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0장 전운(戰雲) 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3:47

제10장 전운(戰雲) 1  

 

이 무렵 백제 왕실에는 법왕 부여선이 남긴 세 아들과 법왕비가 있었는데,

임금의 형제들을 담로국의 제후로 봉하여 외지로 보내는 것은 나라의 오랜 관행이었다.
 
게다가 귀국한 지 채 일년 남짓 만에 남편을 여의고, 난데없이 나타난 부여장에게

왕위마저 빼앗긴 법왕비로서는 본국에 미련을 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십수 년을 살아왔던 서역의 곤륜땅이 고향처럼 그립던 차인데 왕이 즉위하여

자신을 태자로 옹립했던 중신들마저도 가차없이 내쫓고 군사를 일으켜 전쟁까지 하는 것을 보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하루는 세 아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나는 사비에서 단 하루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저 눈만 감으면 곤륜의 산천이 떠오르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리울 뿐이다.

항차 이곳은 기후와 음식도 몸에 맞지 않아 침식을 그르치는 때가 많으니

하루가 다르게 심신에 축이 간다.

그런데 내가 몇 번이나 왕비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였으나 아직도 편전에서

아무 기별이 없으니 실로 답답하구나.

너희 가운데 누가 임금을 찾아가 이 어미의 간절한 뜻을 전하고 허락을 얻어오겠느냐?”

하니 장남 진(眞)과 막내 우(祐)는 아무 대답이 없는데 차자인 헌(軒)이,

“소자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섰다.

부여헌은 나이 스물하나로 비록 몸은 허약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3형제 가운데

가장 머리가 영특하고 담력이 컸다.

법왕비가 헌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우리 네 모자의 운명이 너의 어깨에 달려 있다.

만일 곤륜으로 가지 못하면 우리는 천수를 다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하고서,

“우리가 여기에 있어봐야 왕업에 티끌만한 보탬도 되지 않을 것이니

너는 특별히 이 점을 강조해 말하라.”

하고 지시했다.

헌이 그 길로 왕이 거처하는 편전에 이르러 친견을 청하고 모후의 뜻을 아뢴 뒤에,

“곤륜은 저희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저희 형제가 그곳으로 다시 가서 전하의 왕업을 곤륜땅의 신민들에게도 펼 수 있도록

가납하여줍시오.”

하는데, 그 말하는 품새며 언변이 제법 당당하고 조리가 있었다.

장왕이 이복 아우 셋 가운데 전부터 헌을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너의 모후면 내게도 모후요, 모후의 뜻이 그러할진대 아니 받들 수야 있겠느냐.

내 마음 같아서는 그저 왕실에 모셔두고 일찍 구몰한 양친께 다하지 못한 효도를

원없이 하고 싶다만 모후께서 이를 불편히 여기시는 듯하여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구나.”

부드러운 말로 대답한 뒤에,

“그런데 곤륜으로 네 사람이 모두 갈 까닭이야 없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왕이 염려하는 것은 계모와 이복 아우들을 모두 국외로 보낼 경우

자칫 세간에 나돌지도 모를 백성들의 비난이었다.

어떻게든 덕을 쌓고 민심을 하나로 아울러야 하는 장왕으로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모후께서 가시는 것도 애운한 일인데 아우 셋이 모두 과인의 곁을 떠난다면

너무 허퉁하지 아니한가? 너도 알다시피 과인에게 누가 있느냐?”

만일 이런 일로 구설에 오르내린다면 장차 자신이 지닌 야망은 펴기 힘들다는 점을

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하께서 염려하시는 바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왕의 말을 듣고 난 헌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때문이 아니라니?”

“감히 아뢰거니와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이래 대신들의 옥석을 가려 조정의 면모를

일신하였다면 그 다음으론 왕실에 대해서도 한번쯤 좌우를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왕실 족친의 일을 논하자면 우선 저희 세 형제가 있고,

숙부인 우로와 그 아들이 둘 있습니다.

또한 전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일이 다 거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부여씨들이 있지만

저희 세 형제만 제외하면 모두 나라 밖의 담로지에서 살고 있으므로 전하께서는

그들의 인품이나 됨됨이는 고사하고 얼굴과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부여헌의 지적은 가히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성왕의 아우 윤과 지의 자손들, 위덕왕과 혜왕의 아우들인 숭과 명성, 자실과 용남의 후손들,

그리고 법왕의 아우인 우로의 자식들이 나라 밖의 외지에서 살고 있었지만 장왕이 이름이라도

들어 알고 있던 사람은 불과 두셋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장왕의 숙부인 우로와 그 윗대인 숭과 자실, 용남 등은

아직 당자들까지 생존해 있던 터였다.

헌이 잠시 끊었던 말허리를 이어갔다.

“지금 전하께서 연목구어의 심정으로 힘써 얻고자 하는 것은 전하의 왕업을 보필하여

국운을 열어 나갈 젊고 걸출한 인재들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이같은 인재들이 어찌 나라 안에만 있을 것이며, 왕실의 후손들인

부여씨 중에도 없으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이까?”

“너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헌의 말에 왕이 문득 무릎을 쳤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장 전운(戰雲) 3 회  (0) 2014.07.19
제10장 전운(戰雲) 2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20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19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18 회   (0) 201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