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신을 얻다 1
서현이 태수로 가 있던 만노군은 본래 고구려 땅이었다.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충주)을 백제가 빼앗아 독산성(禿山城)이라 불렀는데,
다시 신라가 이를 평정하고 진흥대왕이 소경(小京)을 설치하여 국원경으로 만들었다.
만노군은 인근 국원의 곡나철산(谷那鐵山)에서 채취한 양질의 철광석을 녹여 무기로 만드는
상형로(오늘날의 제철소)가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국원에서 캐낸 철광석을 수레로 실어 날라 상형로의 가마솥에 넣고 만노군의 참숯으로
불을 때어 밤새 풀무질로 녹여내면 당대 무기 가운데 최고로 치던 저 강하고 단단한
백련철(百練鐵:백 번 단련한 철)을 얻을 수 있었다.
신라는 이 부근을 확보함으로써 국력을 크게 신장하였고,
그 국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중국과 직통하는 뱃길을 얻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국의 지경이 개 이빨처럼 얽히고설켜 고래로 국지전이 빈발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비록 백정대왕 즉위 후에는 삼국이 저마다 나라 안의 사정으로 한동안 큰 싸움이 없었지만
평상에도 상시 긴장이 감돌고 언제 어느 시기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땅이어서
신라로서는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갑인년 초입에 숙흘종의 딸 만명을 훔쳐내어 만노군 태수로 갔던 서현이 해가 지나도록
만명의 몸에 산기가 없자 이를 수상히 여겼는데, 그러구러 을묘년에 접어들고도
수삭이 흐르도록 배만 불렀지 통 아이가 나오지 않으니 구실아치로 삼아 데려갔던
성보와 자주 걱정을 토로하였다.
본래 사람이 가고 오는 것이야 하늘의 뜻이요,
경우에 따라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대개 수태한 지 열 달 전후면 아이가 나오게 마련인데 만명의 경우에는
열예닐곱 달이 넘도록 산기가 돌지 않으니 이것이 문제였다.
“내가 열한 달 만에 낳는 아이도 보았고 열두 달을 채워 낳았다는 아이도
소문으로는 들었네만 이처럼 오래 나오지 않는 아이는 처음일세.
태기 돈 지가 벌써 언젯적 일인가? 바쁜 아이 같았으면 벌써 둘이라도 나왔겠네.”
그러나 서현이 제아무리 걱정을 태산같이 해도 구실아치 성보는 그때마다
매번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비범한 아기씨가 나올 조짐이려니 하고 기다려봅시오.
설마하니 올해 안에야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태평스럽게 대꾸하였다.
서현이 공무가 끝나면 잰걸음으로 내당에 들어가서,
“어떻소? 무슨 소식이 있소?”
“아직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거참 괴이한 녀석일세. 뱃속에서 놀기는 하오?”
“놀다뿐입니까. 어찌나 태동이 극심한지 오장육부가 송두리째 뒤틀리는걸요.”
“허, 그럼 활달하다는 징후이니 안심은 되오만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할 놈이 나오지 아니하니
이거야 당최 걱정이 되어 살 수가 있어야지.”
“서방님은 저의 오장육부 뒤틀리는 것은 걱정도 안하시고 어찌 그토록 아이 생각만 하십니까?
듣자니 자못 섭섭합니다.”
“허허, 내가 그랬나……”
내외가 말질 끝에 다툼 내고 다툼 끝에 소살(笑殺)하기 일쑤였지만 날짜가 흐를수록
시름이 더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명이 손가락을 꼽아보니 몸에 아이를 실은 지 어언 한 해하고도 절반이나 더 지났음에도
별다른 조짐이 비치지 아니하여,
“혹 쌍태아를 수태한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더러 아이를 쌍으로 낳는 수도 있다 하는데,
그러면 수태 기간이 배로 걸리는 게 아닐는지요?”
하고 조심스레 서현에게 물었다.
서현도 통 아는 바가 없는지라,
“글쎄 말이오.”
하고 같이 걱정을 하다가,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용한 의원을 불러 사정이나 한번 알아봅시다.”
하고서 군에 사는 늙은 의원을 집으로 청하였다.
의원이 관아의 별채에 자리잡은 내당에 들어와 문을 격한 채로 만명의 맥을 짚어보더니,
“쌍태아도 아니고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만 열여덟 달이 지나도록까지
아이가 나오지 않는 것은 왜 그런지 저로서도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은 소인도 눈귀 달고 60해 만에 처음으로 보고 듣는 일이올시다.”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원이 보기에는 언제쯤 아이가 나올 것 같소?”
서현이 답답하여 물으니,
“소인이 맥으로 보기에는 오늘이라도 나올 듯하나 그토록 오래 아니 나왔다니
뭐라 말씀 올리기 어렵습니다.”
하며 오직 머리만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만명의 몸에 산기가 돈 것은 그로부터도 다시 두어 달도 더 지난 을묘년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성보가 밤에 천문을 보고 서현에게 와서 이르기를,
“내일에는 마님께서 귀한 옥동자를 낳으실 테니 두고 보십시오.”
하였는데, 과연 이튿날이 되자 만명이 식전부터 배를 싸쥐고 산통을 시작하여 저녁나절에서야
가까스로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공교롭게도 이날 역시 경진(庚辰)날이었다.
서현이 꼽아보니 취산에서 둘이 동침한 지 꼭 스무 달 만의 일이었다.
갓난아이는 등과 엉덩이에 걸쳐 일곱 개의 점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영락없이 북두칠성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옥동자를 얻은 서현이 크게 기뻐하며 아이의 이름을 짓느라고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내가 경진날 밤에 취산 암자에서 길몽을 꾸고 이 아이를 얻은 데다 하필이면
세상에 나온 날 또한 경진날이니 경진으로써 이름을 삼는 것이 마땅하지만
일월로써 사람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소.”
하고서,
“그런데 경(庚) 자는 유(庾) 자와 글자가 비슷하고 진(辰) 자는 신(信) 자와
그 음이 서로 가까운 데다 옛날에 현인의 이름에도 유신(庾信)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이름을 삼는 것이 어떠하오?”
하고 만명에게 물었다. 만명이,
“유신? 유신?”
하고 입 속으로 두어 번 되뇌다가 곧 환히 웃으며,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취산에서 보낸 경진날 밤이 생각나겠습니다.”
하고 좋아하였다.
서현이 성보에게도 유신이란 이름이 어떠냐고 물으니
성보도 당석에서 좋다 하므로 얼마간을 그렇게 부르며 지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장 유신을 얻다 3 회 (0) | 2014.07.19 |
---|---|
제7장 유신을 얻다 2 회 (0) | 2014.07.19 |
제6장 세 공주 11 회 (0) | 2014.07.19 |
제6장 세 공주 10 회 (0) | 2014.07.19 |
제6장 세 공주 9 회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