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쫓고 쫓기다 (2)
"형, 회의요."
수화구에서 전동배의 목소리가 울렸다.
"누가 소집한거야?"
조재일이 묻자 전동배가 입맛부터 다셨다.
짜증난다는 표시였다.
"회장."
뱉듯이 말한 전동배가 전화를 끊었으므로 조재일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밤 10시 반이다.
오전에도 회장 주재의 회의가 열렸는데 중간 간부 두 명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회의중에 최광규가 야구 배트로 둘을 내려쳐서 하나는 두개골이 함몰되었고
또 하나는 어깨뼈가 부러진 것이다.
둘은 강한의 부하인 황택수와 백용철의 가족을 잡아오는 임무를 맡았지만 실패했다.
간발의 차로 모두 놓쳤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나온 조재일이 홀로 들어섰을 때 구석에 서있던 지배인 강준호가 다가왔다.
강준호는 조재일의 심복이자 고향 후배이다.
"형, 회의 가는거요?"
"그래, 그런데 네가 어떻게 아냐?"
홀 안을 둘러보며 조재일이 물었다.
카페 '유진'은 조재일이 관리하는 영업장으로 수익금의 절반을 수당으로 받는다.
그러나 종업원 월급을 제하고나면 남는 게 없다.
2년 동안에 월 250만원 받은 것이 최고였다.
'유진'은 최광규의 빌딩 관리업체인 안국상사 소유여서 조재일은
매달 턱없이 비싼 임대료에다 수익금의 절반을 떼어 바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홀에 손님 두 테이블 뿐이었다.
방 5개 중 한 개만 손님이 들어 있었는데 아직 매상이 20만원도 안되었다.
적자다.
지난달에도 수당이 50만원 정도였고 지배인 강준호는 아예 받지도 못해서
조재일이 100만원을 생활비로 주었다.
강준호는 카페에 나왔던 아가씨와 동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형, 조금 전에 가게로 전화가 왔는데."
조재일의 팔을 잡아 옆쪽 복도로 이끈 강준호가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떴다.
"배복수한테서 말야."
주위를 둘러본 조재일이 긴장했다.
배복수는 최광규의 경호실 소속으로 이른바 친위대에 속한다.
경호팀 20여명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되는데 최광규는 경호실장 조 철에게
전권을 위임하지 않고 팀원을 직접 관리했다.
소그룹으로 나눠 경쟁을 시키고 서로 감시하도록 만든 것이다.
배신을 방지하려는 장치였다.
배복수는 그 소그룹의 보스 격이었는데 조재일과 교도소 동기였다.
그러나 둘은 서로 친하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는데 최광규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최광규는 소보스 이상의 직급이 되면 절대로 친구나 동향, 선후배 관계인 조직원을 같이
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아서 요직에 있는 놈들이 짜고 배신하지 못하도록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배복수와 조재일은 그 사실을 숨겨왔고 서로 소 닭 보듯이 지내왔지만
최광규 주변의 특급 정보는 다 배복수한테서 나왔다.
조재일은 그것을 강준호한테도 발설하지 않았다.
강준호가 말을 이었다.
"형한테 전하라고 하던데. 왜 직접 전화하기 그러냐고 했더니
직접 말하기가 거북하다는 거야, 글쎄."
조재일이 눈만 치켜떴고 강준호는 말을 잇기 전에 코웃음부터 쳤다
"시발놈이 형이 회의 참석할 때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라고 전하래."
"……."
"경호실 놈들이 이젠 복장 검사까지 하는 거야? 이거 더럽고 아니꼬와서 정말."
강준호가 투덜거렸을 때 조재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머리만 끄덕여보인 조재일은 발을 떼었다.
그리고는 뒤쪽 주방으로 들어가 주방 쪽문을 열고 가게 뒷골목으로 나왔다.
골목 안은 짙은 어둠에 덮여 있을뿐 조용했다.
심호흡을 한 조재일은 그 자리에서 손을 뻗어 앞쪽 건물의 벽 끝을 움켜 쥐었다.
그리고는 몸을 솟구쳐 단숨에 담을 넘어 건물 안으로 내려섰다.
배복수는 정체가 탄로났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직접 전화하지 않은 것도 이미 도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최광규를 보았다.
입가에 옅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조재일한테 정보를 준 놈이 이 근처에 있습니다."
