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22. 전쟁 (4)

오늘의 쉼터 2014. 7. 24. 08:57
 

22. 전쟁 (4)

 

 

 

오후 2시 25분. 검정색 외제 승용차에서 내린 김희선은

경호원과 함께 대동신탁은행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당당한 태도였고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그때 로비에 서 있던 은행원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그러더니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혹시 지점장님하고 2시반에 약속을 하신 사모님 아니십니까?"

"네. 제가 김희선이에요."

"예, 사모님. 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펴고 웃은 은행원이 다시 인사를 했다.

"전 대출계 대리 임윤수입니다."

은행원의 가슴에 임윤수라는 이름표가 붙여져 있었다.

"지점장님께서 별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앞장을 서면서 은행원이 말했다.

김희선의 표정이 환해졌다. VIP 대접을 받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특히 은행에서는 더 그렇다.

은행원은 옆쪽 비상구로 들어서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별실이 그쪽에 있는 모양이라고 따라간 김희선은 은행원이 우뚝 멈춰섰을 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 주차장 입구가 아래로 보였다.

"아니."

김희선이 막 입을 연 순간이었다.

은행원이 몸을 비틀더니 주먹으로 경호원의 턱을 올려쳤다.

"뻑!"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그렇게 났다.

김희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던 경호원은 무방비 상태였고

이어서 은행원의 무지막지한 발길질에 배를 차이고는 신음을 뱉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경호원의 턱을 발길로 찬 은행원이 몸을 돌려 김희선의 팔을 움켜쥐었다.

놀란 김희선이 입만 쩍 벌린 채 굳어져 있다가 그때서야

입을 열어 고함을 치려고 했지만 배의 힘이 빠져 헛바람만 나왔다.

"때리고 기절시켜서 끌고 갈수도 있어."

은행원이 잇사이로 말하더니 주차장의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김희선을 끌고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때 승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안에서 문이 열렸다.

안에 사내 두 명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은행원은 김희선의 등을 밀어 승합차 안에 태웠고 사내들이 잡아 끌었다.

승합차 문이 닫혔을 때 사내들이 달려들어 김희선의 입과 손발에 테이프를 감았다.

승합차가 지하 주차장을 달려 올라가 밝은 바깥으로 나왔을때

이미 김희선은 바닥에 짐짝처럼 눕혀져 있었다.

차가 통행량이 많은 대로에 들어섰을 때 강한이 말했다.

은행원 임윤수는 강한이었다.

"아줌마. 경호원들한테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연락해.

만일 그랬다간 아줌마는 이 차안에서 시체가 될 테니까."

강한이 김희선의 입에 붙여진 테이프를 절반쯤 떼더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김희선의 가방도 잊지 않고 차에 실은 것이다.

"자, 전화번호 불러."

김희선이 입술만 달싹이자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줌마. 고위직을 많이 안다면서? 지금 그 생각해봤자 헛거야.

10초안에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아줌마는 5분쯤 후에는 죽어.

그냥 테이프를 입하고 코에다 붙이면 돌아가시는 거야."

그리고는 옆에 놓인 이삿짐용 테이프를 집어 들었을때 김희선이 말했다.

"번호 말할게 눌러."

강한은 김희선이 불러준 번호를 누르고 나서 먼저 귀에 붙였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번 둘리고 나서 사내가 받았다.

"여보세요."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때 강한이 핸드폰을 김희선의 귀에 붙였다.

"나야. 난데, 경찰에 신고하지 마."

김희선이 누운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 말라면 하지마. 내말 들어. 알았지?"

그러더니 힐끗 강한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경찰에 연락하지 말고."

 

 

 

오후 4시 40분. 용인 근처의 야산 밑. 작년까지 소를 키우던 축사는 텅 비었고

옆쪽 창고와 시멘트로 지은 단층집도 인적이 없다.

축산업에 실패한 일가족이 빚더미를 짊어지고 떠난 것이다.

근처 민가와는 1km나 떨어진 외딴 곳이어서 분위기는 황량했다.

승합차가 단층집 앞마당에 멈춰서더니 먼저 강한이 내렸다.

뒤를 따라 김희선이 내렸는데 묶인 손발은 다 풀렸지만 비틀거렸다.

"여기가 어디야?"

마당에 선 김희선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굴을 하얗게 굳히고 물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황택수가 등을 밀었으므로 비틀거리며 발을 떼었다.

