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31. 쫓고 쫓기다 (3)

오늘의 쉼터 2014. 7. 25. 10:19

31. 쫓고 쫓기다 (3)

 

 

 

제복 차림의 경찰 둘이 다가왔으므로 안기홍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옆쪽 화단가에 서 있던 최동석은 눈을 치켜뜨고 있다.

경찰이 안기홍의 앞에 와 섰다.

"신고가 들어와서 그러는데."

안경쓴 경찰이 둘을 둘러보며 말했다.

"경비실에서는 201호 사장님네 직원이라고 하더군요. 맞습니까?"

"예."

대답은 안기홍이 했다. 빌라 주민은 대부분 상류층이다.

옆쪽 다동 201호 주인은 부장검사이고 그 옆집은 정부기관 국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경비원이 근처에서 서성대는 집은 나동 201호뿐일 것이다.

"잠깐 가십시다."

하고 경찰이 말하더니 얼굴을 펴면서 웃었다.

"그저 신원 확인하는 시늉이라도 해주시지요.

지금 이쪽저쪽 창에서 여기를 보고 있어서 그럽니다."

"그러시죠."

이렇게 나오는데 화만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첫째로 이 사실을 최광규가 알면 티나게 놀았다고 야구 배트로 얻어 맞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고위층이 깔려 있으니까 절대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서초동 싸모님 경비원들의 제1 수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려했던 사고가 났다.

그것도 싸모님이 별장에서 납치당한 후에 빈 집을 지키다가 신고를 당했으니

최광규가 알면 꼭지가 돌 것이었다.

최동석도 경찰의 호의가 반가운 듯 앞장서서 따랐다.

확인하는 시늉만 해준다니 고마운 것이다.

순찰차는 빌라 옆쪽 그늘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곳은 앞뒤가 막혀 주민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순찰차로 다가가면서 안기홍은 안심했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건성으로 조사하는 시늉을 하기는 거북할 것이었다.

순찰차로 먼저 다가간 경찰이 뒷좌석 문을 열고 뭔가를 집더니 몸을 돌렸다.

"어억!"

다음 순간 신음을 뱉은 안기홍이 온몸을 뻣뻣하게 굳히면서 뒤로 넘어졌다.

놀란 최동석이 눈을 치켜떴지만 미처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어깨에 전기 충격기가 닿았다.

"으악!"

짧은 비명 한마디만 뱉고 몸을 떨며 쓰러진 둘을 경찰은 익숙한 동작으로 묶었다.

미리 준비한 테이프로 번데기처럼 사지를 감아 묶고 입과 눈도 붙여버렸다.

그때 5t 탑차 한 대가 순찰차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운전수가 뛰어내려 뒷문을 열었다.

경찰 둘은 최동석과 안기홍을 짐짝처럼 탑차 안쪽에다 던져 놓았다.

"자, 서둘러."

탑차 안으로 들어선 강한이 안경을 벗어 던지고는 경찰 제복을

이삿짐센터 제복으로 바꿔 입으며 말했다.

탑차에는 이삿짐센터 마크가 붙여져 있다.

"이놈 주머니에는 열쇠가 없는데."

황택수가 말하자 강한이 차 밖에 서있는 천상태까지 둘러보며 말했다.

"있을 리가 없지. 계획했던 대로 내가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 문을 열거다."

그리고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빌라 앞에 경찰차하고 이삿짐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으면 누가 집 털어간다고 생각하겠어?

보안장치가 되어 있어서 보안회사에서 온다고 해도 밀어붙인다."

옷을 다 입은 강한이 황택수와 함께 밖으로 뛰어 내렸다.

황택수는 아직도 경찰 제복 차림이다.

"자, 가자."

탑차 조수석에 오른 강한이 말했을 때 먼저 황택수의 경찰차가 출발했다.

201호까지는 30m도 안되었으므로 금방 도착한 차 두 대는 머리를 빌라 출구 쪽으로 두고는

나란히 멈춰 섰다.

강한은 빌라 뒤쪽으로 돌아 홈통과 1층 베란다 난간을 딛고 손쉽게 201호 베란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유리 절단기로 문고리 옆의 유리를 떼어내는데 1분30초가 걸렸다.

손을 안으로 넣어 열쇠를 풀고 문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한미연이 말해준 안방 벽장에는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다가선 강한이 문을 열자 안에 쌓여 있는 10여 개의 대형 가방이 보였다.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든 여행가방으로 규격도 같아서 가지런히 두줄로 쌓여 있다.

"아니, 이게."

현관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온 천상태가 뒤에 서 있다가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강한은 잠자코 맨 위에 놓인 가방을 들어 내렸다.

가방이 무거웠으므로 두 손으로 잠금장치를 연 순간 안에 든 내용물이 드러났다.