사내의 이름은 유기호. 경찰 출신으로 내부 배신자를 색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유기호가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전화번호가 가득 프린트 되어 있는 종이였다.
"조재일의 클럽 사무실로 이 근처에서 전화가 걸린 직후에 조재일이 피신했습니다."
유기호가 전화번호 하나를 손끝으로 짚었다.
"바로 이거죠. 길 건너편의 공중전화 박스였습니다.
이놈은 용의주도하게 휴대폰도 쓰지 않았지만 저는 유진 사무실에서 전화받은 사람을 찾아냈죠."
쓴웃음을 지은 유기호가 최광규를 보았다.
"유진 사무실에서 전화 받은 놈은 조재일의 심복 강준호였습니다.
강준호는 배복수한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조재일한테 복장 단정히 하고 오라는 말을 전했답니다."
"배복수는?"
눈을 치켜뜬 최광규가 잇사이로 묻자
유기호는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즉시 잡으러 보냈으니까 곧 잡아 올 겁니다."
최광규의 목에서 낮은 신음이 울렸다.
유기호는 조재일이 배신자라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간부급 중 의심이 가는 인물에 포함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밤 회의 때 그놈들을 모두 잡아놓고 하나하나 대조해 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놈들을 모두 잡으려면 경호팀의 동원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배복수도 알게 되었다.
그때 방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방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경호팀장 중 한 명인 이춘식이다.
"저기."
시선을 유기호한테 주었지만 몸은 최광규를 향해 선 이춘식이 말했다.
얼굴이 굳어져 있다.
"배복수가 없습니다."
유기호가 눈만 껌벅이자 이춘식이 말을 이었다.
"담배 사러 간다고 나갔다는데 휴대폰 전원도 꺼 놓았는데요."
"샜군."
쓴웃음을 지은 유기호가 최광규를 보았다.
최광규는 앞쪽 벽에 시선을 준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무심한 표정이었다.
"회장님, 직접 지시를 해 주시지요."
유기호가 말했을 때 최광규의 눈에 초점이 잡혔다.
앞에 선 이춘식에게로 향해진 시선이었다.
"가족을 잡아."
최광규가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동자세로 선 이춘식이 짧게 대답했을 때 최광규의 말이 이어졌다.
"아직 가족을 다 피신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둘러."
"예!"
"놓치면 책임을 묻겠다."
"예!"
다급해진 이춘식이 눈을 치켜뜨더니 서둘러 몸을 돌렸다.
"강한이는 강남경찰서 형사 박용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번 강한이 동생 장례식장에서 임시 상주 노릇까지 한 놈이 박용수지요."
다시 방안에 둘이 되었을 때 유기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람을 시켜서 경찰청에 투서를 넣었습니다.
박용수가 장미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분명하니까요.
아마 박용수는 곧 자체 조사를 받고 해임될 겁니다."
그때 다시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경호원 한 명이 방으로 들어섰다.
"전화가 왔습니다만."
경호원이 손에 쥔 휴대폰을 유기호에게 내밀었다.
"유기호씨를 찾습니다."
"누가?"
하면서도 유기호는 휴대폰을 받았다.
얼굴이 잔뜩 지푸려져 있었다.
"유기호씨."
의자에 등을 붙인 강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자코 듣기만 해."
"당신 누구야?"
하고 유기호가 물었지만 강한은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쯤 조재호하고 배복수 찾느라고 난리가 났겠구만. 그렇지?"
"너, 누구냐니까?"
"최광규는 아마 가족까지 잡으려고 할 것이고. 하지만 늦었어."
"너, 조재일인가?"
"유기호씨. 네 가족은 전라북도 군산 근처의 대야라는곳에 있더구만."
그 순간 놀랐는지 유기호의 말이 끊겼다. 핸드폰을 고쳐쥔 강한이 말을 이었다.
"나이 드신 네 부모하고 중학 3학년에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남매. 맞지?"
"너, 이 자식."
유기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흥분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 내가 가만 안둘거다."
"네 가족을 어디로 옮길 수도 없겠더라구.
두 노친네는 너무 연로하신데다 남매는 학교 때문에 말야."
"죽일테다. 끝까지 찾아서."
잇사이로 말한 유기호가 숨까지 헐떡였다.
그때 강한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네 부모, 네 자식들은 사고를 당한다.
불에 타 죽거나 교통사고를 당할거란 말이다."
"……."
"그러니까 손 떼고 나와. 그럼 없었던 일로 해줄테니까."