단층집은 50평형 규모의 살림집이었는데 세간은 말끔하게 비워졌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응접실에 임시로 비닐 소파와 탁자를 놓았고 반쯤 열려진 앞쪽 방에는

가지런히 개어놓은 침구가 보였다.

이곳도 강한 일당의 안가인 것이다.

강한은 경기도에만 인가를 7군데 마련해 놓았고 앞으로 더 늘릴 예정이었다.

김희선을 밀어 소파에 앉힌 황택수가 밖으로 나갔으므로 집안에는 강한과 둘이 남았다.

"날 어쩌려는 거야?"

김희선은 이제 강한이 리더인줄 안다.

얼굴을 굳힌 김희선이 물었지만 앞쪽에 앉은 강한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돈 내라면 내겠어."

눈을 치켜뜬 김희선이 잇사이로 말했다.

"나한테 원한이 있을리는 없고, 돈 뜯어낼 목적인것 같은데 우리 타협 하자구.

말귀를 알아 들을 만한 사람같아서 그러는 거야."

"……."

"잘 알겠지만 날 어떻게 하면 나라가 시끄러워 질거야.

경호원들이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니까 수사하기도 쉽겠지."

"……."

"잡힐거야. 오래 못가." "……."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자구. 난 일 끝나면 없었던 일로 할테니까. 다 잊겠단 말이야."

"……."

"5억까지는 줄 수 있어. 그 이상 능력이 없어. 난 부자가 아냐."

"……."

"조사 해봐도 돼. 집도 은행 담보로 잡혀있어서 현금을 만들수 없어."

"……."

"합의 해준다면 당장 내놓을 수 있어. 그래, 내일 오전까지."

"5억이라."

불쑥 강한이 말했으므로 김희선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입을 꾹 다문 김희선을 향해 강한이 말을 이었다.

"5억? 천하의 여걸 김희선씨 몸값이 겨우 5억이란 말이지?"

"난 마담이야. 그저 얼굴만 파는 마담이지 실속은 없다구.

그리고 돈을 모으는 성격도 아냐."

"그럼 누가 모은거야?"

정색한 강한이 김희선을 똑바로 보았다.

"장미같은 기집애가 돈을 모은건가?"

그 순간 김희선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도 치켜뜬 김희선이 강한을 쏘아보았지만 시선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너, 지금."

김희선이 손가락으로 강한을 기리켰다.

"지금, 뭐라고 했어?"

"장미같은 기집애가 돈을 모은거냐고 물었어."

담배 연기를 김희선 쪽으로 길게 뱉은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미 이야기는 다르던데? 당신이 다 뜯어갔다고 말야."

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음이 들리더니 조금 수선스러워졌다.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 소리까지 들리더니 곧 현관의 문이 열렸다.

"아앗."

김희선의 입에서 비명같은 외침이 울렸다.

현관 안으로 들어선 장미를 보더니 김희선은 마치 귀신을 만난 것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되었어?"

김희선을 외면한 채 장미가 강한에게 물었다.

"이 할망구가 지금 뭐라고 거짓말을 한거야?"

 

 

 

"아니, 네 년이."

하고 김희선이 겨우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김희선은 대번에 상황을 눈치챈 것이다.

다가온 장미가 강한의 옆자리에 앉더니 김희선을 똑바로 보았다.

강한이 보기에도 얼음덩이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다 네 년 수작이었구나."

안간힘을 쓰듯이 김희선이 말했을 때 장미가 코웃음을 쳤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네."

그러더니 장미가 강한을 보았다.

"이 할망구한테 어떻게 이야기 한거야?"

"나야 뭐."

하고 강한이 어물거리자 장미는 눈을 치켜떴다.

"너희들 하는 짓이 다 그래. 병신같은 놈들. 밥값이나 제대로 하란 말야!"

강한은 시선을 내렸고 장미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지금 이 할망구가 어떤 처지란거 이야기 해줬어?"

"했는데."

어물거리듯 강한이 말하자 장미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이게 뭐야! 지금 손님 받은거냐?

아주 소파에 떡 앉히고 차라도 끓여 대접하지 그래!"

"아니, 그것이."

당황한 강한이 따라 일어섰을 때 장미가 소리쳤다.

"당장 묶어!"

"알겠어."

"저 할망구 목소리도 듣기 싫으니까 주둥이에 테이프 붙여서 창고에다 처박아 놔!"

"알겠어."

"저 할망구 정신 차리면 다시 만나든지 말든지 할테니까."