"으음."

저도 모르게 강한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가방 안에 1만원권 뭉치가 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다.

대형 가방이었으니 300, 400개 뭉치였고 그것은 3, 4억이다.

"날라."

가방을 닫으면서 강한이 말하자 눈이 찢어질 듯 치켜뜨고 돈뭉치만 보던 천상태가

서둘러 벽장에서 가방을 끌어냈다.

한 손에 하나씩 들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늘어졌지만 기를 쓰고 들고 나갔다.

강한도 가방 두 개를 들고 뒤를 따랐다.

2층이어서 계단을 내려가 현관 앞에 주차된 이삿짐 차에 싣기까지 딱 1분이 걸렸다.

경찰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황택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강한은 눈짓으로 말렸다.

황택수가 돕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50m쯤 떨어진 위치에 있는 경비실에서 나이든 경비원이 이쪽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중이다. 한가한 태도가 뒷짐까지 지고 서 있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한과 천상태는 여섯번 왕복을 해서 가방 12개를 실었는데 걸린 시간은 12분이 조금 넘었다.

마지막 가방을 들고 내려오기 전에 강한이 벽장 안을 뒤져 안쪽 서랍에서 대형 서류봉투

3개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10억짜리에서 5억, 1억짜리 양도성예금증서 20여장이 각각 금액별로 넣어져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100억이 넘는 거금이었다.

그 봉투까지 겨드랑이에 끼고 계단을 내려온 강한의 얼굴에서 땀이 쏟아졌다.

천상태는 아예 기진맥진 상태가 되어 있었으므로 강한이 핸들을 쥐었다.

황택수가 순찰차를 앞세우고 경비실을 지나자 동네 여자와 이야기를 하던 경비원이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빌라 입구를 나온 경찰차와 이삿짐 트럭은 다시 옆쪽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후에 나왔다.

이제는 이삿짐 트럭만 나온 것이다.

"형, 얼마나 되는 것 같아?"

순찰차를 버리고 앞자리에 탄 황택수가 제복을 벗으면서 물었다.

천상태는 아직도 가쁜 숨을 뱉으며 늘어져 있다.

"양도성증서까지 200억은 되는 것 같다."

강한이 뒤쪽에 놓인 서류봉투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예상 외야. 거기가 최광규 금고였던 거다."

"으아."

놀란 외침을 뱉은 황택수가 서둘러 옷을 벗더니 강한을 보았다.

"최광규가 신고하지 않을까?"

"그러진 않을 거다."

"그럼."

"목숨을 걸고 찾겠지."

차분하게 말한 강한이 다시 차를 우회전시켜 건물 공사현장으로 들어섰다.

공사를 하다가 중지한 곳이어서 폐자재가 어지럽게 쌓여있고 뼈대만 세운 건물은 황량했다.

건물 뒤쪽으로 꺾어졌을 때 구석에 세워둔 승합차가 보였다.

"자, 서둘러."

승합차 뒤쪽에 이삿짐 트럭을 세운 강한이 말하자 황택수와 천상태가 뛰어내렸다.

이번에는 셋이 바로 옆쪽 차로 가방을 옮기는 터라 5분도 안걸렸다.

강한이 트럭 안으로 들어가 이제는 꿈틀거리고 있는 두 사내를 굽어보고 나왔다.

둘은 눈까지 테이프로 붙여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트럭을 그곳에 버려놓고 승합차로 옮겨탄 셋이 다시 큰길로 나왔을 때

뒷자리에 앉은 강한이 길게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최광규 혈압이 터지겠다."

 

 

"뭐?"

최광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 선 조철을 보았다.

경호실장 조철은 최광규의 시선을 받지 않았지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손가락만 까딱 해도 반응할 것이었다.

그리고서 방안은 잠시 동안 정적에 덮였다.

숨소리도 나지 않았으므로 조철은 눈도 깜박이지 못했다.

방금 조철은 서초동의 빌라가 털렸다는 보고를 한 것이다.

빌라 경비를 하던 안기홍과 최동석은 공사장에 버려진 이삿짐 트럭 안에서

4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견되었다.

그것도 운이 좋았다.

담배 피우러 들어온 중학생들이 아니었다면 며칠 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때 최광규가 머리를 들었으므로 조철은 입안에 고였던 침을 삼켰다.

"강한이, 그놈이지?"

"예, 회장님."

마치 제가 죄를 지은 것처럼 조철이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다.

조철도 빌라 벽장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인간은 조직 내에서 서너 명뿐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잡혀간 한미연이다.

최광규가 어금니를 물었으므로 볼의 근육이 뭉쳐졌다.

