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쫓고 쫓기다 (1)
"누구세요?"
안에서 묻는 소리가 들리더니
보안경으로 이쪽을 보는 모양인지 잠깐동안 잠잠했다.
그리고는 쇠고리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집안으로 들어선 강한에게 한미연이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그 순간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고 그것을 본 한미연도 따라 웃었다.
"웃기죠? 그죠?"
한미연이 강한이 들고온 비닐 봉지를 받아 쥐면서 말했다.
"납치범하고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은것 같은데. 미국에서든가?"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강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정부 시내의 35평형 dkvk트 안이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아파트여서 내부는 깔끔했고 나갔다 온 사이에 한미연은
깨끗하게 청소까지 해놓았다.
이곳은 강남경찰서 형사 박용수가 나서서 전세로 얻어준 곳이었으므로 뒤를 밟힐 염려는 없다.
필요한 가구도 다 들여놓아서 살기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강한이 마련해놓은 안가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저녁 식사하고 가세요."
주방에서 채소를 씻으면서 한미연이 말했다.
목소리가 생기를 띠었고 행동도 날렵했다.
오늘 아침에 이곳에 한미연을 데려다놓은 강한은 바로 집을 나가
오후 5시가 다 된 지금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한미연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다.
"오늘밤 여기서 주무시고 가도 되고."
여전히 등을 보인채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날 이상한 여자로 보면 안돼요. 난 변태가 아니라구."
"……."
"최광규에 대한 반발도 조금 있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건 아니라구요."
"……."
"자유. 그래요."
뭔가를 도마에 놓고 썰면서 한미연이 열심히 말했다.
"내 맘대로 한다는 자유. 내 기분이 지금 어떤지 알아요?"
식칼을 든 채 머리만 돌린 한미연이 강한을 돌아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타이밍을 딱 맞춰서 나타난 기사가 되었다구요. 백마탄 기사."
"……."
한미연이 칼끝으로 강한을 가리켰다.
"그만하면 잘 생겼고 체격도 좋아. 과묵하고 또."
"나, 좀 잘 테니까."
강한이 한미연의 말을 잘랐다.
"나중에 이야기 하지."
"그래요."
머리를 끄덕인 한미연이 정색하고 강한을 보았다.
"저녁 다 되면 깨울게요."
강한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칼로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친근하게 들려왔다.
옅게 채소 냄새도 맡아졌다.
강한은 소파의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는 옆으로 누웠다.
그러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등이 소파에 딱 붙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쯤 황택수와 백용철은 장미를 데리고 용인의 안가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서윤남은 여섯 개 테이프 값으로 60억을 지불했는데
입금된 금액은 순식간에 재처리해서 현금과 수표로 보관시켰다.
장미는 5일 작업에 합계 65억 수익을 올린 셈이었다.
여기서 김희선에게 수수료로 10%인 6억5000만원을 떼고나면
나머지 금액의 반이 강한팀의 몫이 된다.
그때 강한의 머릿속에 조재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부 조사를 하는 중이야."
조금 전에 전화를 한 조재일이 다급하게 말했다.
마치 누가 뒤에서 쫓고 있는 것 같았다.
"안가를 알고 있는 놈이 몇 명 안되거든.
최광규가 경찰 정보과 출신을 고문으로 채용했는데 그놈이 나서고 있어."
그리고는 조재일이 전화를 끊었다.
눈을 뜬 강한은 먼저 된장찌개 냄새를 맡았다.
짙고 구수한 냄새였고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흐음."
하고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한미연이다.
한미연이 자고있는 강한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배고프죠?"
상반신을 일으킨 강한에게 묻더니 한미연이 팔을 잡고 끌었다.
"식사해요."
이미 식탁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야."
다가간 강한이 탄성을 뱉었다.
물론 밑반찬은 산 것이지만 10여가지가 되었고 겉절이 김치도 있다.
보통 음식솜씨가 아니었다.
"소주 한잔 하실래요?"
앞쪽에 앉으면서 한미연이 물었으므로 강한은 머리를 저었다.
"밥부터 먹고."
"이러고 있으니 우리 부부같지 않아요?"
밥을 떠 막 입에 넣은 강한에게 한미연이 물었다.
"우리 잘 어울리는 것 같애."
강한은 잠자코 된장찌개를 떠 먹었다. 찌개는 맛이 있었다.
