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28. 정복자 (5)

오늘의 쉼터 2014. 7. 25. 10:14

28. 정복자 (5)

 

 

 

 

2층 창에서는 길 아래쪽 불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산불로 번질까 걱정이 될만큼 불길은 바위 밑에서 점점 번져가고 있다.

경호원 셋이 길을 따라 달려 내려가고 있었는데 앞장 선 사내는 붉은색 소화기를 들었고

둘은 각각 삽과 연장을 들었다.

길 복판에서 낯이 익은 사내가 이쪽 저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지휘하고 있었다.

고함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시발놈아 빨리 나와!"

꾸물거리는 사내 하나를 향해 소리치는 것이다.

그가 머리를 들고 이쪽을 올려다 보았으므로 한미연은 주춤 몸을 굳혔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사내도 이층 창가에 서 있는 한미연을 본 것 같았다.

직선거리로 30m 정도의 거리였으므로 사내가 가늘게 뜬 눈도 다 보였다.

머리를 돌린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야, 너희 둘은 여기 있어. 나도 내려가 볼테니까."

한미연을 확인한 그도 불이 난 곳으로 가볼 모양이었다.

불길은 바위 주변을 태우고 있었는데 위 아래로 번지지는 않았다.

검은 연기가 파란 하늘로 솟아 오르면서 이제는 매캐한 나무 탄 냄새까지 맡아졌다.

지휘자격인 사내가 두 팔을 휘저으며 산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한미연은 이제 창틀에 두손을 짚고 별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래층에서는 가정부 양씨가 역시 불구경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밖은 불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한미연의 가슴은 평온했다.

오히려 불소동 때문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산속이었지만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에 파묻혀서 마치 이곳이 무덤속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최광규는 잠깐 별장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언제 밖으로 나오라는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이곳으로 보낸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고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시 어금니를 문 한미연은 가늘고 긴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문득 저 불길이 이곳까지 올라와 별장을 홀랑 태워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미처 한미연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목소리가 울렸다.

"움직이지 마."

그러나 이미 한미연은 머리를 돌려 뒤에 선 사내를 보았다.

먼저 사내의 차갑게 느껴지는 두 눈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내는 키가 컸다.

국방색 작업복 차림으로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어깨가 넓어서 앞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소리 내지마."

다시 사내가 말하더니 한 걸음 다가와 섰다.

사내한테서 흙과 풀이 섞인 것 같은 바깥 냄새가 맡아졌다.

"누, 누구세요?"

눈을 치켜떴지만 한미연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창틀에 등을 붙이고 선 한미연이 똑바로 사내를 보았다.

"여긴 무슨 일이시죠?"

"당신을 납치하려고 온거야."

사내도 또박또박 말하더니 허리에 찬 칼집에서 날이 흰 커다란 칼을 빼내 들었다.

그러나 한미연은 그것을 무심한 표정으로 보았다.

"왜요?"

"왜라니? 이 여자가."

쓴웃음을 지은 사내가 칼끝으로 한미연의 가슴께를 겨눴다.

"말 듣지 않으면 다쳐."

"왠지."

어깨를 늘어뜨린 한미연이 사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하나도 무섭지가 않네요. 다 시시하게 느껴져요. 실감도 안나고."

"그렇다면 기절시켜서라도 업고 갈 수밖에 없어."

"어떻게 빠져 나갈건데요?"

"뒤쪽 산을 넘으면 돼."

"집은 어떻게 나가구요?"

"2층 창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야지."

"어렵겠네요."

"당신을 등에 메고 나갈 때 힘이 들겠어."

그러더니 사내가 갑자기 풀썩 웃었다.

 

 

 

 

불이 꺼졌을 때는 그로부터 두 시간 반쯤이 지난 후였다.

산불은 잔불씨가 남아 있으면 금방 되살아난다.

그래서 안갑수는 두 번이나 다 껐다면서 마음을 놓았다가 허겁지겁 흙을 덮고

나뭇가지로 다시 불씨를 두드려 꺼야 했다.

"방화야."

별장으로 걸어 올라오면서 안갑수가 뱉듯이 말했다.

불이 번진 면적은 30평도 안되었지만 안갑수를 포함한 넷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 것이다.

넷의 온몸은 검뎅 투성이인데다 이봉규는 손에 화상까지 입었다.

불길은 바위 밑의 오목하게 파인 곳에서 일어난 것 같은데 지나가던 사람이

담뱃불을 던졌다고 해도 방화였다.

그리고 이곳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 아니다.

오직 별장으로 뚫린 길가인 것이다.