어지간한 자극을 받으면 펄쩍 뛰고 골프채를 휘두르거나

벽에 걸어놓은 일본도를 빼어 후려쳤는데 지금은 너무 가라앉았다.

 너무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연이가 불었군."

최광규가 잇사이로 말한 순간 조철은 바짝 몸을 굳혔다.

조금 전에 안기홍의 보고를 받으면서 조철도 그렇게 생각은 했다.

다시 최광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고문을 했을까?"

조철은 눈동자만 굴렸고 최광규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면 제가 먼저 입을 열었을까?"

그러더니 최광규가 길게 숨을 뱉고나서 말했다.

"양도성 증서까지 다 가져갔다면 210억쯤 될거다.

아마 도둑질한 금액으로는 한국 역사상 최고액 일걸?"

"……."

"내가 이거 완전히."

했다가 최광규가 조철을 보았다.

조철이 시선을 들었다가 최광규에게 잡혀버렸다.

이제는 도망갈 수가 없다.

"경비했던 두 놈을 정신병원에다 넣어라. 무슨 말인지 아나?"

"예? 예."

대답은 크게 했지만 조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넣으라면 넣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그때 최광규가 말했다.

"소문 안나게 그 두 놈 뇌를 반쯤 꺼내든지 아니면 캐든지 해서 넣으란 말야. 알아들어?"

"예, 회장님."

조철의 얼굴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죽이는 것보다 더 가혹한 방법이다.

다시 최광규의 말이 이어졌다.

"소문나면 내 체면 따위가 구겨지는건 아무것도 아냐.

세무서에서도 달려들 것이고 거래선 놈들도 다 주머니를 잠글거다.

장사 망한단 말야."

"예, 회장님."

"조재일이, 배복수까지 강한 그놈한테 붙은 이상 서둘러야 돼."

"예, 회장님."

"유기호를 불러."

의외로 빠르게 최광규가 평정을 찾았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이 핸드폰을 꺼내었다.

버튼을 누르고나서 곧 응답소리를 들은 조철이 짧게 말했다.

"회장님 전화요."

최광규가 조철이 전해준 핸드폰을 받더니 귀에 붙이고 대뜸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예, 지금 박용수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기호가 말했을 때 최광규는 다시 어금니를 물었다.

조재일과 배복수도 재빠르게 제 가족을 피신시킨 것이다.

이춘식을 보냈지만 한발 늦었다.

심호흡을 하고난 최광규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했다.

"계속 당할 수는 없어. 지금부터는 잡는대로 죽일 테니까."

 

 

이춘식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40분. 아파트 현관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조금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퇴근하는 주민들이 많았고 조금 전에는 학원 버스에서

10여명의 학생이 쏟아져 나왔다.

"형, 준비 다 되었는데."

옆으로 다가온 백대기가 말했으므로 이춘식은 눈을 치켜떴다.

"가만 좀 있어, 임마."

의정부 시내의 유리시즈 아파트 B동 앞이다.

요즘은 아파트 이름을 모두 외국어로 바꾸는 유행이 불었는지 신축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래된 아파트도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큰골 아파트를 베라몬트 아파트로 바꾸는 식이다.

그러나 유리시즈 아파트는 지은지 두 달밖에 안되는 신축 건물로 B동은 35평형대였다.

잘 지은 건물이었지만 이춘식에게는 703호의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비상구밖에 안보였다.

703호는 강남경찰서 박용수 형사가 제 이름으로 전세를 얻어놓은 곳인 것이다.

회장의 고문인 유기호가 한 시간 전에 알아낸 정보였고 이춘식은 제 팀원은 물론이고

3개팀의 지원을 받아 20분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준비가 끝난 것이다. 아파트 현관 앞과 7층 복도, 비상계단, 그리고 뒤쪽에까지

25명의 선수가 깔렸다.

강한 일당이 703호에 있다면 일망타진이다.

설령 총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

이쪽에서도 네 명이나 사제 권총을 차고 있는 것이다.

"좋아."

팔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한 이춘식이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 노스탈자 호텔의 회장실에서 최광규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잡지 못하면 죽여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직접 지시까지 받았다.

"가자!" 이춘식이 명령하자 백대기가 무전기에 대고 지시했다.

그 순간 이춘식은 아파트 현관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대여섯 명의 부하들을 보았다.

이놈들은 지원팀이다. 주공팀은 이미 703호 앞에 있을 것이었다.

이춘식과 백대기가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실에 쪼그리고 앉은 경비원이 눈만 크게 떴다.

노인 경비원이었는데 이미 부하 한 명한테 가로막혀서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이춘식과 백대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어디선가 철문을 치는 소리가 울렸다.

엘리베이터 안이 울렸으니 아파트 전체가 울릴 것이다.

부하들이 703호 문을 깨뜨리는 것이다.