그리고는 장미가 몸을 돌리자 강한이 김희선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입만 쩍벌린 채 둘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희선이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선 김희선이 장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나하고 잠깐 얘기좀 해."

"시끄러!"

장미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내가 네 종이냐? 아직도 상황파악 못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

"아냐, 아냐."

머리까지 저은 김희선이 필사적으로 얼굴로 말했다.

"우리 합의해. 응? 부탁이야."

김희선이 두손을 모으고 애원했다.

"제발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합의해줘. 응? 내가 최선을 다 할게."

그러자 장미가 강한한테 소리쳤다.

"묶어서 창고에다 던져놔!"

"알았어."

강한이 김희선의 어깨를 움켜쥐었을 때 장미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10분쯤이 지났을때 강한과 장미는 다시 응접실의 소파에 마주앉아 있었다.

강한이 김희선을 창고에다 던져놓고 온 것이다.

"네가 아예 대장노릇 해라."

웃음띤 얼굴로 강한이 장미한테 말했다.

"아주 잘 어울리더구만."

"저 할망구는 나한테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현금이 50억은 된다고 항상 자랑했어.

현금은 집안에다 숨겨 놓았다고 말야."

장미가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5억을 낸다고? 내 몸값 떼어 먹은 것만 해도 10억이 넘겠다."

"그렇게 많이."

눈을 치켜뜬 강한이 장미를 보면서 덧붙였다.

"그렇게 많이 남자를 만났단 말이냐?"

"시끄러 짜샤."

외면한 장미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너희들같은 싸구려 쪽수로 계산마. 짜샤. 내가 상대한 놈들은 억대다."

"그렇군."

강한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억대 몸값을 주는 놈들은 연장에다 도금을 했다던데, 사실이냐?"

 

 

 

 

두 사내가 다가와 섰을 때 홍대식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두 놈 다 안면이 있다.

조직내 서열은 두 계단쯤 아래였지만 놈들은 회장 직속의 이른바 감찰반원이다.

감찰반원 조직원의 규율을 잡고 민폐를 없앤다는 거창한 목적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회장 최광규의 사조직이다.

"뭐야?"

홍대식이 그렇게 물었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천지 나이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막 차를 빼내려고 하던 참이다.

경호원 겸 운전사인 유복동은 쫄아 있었다. 홍대식의 옆에 서서 온몸을 굳히고만 있다.

"홍부장님, 잠깐."

사내 하나가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홍대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좀 봐도 될까요?"

"차를?"

홍대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눈을 치켜뜬 홍대식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왜?"

"잠깐 차 안을 봐야겠는데요."

사내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홍대식이 다시 물었다.

"글쎄, 왜?"

"잠깐이면 됩니다."

하고 옆쪽 사내가 거들었으므로 홍대식은 어금니를 물었다.

이미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었다.

차 안을 수색한다는 말이었다.

세관에서 밀수품 수색하는 것처럼. 이윽고 홍대식이 유복동에게 말했다.

"키 줘."

유복동이 키를 건네주자 사내들은 차로 다가갔다.

"그거 누구 지시야?"

하고 그들의 등에 대고 홍대식이 물었지만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내들은 차 안을 열심히 뒤지고만 있다.

"회장님 지시야?"

홍대식이 다시 물었을 때였다.

트렁크를 연 사내가 머리를 들더니 동료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나 동료와 함께 사내가 트렁크 안의 무엇을 뒤지고 있는지

홍대식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사내 하나가 상체를 세우더니 홍대식에게 말했다.

"홍 부장님. 잠깐 우리하고 같이 가 주셔야겠는데요."

사내 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서둘러 버튼을 누르고나서 귀에 붙였다.

"왜?"

다시 거칠게 홍대식이 물었을 때 사내가 트렁크에서 헝겁 백을 들어 보였다.

백은 묵직해서 곧 늘어졌다.

"그게 뭔데?"

홍대식이 묻자 사내는 백의 주둥이에 손을 넣더니 지폐 한 뭉치를 꺼냈다.

"이 돈은 뭡니까?"

"아니." 눈을 치켜뜬 홍대식이 다가가 백의 주둥이를 거칠게 벌렸다.

그 순간 안에 가득 든 1만원권 뭉치가 보였다.

대충 계산을 해도 3000만~4000만원은 되어 보였다.

"아니. 이게 뭐야?"

"홍 부장님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야."

몸을 돌린 홍대식이 유복동을 보았다.

얼굴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있다.

"너. 이게 무슨 돈이야?"

"저도 모릅니다."