별장의 나무 담장 밑에서 기다리던 김영기와 백중호가 그들을 맞았다.

둘은 자다가 깨어나 경비 임무를 또 맡았지만 불끄는 작업보다는 한가했기 때문에

미안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상없지?"

하고 안갑수가 묻자 김영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오후 네 시 반이 되어가고 있어서 골짜기에는 이미 그늘이 덮였다.

힐끗 이층에 시선을 준 안갑수가 입맛을 다셨다.

"지기미, 이게 무슨 꼴이야? 내가 별지랄을 다 하는구만."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여기서 산불이나 끄면서 이러고 있어야 돼?"

손을 붕대로 감은 이봉규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시바, 이거 너무 하잖아?"

"야, 그 산불도 어떤 놈이 우리 주의를 돌리려고 질렀을 수도 있어."

"어떻게?"

이번에는 장윤식이 비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그놈이 여길 알지도 못할 것이고 설령 안다고 해도 뭐하러 오겠어?

뭐? 제 동생 복수를 한다고? 말도 안돼."

"야."

장윤식의 말을 자른 안갑수가 김영기에게 말했다.

"들어가 봐." "왜?"

"확인하고 나오란 말이다."

"뭘 확인해?"

"사모 뭐하는가 보고 오란말야. 새꺄."

"지기미."

눈을 치켜떴던 김영기가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불구경 하다가 지금은 잘거야."

그도 창가에 서있던 한미연을 본 것이다.

김영기가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안갑수는 입맛을 다셨다.

"시바. 이거 애새끼들 군기 풀려서 안되겠는데. 모두 대가리가 굵어서 좀 벅차구만."

"어이, 조장은 좀 신경과민인 것 같어."

강성태가 위로하듯 말하더니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그냥 지나가던 놈이 담배를 던진 것이 불이 난거야."

라이터를 켜 불까지 붙여준 강성태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오늘 소방 훈련도 했으니까 밤에 회식이나 하자구."

"좋지." 장윤식이 맞장구를 쳤다.

"누구 한 명 아래 마을로 보내 고기하고 소주 사오라고 하지."

그때 별장에서 김영기가 달려 나왔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없어!"

김영기가 버럭 소리치자 모두 몸을 굳혔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김영기가 헐떡이며 그들 앞에 섰다.

"없어졌어!"

"뭐가?"

하고 안갑수가 바보처럼 묻자 김영기는 이를 악물었다.

"2층이 난장판이야!

탁자가 뒤집혔고 뒤쪽 창틀이 떨어졌어!

난리가 났는데도 아래층 아줌마는 듣지도 못했다는 거야!

싸모가 납치당한 거야!"

김영기는 발까지 굴렀다.

 

 

 

"피라도 좀 뿌려놓고 나오는건데."

하고 한미연이 말했으므로 강한이 발을 멈췄다.

주위는 어두워서 앞쪽 국도를 달리는 차량의 불빛만 또렷하게 드러났다.

다가선 한미연이 가쁜 숨을 뱉으면서 물었다.

"그렇죠? 그럼 더 실감이 났을텐데."

2층의 탁자를 뒤집어 엎고 창틀을 뜯어낸 것도 한미연이다.

아래층에 있는 양씨가 들을까봐 한미연은 발끝으로 걸으면서 제가 다 어질러 놓았다.

강제로 납치당한 흔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강한이 내려준 밧줄을 타고 제가 먼저 2층에서 내려왔다.

뒤쪽 산을 타 넘을 때도 앞장을 선 것이 한미연이다.

곧 지쳐서 강한이 끌고 산을 넘었지만 한미연은 자발적으로 따라온 셈이었다.

"도대체."

강한이 다시 발을 떼자 뒤를 따르면서 한미연이 말했다.

"지금 2시간째 걷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걷게 만들건데요?"

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한미연은 저 혼자서 이렇게 묻고 때로는 대답까지 했다.

"실망시키지 마요."

한미연이 헐떡이며 말했다.

"최광규하고 겨룰 정도면 조직이나,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치밀하게 짜 놓아야죠.

걸어서 서울까지 갈건가요?"

그때 다시 걸음을 멈춘 강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은 이미 내려왔고 둘은 별장의 반대쪽 황무지와 도로를 두 개나 건너왔다.

이곳은 농경지여서 좌우에 민가의 불빛이 보였다.

다시 강한이 발을 떼었을 때 뒤를 따르던 한미연이 발을 헛디뎌 옆으로 넘어졌다.

도랑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강한이 다가가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자 한미연이 헐떡이며 말했다.

"참, 날 어떻게 할거냐고 묻지 않았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

"영화에서 보면 인질을 잡고 뭔가를 요구하던데. 당신도 그럴건가요?"