문 치는 소리는 네번 울리더니 그쳤고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멈춰 문이 열렸다.

 703호는 바로 엘리베이터 안쪽이었는데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부하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둘이 거침없이 703호 안으로 들어서자 방안을 헤집고 다니던 부하들이 시선을 들었다.

모두 눈을 치켜떴지만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없는 것이다. 놈들은 샜다.

부하들의 표정만 봐도 이춘식은 알 수 있었고 가슴이 내려 앉았다.

"없습니다."

그래서 쳐들어간 부하들의 대장격인 오태호가 보고했을 때 이춘식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도 된 듯이 부하 하나가 주방에서 소리쳐 말했다.

"밥도 새것이고 국도 아직 뜨뜻합니다."

"여기."

안방에서 부하 하나가 손에 들고온 것을 이춘식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춘식이 그것을 보고는 어금니를 물었다.

공업용 테이프 뭉치였다. 묶였다가 칼로 베어낸 자욱이 선명했다.

"이곳에 싸모님을 잡아 놓았던 것 같습니다."

부하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을 때 이춘식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핸드폰을 꺼내든 이춘식은 심호흡을 했다.

 예상했던대로 경호실장 조찬이다. 바로 옆에 최광규가 있을 것이었다.

이춘식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또다시 한발 늦었다고 보고를 해야 한다. 

 

 

"당분간 같이 지내도록 해."

한미연과 나란히 소파에 앉은 강한이 말하자 장미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밤 10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장미는 아래층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온 참이었다.

"저기, 죄송해요."

장미가 한미연에게로 머리를 돌리더니 잠깐 웃었다.

그리고는 강한을 보았는데 순식간에 싸늘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이봐, 누구 맘대로 그러는 거야?

내가 너한테 무전 취식하고 있는 사람이냐?

이거 왜 이래?"

또박또박 쏘아붙이자 강한은 소가 경을 들은 것처럼 눈만 껌벅였지만 한미연은 당황했다.

등빛에 비친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미연이 마악 입을 벌렸을 때 또 장미의 시선이 옮겨져 왔다.

"저기, 그쪽한테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해놓고는 또 강한을 쏘아보았다.

"그럴 바에 내가 내 돈으로 독채 얻어서 나갈 테니까 알아서 해."

"이분은."

헛기침을 한 강한이 눈으로 한미연을 가리켰다.

"내가 최광규한테서 모셔온 분이야.

의정부 안가에다 모셨는데 그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다."

"그건 네 사정이고."

"저, 다른 데로 갈게요."

하고 한미연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었을 때 장미가 머리를 저었다.

한미연을 향한 얼굴에는 또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아뇨, 계세요. 2층에는 방도 3개나 되거든요. 각 방마다 화장실도 있고."

"그래도 그렇죠. 화내시는 거 저도 이해가 가는 걸요. 뭐."

"쟤 버릇을 좀 가르켜 주려고 한 거예요."

그러더니 장미가 거지를 쫓아내는 것처럼 강한을 향해 손을 두어번 까불면서 말했다.

"알았으니까 넌 꺼져."

그것을 본 강한이 잠자코 일어나더니 한미연에게 말했다.

"아까는 말 안했는데 얘가."

턱으로 장미를 기리킨 강한이 말을 이었다.

"미연씨한테는 사기 칠 일이 없겠지만 뱉는 말의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돼.

그리고."

계단 쪽으로 발을 뗀 강한이 말을 이었다.

"드링크제 따위를 마시라고 주면 절대로 먹지마."

당황한 한미연이 장미의 눈치를 보았지만 장미는 태연했다.

강한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장미가 웃음띤 얼굴로 한미연을 보았다.

"미인이시네요."

"아니, 장미씨한테 대면 저는."

한미연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우세요."

"제 이름도 다 아시네."

"강한씨가 오면서 대충 이야기해 주셨어요. 동업자라고."

"의정부 안가에 며칠이나 같이 계셨는데요?"

하고 장미가 묻자 한미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같이 있다뇨?"

한미연이 물었을 떄 장미가 활짝 웃었다.

"강한이 하구요."

"같이 있지는 않았는데."

그러자 장미가 풀썩 웃었다.

"괜찮아요. 저하고 강한이는 그저 동업자일 뿐이니까.

자세하게 말하면 강한이는 뚜쟁이죠.

제 몸을 흥정해서 돈을 받는 대리인이라고나 할까."

한미연이 눈동자만 굴렸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강한이하고 제 관계는 정상적인 남녀 관계가 아니죠.

서로 경멸하면서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관계죠."

그러더니 장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물었다.

"강한이하고 섹스는 했겠죠? 저 친구 섹스 잘 하던가요?"

한미연이 이제는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제가 만난 남자 중 최고였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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