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20
한편 백제의 병관좌평 해수는 사비로 돌아오자
스스로 몸을 묶어 장왕의 앞으로 나가서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였다.
장왕이 용좌에 자리를 높이고 앉아 대패하고 돌아온 해수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경은 어찌하여 패하였단 말인가? 천산에 과인이 말한 큰 못이 없던가?”
“아니올습니다.”
“하면 대택으로 신라군이 쫓아오지 아니하던가?”
“그, 그것도 아니올습니다.
전하께서 내리신 계책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고,
천산의 못은 신라군의 시체로 거의 평지처럼 메꾸어놓았습니다.”
“허허, 참으로 알지 못할 노릇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4만의 대병을 잃고 그대는 패장이 되어 돌아왔더란 말이냐?”
이에 해수가 저간의 사정을 낱낱이 털어놓고서,
“신이 아둔하고 미욱하여 내신좌평이 충고하는 바를 무시하고
궁한 적을 치다가 결국에는 다 이긴 싸움을 그르치고 말았나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 것이 실로 천추에 남을 치욕입니다.
붙여놓았던 신의 목을 오늘 기필코 치시옵소서.
장공속죄의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입었음에도 만분지 일도 갚지 못하였으니
죽어도 눈이나 제대로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패한 이유를 솔직히 고변하며 거듭 죄를 청하였다.
장왕이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앉았다가,
“아니다. 혈기 하나만 믿고 섣불리 군사를 움직인 짐의 과실이 가장 크다.
내 진작에 왕변나의 말을 들었던들 어찌 오늘과 같은 일을 보았으랴.”
스스로 깊이 탄식하고서,
“방장한 혈기는 비록 강하나 사리를 판단하는 지혜로움이 없고,
젊은 신하의 의기는 비록 뜨겁고 순수하나
노신의 깊이 생각하는 분별력에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만물의 이치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국사를 펴는 조정의 일 또한 어찌 예외일 수 있으랴.
과인은 그간 썩은 악습을 고치기 위하여
늙은 중신들의 존재를 일부러 무시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젊어서 강하고 뜨거운 것과
늙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을 모두 중히 여길 것이다.”
하고는 즉시 왕변나를 내법좌평으로 삼고,
내관의 공덕부에 명하여 옥석 구분 없이 물리쳤던 전조의 중신들을
일일이 내사한 뒤 허물이 없는 노신들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왕효린(王孝隣) 등 스무 명에 달하는 이가 벼슬과 관작을 새롭게 얻었는데,
고장사(庫藏事)의 사무를 맡은 내두좌평 왕효린은 변나의 숙부여서
숙질이 나란히 좌평을 지내게 되었다.
또한 비록 패하고는 왔으나 군사의 사기를 생각하여
무공이 높은 백기에게는 한솔 벼슬을 내리고,
용감히 싸운 길지와 문진도 나란히 한솔로 승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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