"……."

"최광규는 안내놓을건데."

"……."

"혹시 복수?"

한미연이 바짝 다가붙더니 강한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어둠속에서 눈의 흰창이 번들거렸고 연한 향내가 맡아졌다.

그때 강한이 앞쪽을 보더니 말했다.

"저기 있군. 찾았어."

앞쪽 국도변의 주차장이다.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그 사이에 낀 승용차가 보였다.

승용차로 다가간 강한이 키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아, 피곤해."

스스로 운전석 옆자리에 오른 한미연이 안전띠를 매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상반신을 의자에 붙이면서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강한도 차의 시동을 거는 중이다.

"나, 이상하죠?"

이전에도 강한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그럴거예요."

라이트를 켠 강한이 차를 발진시켰다.

"왠지 알아요?"

차는 차량 통행이 뜸한 국도를 속력을 내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미연이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당신은 납치당한 여자를 다시 납치한거죠. 그러니까."

머리를 돌린 한미연이 강한을 보았다.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배어나 있다.

"부정의 부정은 뭔지 알죠? 긍정이죠. 적의 적은 뭐게요? 친구죠."

"무서우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

강한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때 한미연은 머리를 저었다.

"최광규보다는 낫겠죠."

다시 한미연이 강한을 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다 줄게요.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 당장 차 세우고 섹스를 해요. 아니, 해줘요.

나 달아 올랐어. 날 최광규한테서 멀리 떼어놔 주기만 하면 돼요."

 

 

 

 

 

최광규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보고를 한지 한 시간 쯤이 지난 후였다.

차량 7대가 한꺼번에 별장으로 몰려왔으므로 주위는 불빛으로 환해졌다.

별장 안으로 들어선 최광규는 잠자코 난장판이 된 2층을 둘러보더니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수행해 온 간부급들은 물론이고 안내를 한 안갑수도 감히 자리에 앉지 못했다.

최광규에게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는데 얼굴은 누렇게 굳어졌고 가끔씩 손발이 떨렸다.

최광규를 수행한 조철이 묻는 말에 겨우 대답했을 뿐이다.

"그럼, 놈들이 불을 질러놓고 납치했단 말인데,

너희들은 불을 끄는 동안 이곳은 전혀 경계를 하지 않았구만"

하고 최광규의 심복 중 하나인 경호실장 조철이 말했으므로 안갑수는 침부터 삼켰다.

다시 손발이 떨려왔다.

최광규는 앞쪽의 벽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눈의 초점도 잡혀있지 않았고 소파에 등을 붙인 채 숨도 쉬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저기, 그때 사모님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안갑수가 더듬었다.

"저희들은 안심하고."

그때 최광규가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모두 긴장했다.

안갑수도 말을 멈추고 나서 최광규를 보았다.

최광규가 벽으로 다가가더니 기대놓은 골프채 하나를 쥐고 한 발짝 안갑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골프채를 휘둘렀다.

"억!"

커다란 스윙을 한 골프채가 안갑수의 어깨에 정통으로 맞으면서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안갑수가 앞으로 엎어졌다가 곧 상반신을 세웠다.

그때 부러진 골프채를 버린 최광규가 새 것으로 바꿔 쥐더니 다시 휘둘렀다.

"뻑!"

이번에는 골프채가 등에 맞았고 입을 쩍 벌린 안갑수가 앞으로 엎어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골프채를 내던진 최광규가 말했다.

"찾아."

"네!"

방안에 모여선 10여명의 사내들한테서 거의 동시에 커다란 대답이 울려나왔다.

최광규는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이었고 눈의 초점도 잡혀있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마치 유령 같았다.

다시 소파에 앉은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좋다. 그놈들 가족, 사돈의 팔촌도 좋다. 다 잡아. 다 잡으란 말이다!"

"예! 회장님."

다시 모두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러나 방바닥에 엎어진 안갑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정보 제공자는 1억, 잡아오면 5억을 준다. 똘만이들한테 다 알리도록."

"예, 회장님."

그리고는 최광규가 눈을 감았으므로 그때서야 부하들이 늘어진 안갑수를 끌고 내려갔다.

응접실에 최광규와 조철 둘이 남았을 때 방안으로 40대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섰다.

"회장님, 창문을 내려가 뒷산을 넘어가려면 혼자 행동하기는 벅찹니다.

아무래도 둘 이상이 왔어야 됩니다."

사내는 최광규의 앞쪽 소파에 앉더니 수첩을 꺼내보며 말을 이었다.

