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11장 세상은 넓다 (1)
(218) 11장 세상은 넓다 - 1
“오랜만이야.”
자리에 앉으면서 서동수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이인섭은 그러지 못했다.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모양으로 얼굴이 붉어졌다가 금방 하얗게 변했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가락을 쥐어짜듯이 엉켜쥐고 앉았는데 어금니까지 악문 것 같다.
볼의 근육이 튀어나와 있다.
그것을 본 서동수가 풀썩 웃었다.
“이봐, 나한테 아직도 원한이 남았나?”
“용건을 말씀하시죠.”
이인섭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다 빠졌다.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 둘을 시키고 돌려보냈다.
“하나만 묻자.”
서동수가 똑바로 이인섭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만나자고 연락을 했을 때 네 가슴에 어떤 기운이 떠돌더냐?”
이인섭이 눈만 치켜떴으므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쉽게 설명하지. 내 전화를 받고 떠오른 감정이 뭐냐? 분노? 복수? 아니면 기대감이냐?”
이제 이인섭은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동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졌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주고 끝내자.
분노나 복수심이 떠올랐다면 너하고 더 이상 말 한마디 섞기 싫다. 하지만.”
서동수가 이인섭을 쏘아보았다.
“기대감이라면 너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 자.”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다.
“분노나 복수심이라면 일어나서 나가.”
이인섭도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5초쯤 지났을 때 서동수는 의자에서 상반신을 떼었다.
“그렇다면 너하고 상의할 일이 있다.”
“…….”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때는 날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
“난 너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함께 말이야.”
“…….”
“너만 한 인재도 찾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고 너하고 나는 손발이 맞는 상대야.
그래서 널 끌어안기로 한 거다.”
“도대체 무슨.”
그렇게 운을 뗀 이인섭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서동수를 보았다.
아직 긴장이 덜 풀렸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굳어져 있고 표정도 어색하다.
“어쩌자는 겁니까?”
“나하고 같이 일하는 거다.”
“동양그룹에 날 다시 입사시켜 준다는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회사에서 그런 전례도 없고.”
“그럼 뭡니까?”
“나도 곧 회사 그만둔다.”
그 순간 이인섭이 입을 다물었고 서동수는 말을 이었다.
“새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지. 새 세상에서 나하고 같이 일하자는 거야.”
“어떤 일인데요?”
“먼저 약속을 해야지.”
혀를 찬 서동수가 이인섭을 노려보았다.
“나하고 같이 일하겠다는 약속 말이다.”
“…….”
“일할 거냐?”
이인섭이 눈을 부릅뜨고 서동수를 마주 보았다.
다시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하겠습니다.”
“네가 지난번 한 일에 대한 사과를 안 받았다. 정리를 해야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인섭의 목소리가 떨렸고 눈이 붉어졌다.
(219) 11장 세상은 넓다 - 2
커피숍에서 나온 둘은 근처의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라고 했지만 룸살롱과 가라오케를 혼합한 형태의 주점이다.
근처 식당에서 온갖 요리를 공급받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중국식 주점이다.
물론 아가씨들도 준비돼 있다.
방으로 안내된 둘은 양주에 안주, 거기에 여자까지 주문했다.
고급 손님에 신이 난 마담이 방을 나갔을 때 이인섭이 정색한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화란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누구한테 들은 거냐?”
되물었더니 이인섭이 상반신을 세웠다.
정중한 자세다.
“총무과 유현입니다.”
유현은 한족으로 화란의 보조 역할을 맡은 사내다.
유현이 이인섭의 정보원 노릇을 한 것이다.
이인섭이 말을 이었다.
“화란은 직원들한테 자원해서 양천마을 공사장 감독관으로 간다고 했다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왜?”
“이것저것 계약이 걸려 있는 상황에 감독관으로 떠나다니요? 혹시…….”
이인섭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풀썩 웃었다.
“혹시 뭐냐?”
“화란이 제 전철을 밟은 것이 아닙니까?”
“화란이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보나?”
“많습니다.”
몸을 더 굳힌 이인섭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제가 밖에서 들은 소문은 화란이 과장님,
아니, 부장님 위세를 업고 호가호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래업체 몇 곳은 화란한테 따로 상납한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시기하는 사원들이 많을 테니까.”
“밖에서는 더 잘 보입니다.”
“넌 밖에서 이쪽만 들여다보았구나.”
그때 술과 안주가 들어왔으므로 잠깐 이야기를 멈췄던
이인섭이 다시 둘이 되었을 때 말을 이었다.
“가만 있어도 전화가 올 때도 있습니다.
화란이 돈맛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거래처를 자주 만난다고 합니다.”
“…….”
“부장님이 화란하고 뜨거운 사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화란 입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
“소천하고 화란이 싸웠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부장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화란이 소천을 왕따시켰고 소천은 화란이
거래처에서 돈을 받은 것을 폭로하겠다고 대들었다는군요.”
“…….”
“그래서 이번엔 화란이 감독관으로 가게 되자
소천한테 기회가 온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이구.”
한숨을 뱉은 서동수가 술잔을 들더니 이인섭에게 내밀었다.
“내가 조직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야. 다 내 탓이다.”
“이제 어떻게 새 세상으로 나오실 것인지를 말씀해주셔야지요.”
서동수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이인섭이 말했다.
이제 이인섭은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다.
그때 서동수가 양복 가슴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이인섭의 앞에 놓았다.
“먼저 계약금부터 받아라. 3만 위안이다.”
이인섭이 몸을 굳혔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동안 수입이 없어서 와이프가 고생했을 테니까 그대로 가져다 줘.”
서동수는 한 모금에 양주를 삼키고는 더운 숨을 뱉었다.
이런 실수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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