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9장 승자와 패자 9
(190) 9장 승자와 패자-17
앞쪽 소파에 앉은 조은희와 미현 모녀의 표정은 가라앉은 상태다.
오전 9시 반, 회사에는 조금 늦겠다고 연락을 했다.
이제 세 명 모두 외출 차림이고 현관 앞에는 두 모녀가 가져갈 트렁크가 놓여져 있다.
작별 시간인 것이다. 둘은 옌지행 고속버스를 탈 것이며, 서동수는 회사로 출근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서동수만 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서동수의 시선이 조은희에게로 옮겨졌다.
30분 전까지 알몸으로 엉켜져 있었기 때문에 조은희의 눈 주위는 붉다.
급하게 화장으로 덮었어도 열이 가시지 않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조은희는 얼른 외면했는데 오히려 미현이 또랑또랑 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똑바로 서동수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이윽고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 작별 인사다.
“내가 꼭 찾아갈게. 어려운 일 있으면 미현이 너도 아저씨한테 전화를 하고.”
“네. 아저씨.”
젖가슴이 제법 봉긋하게 솟은 미현이 금방 대답했다.
이제 둘은 한국어를 쓴다.
서동수가 이제는 조은희에게 말했다.
“내가 중국에 오래 있을 거라는 말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는 거요.
그러니까 옌지에도 내 사업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자 조은희가 정색하고 서동수를 보았다.
그 순간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혀지는 것 같은 성욕을 느끼고는 어금니를 물었다.
내가 왜 이러는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거의 밤새도록 엉켜 뒹굴었다,
그리고 아침에도. 몸이 떼어진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조은희가 말했다.
“기다릴게요.”
가라앉은 목소리였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탁자 밑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조은희 앞에 놓았다.
묵직한 봉투다.
“새로 시작하는 터라 돈이 좀 들 거요. 3만 위안 넣었어.”
조은희는 숨을 죽였고 미현은 봉투만 보았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받아주시오. 그래야 내가 기쁘겠어.”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먼저 회사 갈 테니까 문 잠그고 나가시오.”
발을 뗀 서동수가 일어서는 미현의 어깨를 당겨 잠깐 안았다가 놓았다.
서동수가 현관에서 신을 신고 허리를 폈을 때 뒤에 선 미현이 말했다.
“울 엄마도 아저씨 좋아해요.”
시선을 받은 미현의 얼굴이 빨개졌지만 말을 잇는다.
“나도 엄마가 아저씨하고 같이 있는 것, 좋아요.”
“고맙다.”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조은희를 보았지만 외면한 옆 얼굴이 굳어져 있다.
집을 나온 서동수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반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이미 인사발령이 공고된 후여서 서동수는 경비실에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업무 1, 2, 3과장은 모두 서동수보다 고참인데다 나이도 많았지만 반년쯤 전부터
위세에 밀리고 있던 터라 거부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파격 인사다.
연공을 무시하고 오직 현재의 업적만으로 평가했다지만 모두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축하드려요. 보스.”
하지만 진심으로 반기는 직원들도 있다.
바로 화란, 소천 등 서동수와 같은 배를 탄 직원들이다.
책상 앞에서 나란히 선 화란이 먼저 인사를 했고 소천이 뒤를 이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승진 축하 파티를 할 계획입니다. 식당에 예약까지 했습니다.”
(190) 9장 승자와 패자-17
“축하드려요.”
앞쪽 자리에 앉은 박세영이 말했으므로 서동수는 피식 웃었다.
오후 7시, 진급한 지 일주일째, 박세영과는 진급 후에 처음 만나는 셈이다.
박세영은 서울에서 어제 돌아왔는데 진급 이야기는 한영복한테서 들은 것 같다.
“석달 후에 나갈 몸이라 진급한 것이 오히려 부담이오.”
그러나 과 회식, 업무부 과장들과의 회식, 생산부장, 공장장과의 회식까지
이어지는 통에 연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맨정신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며칠은 이쪽에서 술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가온 종업원에게 요리를 시킨 서동수가 박세영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 매장은 오픈시킬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해요.”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내부 장식 들어가요.
어제 서울에서 기술자를 둘 데려왔거든요.
사흘이면 공사 끝납니다.”
칭다오의 매장은 두 곳이다.
일단 그곳에 동대문 제품을 들여와 중고품으로 판매할 예정인 것이다.
매장 제품에는 성동실업의 자체 브랜드 5개가 사용될 것이었다.
머리를 든 박세영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어제 매장 관리직원 다섯 명을 1차로 데려왔는데 그중 29번이 끼어 있어요.”
“29번이라뇨?”
되물었던 서동수가 곧 면접 때를 떠올리고 다시 묻는다.
“그럼 가족은? 아이하고 어머니까지 세 식구라고 들었는데.”
“같이 왔어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터라 한국에서는 지불할 필요가 없는 경비가 많이 지출된다.
첫째가 숙박 시설이다.
서동수는 한영복과 상의하여 1차로 칭다오에 25평형 아파트 3채를 임차해놓았다.
이곳은 전세가 없고 호텔처럼 1년 세를 내고 입주한다.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진영아한테 시내 1호점을 맡겼어요.
걔가 의욕적이고 일을 잘해요.”
진영아가 곧 29번이다.
시내 1호점은 번화가에 위치한 가게를 말한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박세영을 보았다.
“그럼 다음 주에 우리 사업이 시작되는 셈이군요.”
“개업식은 저 혼자서 치르겠어요.”
박세영의 말에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한영복도 마찬가지다.
아직 성동실업과 영복섬유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는 터라
새 사업이 드러나면 동양으로부터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내가 자주 들를 테니까.”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손님들 사이에 끼어서 말입니다.”
그때 요리가 날라져 왔으므로 둘은 젓가락을 들었다.
박세영은 디자이너답게 세련된 차림이다.
미모에다 몸매도 날씬하고 화사한 옷차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요리를 먹던 박세영이 문득 서동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지난번 서울 오셨을 때, 제가 소개해 드리겠다는 제 친구 있죠?”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박세영이 말을 이었다.
“걘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인데 아직 미혼이죠.
사장님하고 잘 맞을 것 같아서 소개해 드리려고 했는데…….”
“잠깐.”
요리에 술을 시켰으므로 잔에 술을 따르던 서동수가 말을 막았다.
“나하고 잘 맞을 것 같다니요?
어떤 스타일이 잘 맞을 것 같습니까?”
날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려다
그렇게 말을 바꾼 것이다.
어디,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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