"뒷산도 가파라서 끌고 가려면 시간이 꽤 소요되었을 것 같군요.

어쨌든 방심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래쪽에 불을 질렀을 때 응당 이곳 경계부터 강화시켰어야죠."

"다 아는 말은 그만두고."

최광규가 사내의 말을 잘랐다.

"내부 수사는 어떻게 된거야?"

"며칠 사이에 알아내겠습니다."

수첩을 닫은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최광규를 보았다.

"사모님을 이곳으로 옮긴 걸 아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는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사모님을 희생시켜 내부 배신자를 찾아냈다고 자위하시지요.

놈을 찾아내면 사모님도 찾게 되실 겁니다."

 

 

 

 

나흘째가 되는 날 오후, 서윤남은 산책을 마치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가정부는 10㎞쯤 떨어진 마을 수퍼로 시장을 보러 갔기 때문에 넓은 별장에는 장미와 둘뿐이다.

서윤남은 요즘처럼 인생이 꿀처럼 달고 아름다우며 희망에 부푼 적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옆에 누워있는 장미를 본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다.

서윤남은 돈을 더 내더라도 계약 기간을 연장할 생각이었다.

한달쯤 같이 살다가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아예 살림을 차려줄 작정이었다.

돈이야 얼마든지 있다.

지금까지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이제는 쓸 것이다.

장미한테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았다.

처녀였던 장미를 요즘 여자로 만들어가는 재미는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장미는 어제부터 섹스의 쾌락을 느끼는 모양으로 낮게 탄성까지 뱉었다.

그때의 꿈틀거리는 모습이란,

이층의 계단으로 오르면서 서윤남의 머리가 다시 뜨거워졌다.

약을 먹기는 하지만 요즘 하루에 평균 네 번을 한다.

장미를 홀랑 벗겨놓고 있기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욕망이 솟는 것이다.

"장미야."

서윤남이 부드럽게 장미를 불렀다.

그리고는 이층 응접실로 올라와 둘러보며 장미를 찾았다.

"장미야, 나 왔다."

그때 안방 문이 열렸으므로 서윤남은 머리를 돌렸다.

"아앗!"

그 순간 서윤남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졌다.

안방에서 사내 하나가 나온 것이다.

사내는 손에 길이가 50cm는 되는 칼을 쥐었는데 흰 칼등이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뒤로 장미가 따랐다.

장미는 가운만 걸친채 손이 뒤로 묶여졌고 머리는 헝클어졌다.

그리고 반항하다가 맞았는지 코와 입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장미의 뒤로 사내 하나가 따라 나왔고 이놈도 손에 칼을 쥐었다.

"어어."

오금이 붙어버린 서윤남이 그대로 선채 놀란 신음만 뱉었다.

이미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고 어깨가 늘어졌다.

기가 질려서 말할 기력도 놓친 것이다.

"영감 일루와."

사내 하나가 다가와 서윤남의 팔을 끌더니 소파 위에다 사정없이 밀었다.

서윤남이 곤두박질 치듯이 앉았을 때 사내가 점퍼 주머니에서

공업용 테이프를 꺼내 손과 발을 묶었다.

익숙한 솜씨였다.

그 사이에 장미는 서윤남의 옆에 앉혀졌다.

"자, 그럼, 사업을 해 보실까."

다 묶고 난 사내가 허리를 펴고 말했을 때 사내 하나가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우리가 처음엔 도둑질을 하러 여기에 들어왔다가 마음을 바꿨어."

사내가 말하더니 손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사내의 손끝을 따라 화면을 본 서윤남이 눈을 부릅떴다.

바로 자신의 얼굴이 TV 탤런트처럼 화면에 떠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내가 리모컨을 주무르자 소리가 커졌다.

"아이구 좋다."

그때 화면에 서윤남의 밑에 깔린 장미 모습이 드러났다.

장미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 있다.

서윤남이 엉덩이를 들썩여 방아를 찧으면서 다시 소리쳤다.

"아이구, 좋다, 좋아."

그러더니 서둘러 말했다

"너도 좋다고 좀 해, 어서!"

"좋아요."

장미가 눈을 감은 채 말했을 때 서윤남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쌌다! 쌌어!"

무슨 큰일이나 되는 것처럼 소리친 서윤남이 다음 순간 늘어졌다.

그때 화면을 끈 사내가 서윤남에게 물었다.

"영감, 이 테이프 사지 않겠어? 이런 장면이 열 개나 더 있어."

그러더니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장면 하나에 10억, 합계 60억이야. 안 산다면 죽여줄게 땅속에서 그짓 해"

사내가 턱으로 장미를 가리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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