"근데, 최광규하고는 어떤 관계죠?"
한미연이 밥을 씹으면서 또 물었다.
"어떤 원한이죠?"
못들은 척 밥만 먹는 강한에게 한미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날 잡고서 최광규한테 대가를 얻어낼 생각은 안 하는게 나아요.
그놈은 자존심 때문에 협상은 안 할 테니까."
"……."
"날 납치해간 인간을 기를 쓰고 잡으려고 하겠죠.
그건 날 찾으려는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죠.
제 소유물을 강탈당했으니까요."
"……."
"난 이대로 사라지는게 좋은데, 그럼."
그러고는 한미연이 물끄러미 강한을 보았다.
"우리 식구들도 무사할 것이고, 내가 납치당한 상황이니까
우리 아버진 최광규 회사에 그대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월급도 상당히 받거든요."
"……."
"그 아파트 있잖아요?"
시선을 든 강한에게 한미연이 정색하고 말했다.
"내가 며칠 전까지 살던 아파트. 거기 안방 벽장에 현금이 엄청나게 있어요.
수표까지 쌓여 있는데 아마 100억도 넘을 걸요?"
식탁 위로 상반신을 숙인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거긴 최광규 금고나 같아요.
최광규의 비자금 금고. 열쇠도 없어요. 그냥 벽장문만 열면 돼요."
"……."
"거긴 2층 빌라형 아파트라 보안장치는 잘 되어 있어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걸 못 털까?"
"그럼."
씹던 것을 삼킨 강한이 한미연을 보았다.
"최광규와 부딪치지 말고 아파트 안에 있는 현금을 털어가란 말이지?"
"그래요."
한미연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난 사라진 것으로 만들어줘요.
그 대가로 아파트 안의 현금을 드리는 것이니까."
"나아, 참"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지긋이 한미연을 보았다.
"당신. 참, 묘한 여자야."
"묘한 매력이 있다고 그러더군요."
한미연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있어요."
두 손으로 턱을 받친 한미연이 똑바로 강한을 보았다.
"난 명기를 갖고 있다고 해요."
한미연이 눈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거기 말이죠."
"……."
"그래서 최광규가 날 데려간 거죠. 하지만 5분 이상 간 적이 없어요."
그리고는 한미연이 풀썩 웃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강한은 한미연과 소주 두 병을 마셨다.
밑반찬 안주도 좋았지만 한미연의 분위기에 끌려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저기."
빈 술병을 들어본 한미연이 강한을 보았다.
반 병쯤 마신 한미연의 얼굴은 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엷은 입술 끝은 야무지게 닫혀 있었고 눈꼬리가 약간 솟은 두 눈이 반들거렸다.
"그만 마셔요."
술병을 내려놓은 한미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 씻을게요."
그리고는 똑바로 강한을 보았다.
"같이 씻을래요?"
"그러지 뭐."
이미 마음을 정한 터라 강한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미연이 아랫입술을 물더니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강한을 보았다.
"아까 5분 이야기 한 것 마음에 두지 말아요."
"무슨 말야?"
"자기가 5분 안에 끝내도 내가 비웃지 않겠다는 말."
"나아 참."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일어나 한미연을 보았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막 하는 성격야?"
"전혀."
한미연이 정색하고 머리를 저었다.
"난 지금 잔뜩 긴장된 상태거든요.
자기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납치됐는지,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죠."
시선을 돌린 강한이 잠자코 옷을 벗었고 한미연의 말이 이어졌다.
"해방됐다는 느낌은 있어도 슬슬 무서워져요.
뱀 소굴을 벗어났지만 호랑이 굴로 끌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
"그래서 섹스 이야기를 막 하게 되나 봐요.
내가 내놓을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요."
"……."
"날 어떻게 하는 건 아니죠?"
"어떻게?"
옷을 다 벗은 강한이 알몸으로 서서 물었다.
그러자 강한의 알몸을 본 한미연이 숨을 들이켰다.
"날 죽이거나, 아까 말한대로 다시 최광규한테 팔아 넘기거나…."
강한의 알몸에 시선을 둔 채 한미연이 더듬거렸다.
그러자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곤두선 남성이 건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연의 시선이 남성에 매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커요."
혀로 입술을 적신 한미연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좋아요."
