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9장 승자와 패자 10
(192) 9장 승자와 패자-19
앞쪽 박세영의 미끈한 손가락이 술잔을 쥐었다.
살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이 단정한 느낌을 준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박세영이 슬쩍 웃었다.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면서 입끝이 올라갔다.
품위가 있다.
적당한 품위는 곧 성적 매력과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남자는 이 품위 있는 여자의 얼굴이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의 정도가 어느 단계까지는 품위와 비례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섹시한 자태의 여성이 쾌락으로 빠질 때 모습은 밋밋하다는 말씀이다.
박세영이 입을 열었다.
“걘 돈이 많아요.
유산으로 신촌의 빌딩 두 개, 상가 한 동을 물려받아서 한 달에 집세로 수억 원을 받아요.
그러니 남자한테 매어 살 필요가 없죠.”
“돈 없으면 매어 삽니까?”
“가만 들으세요.”
눈을 흘겨보인 박세영이 한 모금에 60도짜리 백주를 삼키더니
입을 벌리고 더운 숨을 뱉었다.
서동수는 문득 그 입 앞에 라이터를 켜 대고 싶어졌다.
그럼 불을 품은 용처럼 불길이 나갈 것이다.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학교 때부터 공주였죠. 맨날 우리 밥 사주고 옷까지 사주고, 남자도 끊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항상 외롭고, 없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더라고요.”
“재미없구먼.”
술잔을 든 서동수가 입맛을 다셨더니 박세영의 말이 빨라졌다.
“나하고 친해진 건 3년쯤 전이죠.
그냥 섹스 파트너로.”
그때 술을 삼켰던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가 하마터면 밖으로 술을 뿜어낼 뻔했다.
겨우 호흡을 골랐을 때 박세영이 말을 잇는다.
“언제부터인가 남자가 꼬이지 않는대요.
전에는 돈을 겨냥하고 접근한 놈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사라졌대요.”
“지기미.”
“예뻐요. 잘 빠졌고, 책도 많이 읽어서 유식하고, 영어·불어·일어까지 하고.”
“섹스는 잘한데요?’
“즐기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나하고 잘 맞을 것 같다는 근거는?
혹시 내가 섹스를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오?”
“그건 아녜요.”
쓴웃음을 지은 박세영이 손까지 저었다.
백주는 박세영과 안 맞는 것 같다.
석 잔을 마셨는데 목까지 빨개져 있다.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사장님 카리스마가 재민이를 편안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자 이름이 재민인가 보다.
“내가 소개시켜준 남자들은 대개 주눅이 들어서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했어요.
주눅이 들거나 과장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나도 제대로 될 것 같지가 않은데.”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대포가 제대로 작동할 것 같지가 않아.”
“흐흐흐.”
소리내어 웃은 박세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동수를 보았다.
“한번 시험해 보시겠어요? 지금 근처에 있는데.”
(193) 9장 승자와 패자-20
“그렇다면 소개시켜 준다고 할 때마다 남자가 대번에 승낙합니까?”
하고 물었지만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잠깐 한숨 돌리려는 수작이다.
황당했기 때문인 것이다.
뭐야? 도대체?
그런 일로 바다를 건너 날아오다니.
할 일도 더럽게 없는 계집애로군,
호기심이나 호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돈 많은 여자, 공주병, 섹스광(狂),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동수의 대포(?)를 돌려세운 효과를 낸 것 같다.
“아니죠, 제가 좀 약을 올렸어요.”
술잔을 든 박세영이 서동수의 시선을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돈 많고 미인인데다 머리가 찬 여자라고 했더니 골치 아프다고 하더라,
대충 이렇게 이야기했죠.”
“이런.”
“그랬더니 바짝 약이 오른 거예요.”
그때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지그시 박세영을 보았다.
“먼저 박세영 씨가 그렇게 말한 의도를 들읍시다.”
“첫 번째는….”
“여러 개가 있어요?”
눈썹 사이를 좁힌 서동수에게 손바닥을 펴 보인 박세영이 말했다.
“들으세요, 사장님.”
“말해요.”
“첫 번째로 사장님 분위기가 그랬어요.
여자관계에서 절제력이 강한 것 같더군요.
우리쯤 되면 선수는 알아보죠.”
“사장이건 과장이건 간에 내가 좀 세긴 해요, 잘 보셨어요.”
그러나 정색한 박세영이 힐끗 시선을 던지고 나서 말을 이었다.
“둘째 내가 계속 하트를 주는데도 끼어들지 않더군요.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성격은 돈이나 외형에 흔들리지 않죠.”
“과연.”
숨을 들이켜면서 어깨를 편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정확하군. 근데 박세영 씨가 나한테 하트를 준 것은 모르겠는데, 그게 언제요?”
“그딴 이야긴 할 필요 없구요, 자, 어떻게 하실래요?”
박세영이 백주로 달아오른 얼굴로 서동수를 응시했다.
서동수가 먼저 한 모금에 백주를 삼키고 나서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박세영 씨가 책임을 짓고 마무리를 해주셔야겠는데.”
“어떻게요?”
“그쪽에다 내 모습을 다 드러내 보여주셨으니
이젠 나한테도 그쪽 하트를 주셔야지, 약점 같은 것 말입니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나가세요.”
대뜸 말한 박세영이 술잔에 술을 채우더니 말을 이었다.
“걘 약한 남자한테 끌리는 약점이 있어요,
모성 본능이 작용하는가 봐요.”
“또 없습니까? 분위기라든가 성감대 따위.”
그러자, 박세영의 눈이 다시 가늘어지더니 잠깐 서동수를 보았다.
“사장님, 저, 농담 아녜요.”
“정색하고 상대할 기분이 아닌데.”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말했다.
“어디, 한번 만납시다.”
그러자 한 모금에 백주를 삼킨 박세영이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걘 프린스호텔 스위트룸에 있어요.”
프린스호텔은 식당에서 보인다.
걸어서 5분쯤의 거리에 있다.
버튼을 누르면서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걍 부담 없이 만나세요, 사장님.”
그러더니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는 심호흡을 했다.
부담 없는 자세가 아니었으므로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 10장 독립 1 (0) | 2014.07.26 |
---|---|
<99> 9장 승자와 패자 11 (0) | 2014.07.26 |
<97> 9장 승자와 패자 9 (0) | 2014.07.26 |
<96> 9장 승자와 패자 8 (0) | 2014.07.26 |
<95> 9장 승자와 패자 7 (0) | 2014.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