"……."
"너보다 항상 한발 앞서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 어때? 할 거냐?"
"하지."
마침내 유기호가 낮게 말하더니 덧붙였다.
"할 테니까 손 대지마."
"내일까지 두고 보겠다. 유기호."
"알았어."
"난 강한이다."
그순간 놀란듯 유기호는 말이 없었고 강한은 핸드폰의 덮개를 닫았다.
"그럼 내일까지 두고 보자구."
상체를 세운 강한이 앞쪽에 앉은 조재일과 배복수에게 말했다.
영등포 시장 근처의 가라오케 안이었다.
셋은 출입구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손님은 그들뿐이었고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너희들 둘은 드러내지 않고 일해야 될 거다."
다시 강한이 말했을 때 배복수가 정색했다. 상반신도 똑바로 세우고 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지요."
"이렇게 되었으니까 나도."
조재일도 몸을 세우더니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보였다.
"잘 부탁합니다. 형님."
"어차피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 됐다."
머리를 끄덕인 강한이 둘을 번갈아 보고나서 말을 이었다.
"최광규 조직도 내가 삼킬테니까."
그리고는 강한이 주머니에서 봉투 2개를 꺼내 둘 앞에 하나씩 놓았다.
꽤 두툼한 봉투였다.
"1억씩 들었다. 그것으로 피신한 가족들 생활비 주고 당분간 활동비로 써."
놀란 둘이 눈만 크게 떴고 배복수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침까지 삼켰다.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둘은 서둘러 따라 일어섰다.
"너희들 둘은 당분간 같이 행동하면서 내 지시를 받도록."
강한이 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일 중으로 안가를 만들어 줄 테니까 그곳을 은신처로 삼아."
"예, 형님."
조재일이 또렷하게 말하더니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내가 그 보상은 한다."
웃음띤 얼굴로 강한이 말하자 배복수도 90도 허리를 굽혔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다."
강한은 몸을 돌렸다.
최광규는 제 심복한테 1억은 커녕 100만원도 준적이 없다고 들었다.
차에서 내린 장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사리 끝쪽의 허름한 단독주택 앞이었다.
바람끝에 비린 물냄새가 맡아졌지만 강은 위쪽으로 100여m 쯤 떨어져 있다.
"여기야."
하고 김희선이 앞장을 섰으므로 장미는 뒤를 따랐다.
그때 차에서 내린 백용철이 다가왔다.
"아줌마, 어디요?"
김희선에게 묻는다.
백용철은 은근히 불쾌해진 모양으로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이 집이라니까."
김희선이 문앞에 다가서서 말하더니 벨을 누르면서 혼잣소리로 투덜거렸다.
"누가 오고 싶어서 왔나? 다 얘가 졸라서 온건데."
"도대체."
백용철이 이번에는 장미에게로 돌아섰다.
"이런 집에서 무슨 마사지를 한다는 거야? 난 도무지."
"입 닥치고 기다려."
눈을 치켜뜬 장미가 내쏘듯 말하자 백용철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그러나 당장 대들지는 않았다.
장미는 강한한테서 허락을 받은 것이다.
안내역인 김희선을 태우고 함께 다녀오라고 강한이 말했는데
마사지 받는 곳이 이런 후진 집인 줄은 몰랐다.
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푸르딩딩한 여자가 나와 잠자코 둘을 집 안으로 들이더니
곧 문을 닫았으므로 백용철은 입맛을 다셨다.
"미친 년들."
투덜거린 백용철이 팔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2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선 여자가 김희선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장미를 찬찬히 보았다.
"좋구만 그래."
여자가 혼잣소리처럼 말하더니 김희선에게 물었다.
"김 여사. 얘는 그만하면 좋은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러자 김희선이 낡은 소파에 앉더니 길게 숨부터 뱉었다.
"기술을 더 배우겠다는 거야."
"기술?"
쓴웃음을 지은 여자가 아직도 서있는 장미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나서 말했다.
"너, 아래 벗어봐."
"여기서요?"
장미가 묻자 여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집안이 어두워서 낮에도 전등이 켜져 있었는데
등빛에 비친 푸른 얼굴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두 눈이 번들거렸고 입술은 붉다. 여자가 뱉듯이 말했다.
"벗어. 두 말 시키지 마."
그러자 장미는 스커트를 벗었고 망설이지 않고 팬티까지 벗어 놓았다.
