장은 세차게 박동했다.
그것은 떠남의 서글픔보다 공장장 윤명기의 격려를 받았다는 감개 때문이다.
회사원이 떠날 때 상사로부터 누가 이런 격려를 받겠는가?
자부심이 솟아난 서동수의 어깨가 치켜 올라갔다.
“부장님, 송별연을 해야 됩니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책상 앞으로 다가선 소천이 말했다.
소천은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떼지 않았다.
화가 난 표정이다.
“총무과 간부급 사원들만 모이기로 했습니다.
부서장들하고는 나중에 송별연을 하시더라도 오늘은 저희들하고 해야 됩니다.”
소천이 한마디 한마디를 영어로 정확하게 표현한 후다.
서동수가 중국어로 말했다.
“좋아,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근사한 장소를 정하도록,
총무과 회식비는 쓰지 말도록 해.”
놀란 소천이 숨을 죽였고 서동수의 중국어가 이어졌다.
“내가 여러분께 정식으로 중국식 신고를 하는 자리다.
내가 새롭게 시작하니까 말이야.”
(221) 11장 세상은 넓다 - 4
칭다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명원’은 건평이 1천 평도 넘는다.
주방 직원만 50여 명에 종업원이 1백 명이 넘어서 첫 번째로 규모에 놀라고
두 번째는 요리가 다양한 데 놀라며 세 번째는 맛에 놀란다고 했다.
그 대명원의 방에 10여 명의 남녀가 떠들썩한 주연을 벌이고 있다.
바로 서동수의 송별연이다.
1년 반 전에 서동수가 총무과장으로 부임했을 때 환영연에 모였던 그 면면(面面)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거나 바뀐 얼굴이 몇 명 있다.
이인섭이 보이지 않았고 화란 대신으로 소천이 앉아 있다.
화란은 양천마을에 있는 것이다. 송별연은 대개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끝나지만 방 안은 떠들썩했다.
서동수가 그렇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요리를 가득 시킨 데다 고급술을 얼마든지 들여왔으므로 모두 신바람이 났다.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신다.
“사무실은 어디죠?”
옆에 앉은 소천이 물었는데 영어다.
지금까지 중국어를 쓰다가 갑자기 바꿨다.
“어. 국제빌딩에 있어.”
영어로 대답한 서동수가 소천을 보았다.
소천의 얼굴은 술기운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다.
60도짜리, 70도짜리 백주(白酒)를 권하는 대로 마신 것이다.
그때 소천이 물었다.
주위가 떠들썩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무실 놀러가도 되죠?”
“물론이지.”
“오늘 밤 저, 데려가요.”
“어디로?”
그렇게 물었던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소천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굴, 반쯤 열린 입술과 물기에 젖은 눈,
상기된 얼굴은 바로 욕정으로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다.
다음 단계는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지면서 입이 조금 더 열린다.
저절로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서동수가 영어로 물었다.
“이유를 듣자.”
“좋아하니까.”
그러고는 소천이 눈웃음을 쳤다.
다시 한번 서동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고혹적이다.
남자를 유혹하는 웃음이다.
소천이 떠들썩한 소음을 뚫고 말을 잇는다.
“이제야 기회가 오는군요. 보스.”
“난 보스가 아니다.”
“그럼 애인 해요.”
그때 옆쪽에 앉은 경비책임자 곽 주임이 서동수에게 술잔을 건넸다.
“따꺼, 한잔 드시고 잔을 돌리시오.”
서동수는 물잔에 가득 담긴 70도짜리 백주를 받아 들고 냉수처럼 마셨다.
식도를 타고 위까지 불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보고 있던 주임들이 박수를 쳤다.
곽 주임에게 술을 채운 잔을 돌려준 서동수에게 소천이 말했다.
“술 그만 마셔요.”
“왜?”
“섹스에 지장이 있어요.”
그 순간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너, 이젠 마음대로 말하는구나.”
“당연히, 당신은 이제 몸조심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고는 눈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화란한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서동수가 시선만 주었고 소천의 말이 이어졌다.
“화란을 양천마을로 보내신 건 감독관 일 때문이 아니죠?”
“왜 그렇게 생각하나?”
“소문이 다 났어요.
화란이 리베이트를 몰래 챙기다가 보스한테 발각이 되었다는 소문.”
“…….”
“그 진원지는 대아건설 호 사장이죠.
호 사장이 직접 말하고 다닌다네요.”
그럴 줄 알았다.
그래야 호 사장은 뒤를 깨끗이 닦는 셈이 된다.
이것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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