"그래서 긴장이 풀린 거야?"
몸을 돌린 강한이 욕실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널 죽이지도 팔아먹지도 않을 테니까 따라 와."
"금방 갈게요."
한미연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더니 강한이 샤워기 밑에 선지 30초도 안되었을 때
알몸이 된 한미연이 욕실로 들어섰다.
"음. 좋구나."
한미연의 알몸을 본 강한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선이 고운 몸이었다.
각진 부분은 한 곳도 없었고 마르지도 살이 붙지도 않은 몸,
허벅지는 사슴처럼 탄력이 느껴졌으며 둥근 아랫배 밑으로 미끈한 두 다리가 이어졌다.
다가선 한미연이 강한의 허리를 두팔로 감아 안았다.
그러더니 머리를 들고 물었다.
"이름은?"
그러자 강한이 풀썩 웃었다.
"강한이야."
강한도 한미연의 허리를 마주 안았다.
그러자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남성이 한미연의 아랫배에 닿았다.
강한이 말했다.
"최광규는 내 동생을 죽였어."
놀란 한미연이 눈을 크게 떴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강한의 입술로 입이 막혔기 때문이다.
한미연이 입을 벌려 강한의 혀를 받았다.
곧 두 개의 혀가 뱀처럼 엉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둘의 몸에 쏟아지고 있었어도 격렬한 키스는 계속되었다.
둘의 호흡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몸이 엉키는 강도 또한 강해졌다.
이윽고 잠깐 입을 뗀 강한이 말했다.
"침대로."
한미연은 눈을 감은 채 헐떡이기만 했으므로 강한은 번쩍 안아 들었다.
흠뻑 젖은 몸을 닦지도 않고 욕실을 나온 강한이 곧장 침실로 들어가
한미연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방안의 불빛이 환했어도 한미연은 전신을 드러낸 채 반듯이 누웠다.
강한을 바라보는 두 눈이 반짝였다.
"이렇게 흥분되기는 첨이야."
한미연이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 급해, 그냥 해줘."
온몸을 꿈틀거리면서 한미연이 재촉했다.
강한은 한미연의 몸 위에 올랐다.
이미 강한도 달아올라 있어서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하체는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미연이 두 다리를 벌려 자세를 갖췄고 곧 강한의 몸과 합쳐졌다.
"악."
머리를 뒤로 젖힌 한미연이 외마디 탄성을 뱉더니
강한의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두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이미 초점은 멀어졌다.
"아, 좋아."
강한의 몸이 깊게 진입해 갔을 때 한미연이 신음처럼 소리쳤다.
"나, 터질 것 같아."
그 순간 강한은 이를 악물었다.
한미연이 말한대로 그곳은 명기였던 것이다.
강한의 남성은 어느덧 꽉 잡혔고 무수한 개미떼가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으음."
강한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를 악문 강한은 허리를 펴고 진퇴 운동을 시작했다.
"아아악."
남성이 강하게 움직였을 때 한미연이 자지러지면서 강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기야. 나, 터져."
그러나 강한은 믿지 않았다.
아직 1분도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지금까지 몸이 합쳐진 순간 남자가 절제력을 잃고 금방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한미연은 그렇게 내뱉는 습성이 되었을 것이었다.
남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자신이 절정에 올랐다는 것을 알려주면 남자는 일찍 발사한 무안감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강한은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문 채 쓴웃음을 지었다.
이 대사에 속아 넘어가는 남자도 있었을 것이다.
"아아아."
한미연의 탄성이 더 높고 격렬해졌다.
샘은 이미 용암이 넘쳐나는 중이었고 개미떼의 공격은 더 심해졌다.
이 정도면 샘의 압박감은 느슨해지는 것이 정상인데 한미연의 몸은 그 반대였다.
용암이 넘쳐나면서도 압박은 계속된다.
개미떼는 끈질기게 공격해오는 것이다.
"아아아, 자기야."
강한은 머리를 들고 옆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작전을 시작한지 5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겪은 어떤 여자보다 더 강하고 격렬하게 한미연은 반응해 오고있다.
1분도 안 되었을 때 터질 것 같다던 한미연은 강한의 끈질긴 공격을 받자
이제는 제 페이스를 찾아 치솟고 있다.
행동에 가식이 붙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럴 여유도 잊은채 몰두하고 있다.
