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9장 승자와 패자 11
(194) 9장 승자와 패자-21
자, 서동수는 프린스호텔 라운지로 들어섰다.
오후 9시 반, 17층 라운지에는 서양 손님들이 많다.
주위를 둘러본 서동수는 안쪽 기둥 옆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동양여자를 보았다.
비스듬한 위치여서 옆모습이 드러났다.
거리는 20m 정도지만 다리의 곡선이 선명했다.
저만하면 하반신은 잘 빠졌다.
서동수가 5m 거리로 다가갔을 때 여자가 머리를 들었다.
라운지는 대개 어두웠고 이쪽도 그랬지만 여자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깨까지 크게 웨이브한 머리칼 사이로 갸름한 얼굴형, 또렷한 눈,
그리고 곧게 다문 입술과 적당한 콧날, 이 여자가 색녀라니?
이 여자가 자존심 덩어리의 억만장자라니?
서동수의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과 감동이 솟아올랐다가 사그라진다.
이윽고 여자 앞에 선 서동수가 물었다.
“정재민 씨? 제가 서동수입니다만.”
“네, 앉으세요.”
여자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러자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앞쪽에 앉은 서동수가 지그시 정재민을 보았다.
그 순간 박세영의 충고가 떠올랐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나가세요.”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곧장 방으로 가실까요?”
움직임을 멈춘 정재민이 시선만 주었고 어느덧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져 있다.
서동수의 머릿속을 다시 박세영의 말이 울렸다.
“걘 약한 남자한테 끌리는 약점이 있어요.
아마 모성 본능이 작용하는가 봐요.”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구차한 절차 생략합시다.
서로 신분 확실하고, 건강하다는 건 봐서 확인했으니까 가십시다.”
그러고는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깨를 편 서동수가 발을 뗀 순간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박세영의 충고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 여자의 배 위에 오르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대다니,
생각만 해도 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서동수는 휘적이며 라운지를 빠져나왔는데 뒤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에 뒤통수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카운터를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저절로 긴 숨이 뱉어졌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정재민이다.
그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한꺼번에 수백 가지 생각을 해내던 뇌도 일시에 다운되었다.
정신을 차린 서동수가 몸을 돌렸더니
정재민이 턱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그쪽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또 있다.
정재민이 이제는 앞장을 섰고 서동수가 뒤를 따른다.
다시 어깨를 부풀렸지만 엘리베이터 앞까지 10여m를 걷는 동안
서동수는 침을 두 번이나 삼켰다.
이곳은 스위트룸용 엘리베이터인 것 같다.
둘이 앞에 서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들어가자마자 움직였으니까,
안에 나란히 섰을 때 정재민이 앞쪽을 향한 채 불쑥 묻는다.
“급해요?”
“예.”
“오래 굶었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므로 둘이 내렸다.
이곳은 32층이다.
그때 앞쪽의 방문으로 다가가던 정재민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둘러요?”
“마음을 비우니까 그렇게 됩니다.”
“마음을 비워요?”
그러자 서동수가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거, 참, 질문 많네. 마음을 비우니까 거시기가 거침없이 서더란 말입니다.”
(195) 9장 승자와 패자-22
스위트룸의 첫인상은 왕의 침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된 가구가 중국 사극에서 본 왕의 침전과 비슷했다.
침대는 붉은 기둥 4개로 받쳐졌고 사방에 금박을 입힌 휘장이 드리워졌으며
지붕에 황금용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침대에 올라 휘장, 즉 커튼을 내리면 이것도 또 방이 될 것이었다.
침대가 배드민턴장 반쪽쯤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침전 중앙에 선 서동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쪽에 응접실이 있고 문 옆에도 방이 있다.
침전 담당시녀가 있었던가?
“이런 지기미.”
마침내 서동수가 한국어로 투덜거렸다.
주방 쪽으로 가던 정재민이 머리를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눈이 놀란 듯 조금 커졌다.
서동수가 투덜거렸다.
“저 침대에서 자고 나면 황금색 몸뚱이에 붉은 털이 달린 놈이 태어나겠군.”
피식, 웃은 정재민이 다시 주방으로 가면서 물었다.
“뭘 드실래요?”
“위스키나 한잔.”
“저기 선반에서 고르세요, 난 안주 준비할 테니까.”
정재민이 가리킨 선반에는 10여 종류의 위스키가 진열되어 있다.
목구멍으로 탄성을 뱉은 서동수가 선반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코냑에 보드카, 샴페인도 있다.
서동수가 30년산 위스키병을 집으면서 소리쳐 정재민에게 묻는다.
방이 넓어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남자가 필요할 때 말요,
박세영 씨가 이번처럼 공급해줍니까?”
정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동수는 술병과 잔을 들고 소파로 다가가 앉는다.
서동수가 정재민의 뒷모습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칭다오에 남자 공급소가 있습니다.
그런 곳을 이용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리 친구지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좀 어색하지 않습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말요.”
“…….”
“여기 공급소는 중국 여자가 경영하는데 제법 물이 좋아요.
괜찮은 남자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화번호 적어드리고 그쪽에다도 말해놓을 테니까 한번 이용해봐요.”
그때 안주 접시를 들고 온 정재민이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나도 갈아입을 옷 없습니까?”
“욕실에 가시면 가운이 있을 거예요.”
정재민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재미있어요. 서동수 씨는.”
“내가 지금 정상이 아녜요.”
위스키 병뚜껑을 뜯으면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일단 주눅이 들었다가 반발심, 거부반응,
거기에다 성욕까지 겹쳐서 뒤죽박죽이 되어있거든.”
“가만 계셔도 돼요.”
다시 뒷모습을 보인 채 걸으면서 정재민이 앞쪽에다 대고 말했다.
“내가 슬슬 서동수 씨가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
자신감을 가지셔도 되겠네요.”
정재민이 방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혔을 때 서동수가 이사이로 말했다.
“망하지는 않았구만.”
하지만 뒤죽박죽이다.
불쑥 내질렀다가 당황해서 별놈의 말을 다 꺼냈는데
다행히 정재민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잔에 위스키를 채우고는
진정제를 마시는 것처럼 한 모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혼잣소리처럼 자신에게 말한다.
“그래. 승자, 패자 가르지 말자, 이 사업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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