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9장 승자와 패자 7
(186) 9장 승자와 패자-13
서울에서 돌아온 서동수가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 공장장 윤명기가 호출했다.
오전 9시 10분이었으니 출근하자마자 부른 것이다.
공장장실에서 둘이 마주보고 앉았을 때 윤명기가 물었다.
“너,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뻔히 알면서 묻는 터라 서동수가 긴장했다.
무슨 꿍꿍이 수작인가?
그러나 대답은 했다.
“예, 1년하고 2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윤명기가 말했다.
“내일부터 넌 차장 진급을 하고 업무 부장 직무대리가 된다.
총무과장도 당분간 겸임하도록.”
영전이다.
단숨에 서열상 공장의 3인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서동수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미 새 사업체를 설립한 마당이다.
윤명기가 발령이 나는 6월 말까지 앞으로 4개월이 남았다.
그래서 자신도 같은 시기에 회사를 떠날 작정인 것이다.
윤명기가 시선을 주고 있었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공장장님.”
“다 네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야.
특히 후원사업은 공장과 회사의 격을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장장님이 밀어 주셨기 때문이죠.”
“앞으로 네가 공장을 이끌어 가야만 한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윤명기가 입술 끝을 올리고 웃었다.
“난 6월말에 본사 기획실로 옮겨가게 되어 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도록.”
숨을 죽인 서동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명기가 털어놓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떠나야 이쪽도 털고 나가는 데 부담이 적은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윤명기가 말을 잇는다.
“영전이지, 하지만 서운하다.
공장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특히 너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
“1년밖에 안 되었는데 너하고 정이 많이 들었거든.”
“……”
“내가 본사로 가면 너한테 더 이로울 수가 있어.
네 뒤를 단단히 밀어줄 수가 있을 테니까.”
그때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장장님,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긴 넌 얼마든지 혼자서도 버틸 수 있는 놈이지.”
쓴웃음을 지은 윤명기가 말을 잇는다.
“너한테 의리상 먼저 말해주는 거야.”
공장장실을 나온 서동수의 가슴이 차츰 가라앉았다.
공장장 윤명기의 이동이 확실해짐으로써 자신의 떠남도 굳어진 느낌이 든 것이다.
그리고 윤명기는 갑자기 도망치듯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진급을 시켜준 것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기반을 굳혀주려는 의도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책상 앞으로 다가선 화란이 낮게 물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빛이 강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나도 화란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므로 서동수는 소리 죽여 숨을 뱉고 나서 대답했다.
“아냐.”
했지만 화란은 여전히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서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내일이면 부장직 대 승진 발표가 나겠지만 떠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곧 떠날 몸이니 축하할 기분도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내일은 조은희가 떠난다.
딸과 함께 옌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셋이 밖에서 저녁이라도 먹어야겠다.
(187) 9장 승자와 패자-14
“너무 맛있어.”
중식당의 방에서 해삼 요리를 먹으면서 백미현이 감탄했다.
여전히 중국어를 쓴다.
“난 이렇게 맛있는 요리는 처음 먹어.”
둥근 식탁 위에는 해삼, 돼지고기, 생선에다 쇠고기까지 10여 가지 요리가 놓였는데
미현이 처음 먹는 요리가 많다.
메뉴판을 보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요리를 다 고르도록 한 것이다.
조은희가 말렸지만 서동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후 7시 반, 조은희는 백주를 나눠 마신 터라 볼이 익은 복숭아처럼 상기되었다.
“내가 중국에 오래 있을 것 같으니까 다시 볼 수 있을 거요.”
술잔을 든 서동수가 말했더니 조은희가 지그시 시선을 주었다.
물기에 젖은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다.
“옌지는 멀어요.”
조은희의 목소리는 낮다.
“그리고 서로 바쁘고요.”
“옌지에 일 때문에 갈 수도 있어요.”
옌지에 사업장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엄마, 이것 먹어봐.”
하고 한국어로 미현이 말하는 바람에 둘의 이야기는 그쳤다.
미현과 조은희는 한국말을 한다.
미현이 권하는 쇠고기요리를 먹으면서 조은희가 말했다.
“이젠 선생님 중국어 실력은 훌륭해요.
반 년 동안 그만큼 이룬 건 대단해요.”
“더 공부해야지.”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부님 덕분이지.”
집 안에서는 중국어만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만 나면 공부를 했다.
어학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중국어는 첫째 문자를 먼저 익혀야 한다.
이제 서동수는 핸드폰으로 중국어 문자메시지를 보낼 만한 실력을 갖췄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10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이삿짐은 모두 옌지로 보낸 터라 둘이 쓰던 가구가 없어진 집 안은 황량하게 느껴졌다.
둘의 눈치를 살피던 미현이 제 방으로 들어가면서 커다랗게 한국어로 말했다.
“나, 먼저 잘게.”
조은희한테 한 말 같지만 서동수도 들으라고 한 것이다.
미현은 이미 사춘기여서 알 건 다 안다고 했다.
거실의 소파에 앉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일부터는 진짜 홀아비 신세로군.”
“그러니까 제가 소개한 김 씨를 고용하시라니깐요.”
이맛살을 찌푸린 조은희가 서동수를 보았다.
김 씨는 조선족 아주머니로 혼자 사는 데다 착하고 음식 솜씨도 좋다고 했다.
나이는 50대 중반, 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연락하지.”
건성으로 대답한 서동수에게 조은희가 다가서서 말했다.
“옷 벗고 씻으세요.”
“그래야지.”
“내가 씻겨 드릴게.”
머리를 든 서동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조은희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얼굴이 더욱 붉어졌고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지금까지 조은희와 같이 욕실에 들어간 적이 없는 것이다.
“이게 웬일이야?”
서동수가 서둘러 일어서면서 조은희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아 안았다.
“떠나기 전에 서비스를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군.”
“쉿.”
손가락으로 입을 막아 보인 조은희가 서동수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지난번 성이 무너진 후부터 서울에 다녀온 이틀 밤만 빼고 매일 밤
둘은 육체의 향연을 누려 왔다.
그런데도 매일 밤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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