강한은 문득 최광규를 떠올렸다.
그놈은 저 혼자 터뜨리고 끝났을 것이었다.
여자를 배려 할 줄 모르고 오직 지배 만 하는 놈이다.
여자는 배설에 필요한 기구라고 생각하는 놈이다.
그 순간 한미연이 폭발했다.
와락 강한의 몸을 빈틈없이 껴안으며 한미연이 몸을 굳혔다.
격렬했다.
샘의 압박감이 무섭게 강해졌지만 강한은 이를 다시 악물고 참았다.
한미연이 긴 신음끝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래도 강한은 참았다.
다음날 오전 11시가 되어갈 무렵에 장미는 2층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점심시간도 아닌 이런 시간에 저렇게 거침없는 기척을 내며 2층에 오는 인간은 하나뿐이다.
바로 강한이다.
계단을 올라온 강한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장미는 외면했다.
그리고는 바로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강한과는 작업 시작하기 전에 보고 오늘 처음 만난다.
일주일 만이다.
작업이 끝나고도 사흘 만에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강한의 동생 강민이 최광규 일당 때문에 사고로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강한이 잠자코 소파의 앞자리에 앉았을 때 장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생 일 들었어. 안됐어."
강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지만 장미가 말을 이었다.
"뭐라고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어."
"됐어."
말을 자른 강한이 쓴웃음을 짓더니 가슴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번 작업 결산을 했다. 네 몫이야."
장미가 손을 내밀지 않았으므로 강한이 앞쪽 탁자 위에 놓았다.
"65억에서 김 마담 수당 6억5000만원, 작업비에다 팀원 수당까지 합해서 3억5000만원 등
10억을 빼고 남은 55억에서 네몫 50%인 22억5000만원이다."
"……."
"다 세탁을 하고나서 수표로 가져왔어.
현금이 필요하다면 내가 바꿔줄 테니까 얼마든 말해."
"……."
"네 형편상 은행거래는 할수 없을 테니까 보관해 두는 것이 나을거다.
나한테 보관시켜도 되고."
"됐어."
이번에는 장미가 강한의 말을 자르더니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웬놈의 경비가 3억5000만원이나 나가는거야?
팀원 수당은 또 뭐야? 그건 네 몫에서 지급해야 되는거 아냐?"
숨을 돌리고 난 장미가 다시 내쏘았다.
"그리고 김희선씨 수당 10%는 너무 많아.
그 여자 몫은 5%, 아니, 2%만 줘도 돼. 괜히 10%나 준다고 해갖고는."
"……."
"내가 죽어라 몸 팔아서 번 돈을 뜯어가는 기생충이 너무 많단 말야. 내 말은."
그러자 강한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실제로 네 몸은 65만원 가치도 안돼.
아니, 숏타임으로 내놓으면 6만5000원 받기도 힘들거다."
너무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으므로 장미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만큼 내용과 표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장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고 눈이 치켜떠졌다.
"야, 이 개자식아. 그럼 6만5000원짜리한테 매달리지 말고 갈라서."
장미가 앞에 놓인 봉투를 집어 강한에게 던졌다.
꽤 두터운 봉투는 강한의 이마에 맞더니 탁자 위로 떨어졌다.
수표 몇 장이 빠져 나왔다. 장미가 이어서 소리쳤다.
"기생충같은 자식. 넌 나보다 잘난 것이 하나도 없는 건달이야. 알아?
낙오자라구. 여자 등이나 치고 다니는 병신."
"……."
"넌 그걸 알아야 해. 난 너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동업자를 만날 수가 있다는걸 말야."
그때 강한이 빠져나온 수표를 다시 봉투에 넣으면서 말했다.
"당분간은 작업을 쉬어야겠다. 지금 최광규하고 전쟁중이어서."
또 기습을 당한 꼴인 장미가 눈만 깜박였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최광규 와이프를 납치했거든. 그래서 놈의 눈이 뒤집혀 있을거다."
강한이 다시 봉투를 장미 앞에 내려놓더니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둘중 하나가 없어져야 끝나는 게임이야. 나도 놈을 용서못해."
그리고는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미를 내려다 보았다.
"한 마디만 하지. 넌 몸 빼놓고 다른게 괜찮은 여자야. 난 그게 마음에 들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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