그러자 미끈한 알몸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다리 벌려봐."
여자가 장미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샘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장미가 두 다리를 벌리자 여자는 거침없이 중지를 샘 안에 넣었다.
"아앗."
놀란 장미의 입에서 외침이 터졌지만 여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어디, 여기다 힘 줘봐."
하고 여자가 손을 더 깊숙하게 넣고 말했다.
"내 손가락이 남자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말야."
장미는 시킨대로 했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옆쪽에 앉은 김희선이 눈도 깜박하지 않고 구경을 했다.
"으응."
낮게 신음을 뱉은 여자가 장미에게 다시 말했다.
"다리 붙이고 다시."
장미가 두 다리를 붙이고는 시킨대로 다시 했을때 여자가 손가락을 빼더니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향이 좋구만."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김희선을 보았다.
"안해도 명기 축에 들겠는데 그래."
"훈련을 하면 더 좋아질까?"
김희선이 묻자 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남자들이 환장하게 될 거야. 잠깐 넣어본 것만으로도 평생 추억으로 삼을 걸?"
그때 장미가 그대로 선 채 말했다.
"가르쳐 주세요. 사례를 할 테니까."
"으윽."
갑자기 입에서 외마디 신음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으므로 백용철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한번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굳어졌고 두 눈은 튀어 나올 것처럼 앞으로 불거졌다.
백용철은 지금 창틀에 머리만 올려놓고 집안을 훔쳐보는 중이다.
창은 굳게 닫힌 데다 안방과는 마룻방이 사이에 놓여 있지만
문이 다 열려 있어서 훤하게 다 보인다.
지금 장미는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하반신은 알몸이었다.
그리고 장미 옆에, 그러니까 이쪽을 향해서 얼굴에 푸른 물감을 칠한 것같은
귀신같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백용철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는 눈을 치켜뜨고 그곳을 응시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가 궁금하기도 했고
혹시 이것들이 짜고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해서 담을 넘어온 백용철이다.
그런데 저 꼴이라니.
어쨌든 백용철은 의심이 가셨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숨까지 죽이고 있는 터라 이제 방안의 말소리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귀신같은 여자의 말이었다.
"그렇지. 숨을 들이키면서 움직이는게 나아. 그렇지. 한 숨에 두번씩 해봐."
백용철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눈만 치켜떴을 때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 꽉꽉 물어. 이번에는 꽤 세었어. 자, 물어봐."
그 순간 백용철은 심장이 뚝 멈추는 느낌을 받았지만 시선은 떼지 못했다.
아마 누가 뒤에서 죽인다고 칼을 목에다 대었어도 보았을 것이다.
아니, 죽는 순간까지 볼 것이었다.
지금 장미는 제 몸에 박힌 귀신 여자의 손가락을 꽉꽉 쪼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장미 옆으로 김희선이 다가오더니
책을 건네주고 백용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옳지, 더 세게."
여자가 말했을 때였다.
백용철은 다시 숨을 들이켰다.
장미가 누운 채로 잡지책을 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장미는 힘을 주면서 잡지를 본다.
"옳지, 이제는 조이지만 말고….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여자가 말했을 때 마침내 백용철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쪼그리고 앉은 채로 숨까지 멎은듯 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래, 조이면서 빨아들여. 좀 어려울 거야. 허리를 조금 움직여도 돼."
눈을 부릅뜬 백용철이 장미의 몸을 보면서 몸을 뒤틀었다.
"으응."
악문 잇사이로 탄성을 뱉은 순간 균형을 잃은 몸이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뒤로 넘어졌다.
"아이고."
알 궁뎅이가 마침 마당에 깔린 잔 자갈에 박혀 머리끝이 쭈뼛 설만큼 고통이 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지, 세 번씩 조여봐."
다시 여자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오만상을 찌푸린 백용철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엉금엉금 기어서 창문 옆에서 빠져 나왔다.
담장을 다시 넘어 밖으로 나온 백용철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랫도리는 가벼웠지만 느낌은 영 불편했다.
괜히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순간 백용철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쥐었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르고나서 귀에 붙였다.
"형, 납니다."
강한의 목소리가 울리자 백용철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지금 미사리에 와 있어요. 그런데."
다시 화가 무럭무럭 솟아 올랐으므로 백용철은 집의 담장에서 더 멀찍이 떨어졌다.
"지금 장미가 뭐하고 있는지 압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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