세차게 머리를 저은 유복동이 소리치듯 말했다.

"제가 그런 돈을 왜 트렁크에 놔 두었겠습니까?"

"같이 가십시다."

사내가 백을 한 손에 쥔 채 홍대식의 한쪽 팔을 움켜 쥐었다.

"회장님한테 직접 해명을 하시죠."

"야. 이거 안놔!"

팔을 뿌리친 홍대식이 사내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이 새꺄. 난 그 돈을 모른단 말이다. 내 돈이 아니란 말야!"

"그럼 왜 네 차 트렁크에 이돈이 들어 있는 거야?"

눈을 부릅뜬 사내가 이제는 반말로 물었다.

그때 다른 사내가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홍대식이 반항을 합니다."

 

 

 

 

"불어."

사내가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다시 테이블에서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를 집었다.

가위의 독수리 부리처럼 휘어진 끝 부분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미 가위는 홍대식의 손가락 두 개를 자른 것이다.

홍대식이 핏발 선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는데 한 시간째 고문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난 모른다니까? 정말이야."

의자에 팔 다리가 묶여 있어서 홍대식은 머리만 흔들었다.

잘린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렸고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전해졌으므로 홍대식은 이를 악물었지만 아직 기는 죽지 않았다.

"어떤 놈이 날 잡으려고 작전을 짰다구. 난 지금 음모에 빠진 것이라구!"

악을 쓰듯 홍대식이 말했다.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되풀이했지만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손가락 하나를 잡아 쥐었다.

"아직도 여덟 개가 남아있어."

사내가 손가락 하나를 가위날 사이에 끼면서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도 충분하고 말야."

"이봐, 이봐, 내 말좀 들어."

얼굴에서 와락 땀을 쏟으면서 홍대식이 소리쳤다.

"생각해 보란 말야. 내가 왜 차 트렁크에다 돈을 싣고 다니겠냐구! 응? 말도 안되는 소리잖아!"

"돈을 감출 시간 여유가 없었겠지."

"내가 누구한테 돈을 받는단 말이냐!"

"강한."

낮게 말한 사내가 가위를 쥔 손에 힘을 준 순간 홍대식의 입에서

지하실이 터져 나갈 것 같은 비명이 터졌다.

"아아악!"

손가락 하나가 또 잘린 것이다.

"아이고오."

이마를 앞쪽 테이블에 박으면서 홍대식이 울부짖었다.

"이 개새끼야! 내가 강한이한테 돈먹고 정보를 팔았단 말이냐! 이 홍대식이가 말야!"

"이 새끼. 너 경마에다가 벌써 5억 이상을 쏟아 부었더구만."

가위에 묻은 피를 홍대식의 저고리에다 닦으면서 사내가 말했다.

"경마에 미친 놈을 내가 좀 알지. 제 부모 선산까지 판 놈도 있고

처자식을 거리로 내쫓고 집 팔아서 경마장으로 달려간 놈도 하나둘이 아냐."

"난 아냐!"

"정보 몇 개만 넘기면 수천만원이 생기는데 경마 중독자가 가만 있을까?"

"아니라니까!"

"더구나 전영철이 죽으면 그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는 입장인데 말야."

"야, 이 개새끼야."

마침내 이성을 잃은 홍대식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난 안했어! 억울해!"

"불어라."

사내가 다시 가위를 집어들고 말했다.

"다 불면 손가락은 더 이상 자르지 않을게. 대신 넌 조직을 떠나야 되겠지.

그리고는 끝나. 내가 보장한다."

가위를 홍대식의 코 끝에 댄 사내가 말을 이었다.

"손가락 다 자르면 발가락, 그리고 이 코하고 귀까지. 좌우간 나온 부분은 다 자를거다.

네가 자백할 때까지."

사내가 다시 가위를 벌리더니 남은 손가락 하나를 물렸다.

"자, 불어."

"나는."

그렇게 말했던 홍대식의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내가 강한이한테 받았다."

"얼마를, 언제?"

반색을 한 사내가 묻자 홍대식이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어제, 5000만원."

"가방에는 3000만원밖에 없던데, 나머지는?"

"내가 썼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네가 강한한테 건넨 정보에 대해서 말해."

사내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계속>

 

'소설방 > 강안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정복자 (1)  (0) 2014.07.25
23. 전쟁 (5)  (0) 2014.07.24
21. 전쟁 (3)  (0) 2014.07.23
20. 전쟁 (2)  (0) 2014.07.22
19. 전쟁 (1)  (0) 201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