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16
백정왕은 이사부의 아들 이리벌을 원군의 장수로 삼고 급찬 무은을 대감(大監)에 명하여
보기병 1만을 거느리고 남승을 돕도록 하였다.
이때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이 추항이란 자와 더불어 와서 간곡히 무은의 군대를
따라갈 것을 소원하였다.
귀산은 본래 사량부 사람으로 용춘의 낭도 출신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동네 사람 추항을 동무로 사귀었는데,
두 사람이 모두 뜻과 기개가 고상하고 성품이 용맹스러웠다.
용춘이 천명 공주와 혼인한 직후 평소 귀산의 됨됨이를 잘 알던 용춘의 천거로
잠시 벼슬살이를 하였으나 용춘이 모함을 받고 물러나자 귀산도 스스로 벼슬을 내놓았다.
그 후 경신년(600년)에 이르러 법사 원광이 수나라에 조빙사로 갔던 내마 제문과
대사 횡천을 따라 귀국하여 운문산(雲門山:청도)의 가실사(加悉寺:가슬갑사)를 중창하고
그곳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자 추항을 찾아가 말하기를,
“우리는 옛날부터 선비나 군자와 교유하기를 바라면서도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지 않는다면 장차 어떤 치욕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네.
듣자건대 근자에 나라의 고승 원광 법사가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가실사에 머문다고 하니
우리가 법사를 찾아가서 어질고 올바른 도리를 구해보지 않겠나?”
하니 추항도 곧 좋다고 하여 두 사람이 운문산으로 원광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들이 법사 원광을 만나 공손한 태도로 절하며,
“속세에 사는 우리가 어리석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으니
원컨대 법사께서 한 말씀을 깨우쳐주시면 죽는 날까지 이를 계명으로 삼겠습니다.”
하고 청하니 원광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불가에는 보살계라는 열 가지 계율이 있지만 그대들은 남의 신하가 될 사람들이라
이를 다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금세의 세속에는 오계라는 다섯 계율이 있으니,
첫째는 사군이충(事君以忠)이라, 나랏님을 섬길 적에 충성을 다하고,
둘째가 사친이효(事親以孝)라,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하는 것이다.
셋째는 교우이신(交友以信)인데, 벗을 사귐에 믿음을 다하고,
넷째는 임전무퇴(臨戰無退)라, 싸움에 임하여 물러나지 말 것이며,
마지막 다섯째는 살생유택(殺生有擇)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이려 할 때에는 반드시 가려서 행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이 만일 이 다섯 가지 계율만 충실히 지킨다면
인생에 올바른 것과 원하는 바를 두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원광의 말을 들은 귀산과 추항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른 것은 다 알겠사오나 마지막 계율만은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법사가 소상히 풀어 설명하기를,
“육잿날과 봄철과 여름철에는 산 것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으니 이는 때를 가리라는 것이요,
집에서 기르는 소, 말, 닭, 개를 죽이지 말라는 것과 고기가 한 점도 되지 못하는
잘고 하찮은 것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대상을 가리라는 것이다.
이렇듯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꼭 그것이 필요할 때에만 행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삼가라는 것인즉, 가히 세속의 착한 경계가 아니겠는가?”
하여 귀산과 추항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금일 이후에 법사께서 말씀하신 다섯 계율을 충실히 마음에 받들고 몸에 익히겠습니다.”
하고 물러났다.
이 뒤로도 귀산과 추항은 자주 운문산 가실사로 원광을 찾아가 궁금한 것을 묻고
가르침을 청하며 뜻을 키웠는데, 마침 백제군의 침공이 있고 귀산의 부친 무은이
원군으로 출병하게 되자 양자가 모두 백의종군할 뜻을 왕에게 극간하였다.
이에 백정왕이 전날 길사 벼슬을 지냈던 귀산을 알아보고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감(少監)으로 삼고 무은과 함께 떠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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