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6장 세 공주 1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49

제6장 세 공주 11

선화가 허신을 결심하고 옷을 벗고 눕자 서동이 짓궂은 표정으로 말하기를,

“공주가 나의 방으로 와서 이처럼 부부지연을 맺게 되니

아이들의 노랫말이 새삼 신통하지 않습니까?”

하고서,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그 모양새도 노랫말과 같이 하는 것이 어떠하오.

그래야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것이 되지 않겠소?”


하였다.

선화가 부끄러움에 못 이겨 얼굴을 붉히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응하지 아니하자 서동이 싱글벙글 웃으며 아이들의 노랫말을 입에 담은 뒤에, 


“선화 공주가 가랑이를 들치고 서동의 위에서 몸을 포갠다고 하니

이는 음양의 조화를 거꾸로 하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한사코 음상양하(陰上陽下)의 교접을 요구하므로 선화가 부끄러운 중에도 하는 수 없이

그대로 행하였다.

남자는 봉황, 기린과 같고 여자는 지초, 난초에 비유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데,

젊어 살 냄새가 진동하는 두 남녀가 이때부터 여각 객방의 한이불 속에 누워 부부의 연을 맺고

오로지 운우지락에만 열중하니 긴긴 겨울밤이 도리어 짧아서 나중에는

선화가 날이 너무 빨리 샌다고 투정을 부리기까지 하였다.

두 사람이 연 사흘 밤낮을 이렇게 보내었다.

자고로 남녀가 살을 섞은 연후의 사정이야 서로 입에 든 밥을 내어먹어도

기탄스럽지 아니한 터라 피아의 구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마치 한몸과 같이 서동의 품에 안겨 사흘을 보낸 후에 몸과 마음으로

동요의 영험함을 믿게 된 선화가 마침내 서동과 더불어 앞으로 살아갈 계책을 의논하는데,

도중에 객줏집의 밥값, 잠값을 치르느라 지니고 있던 황금 보따리를 풀자

돌연 서동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것이 무슨 물건이오?” 


“이것은 황금이란 보물인데

이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가히 백년 동안은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선화가 어찌 황금도 모를까 수상쩍게 여기며 대답했다.

이에 서동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 마를 캐던 곳에는 이처럼 번쩍거리는 흙덩이가 산처럼 쌓여 있소.”

하였다.

선화가 깜짝 놀라며, 


“이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배입니다.

지극한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다니 그곳이 어딥니까?”



하고 물었다.

서동이 그제야 입을 열고 자신의 정체와 그간의 행적을 거짓 없이 털어놓았다. 


“내 이름은 장(璋)이라고 하오.

나는 신라 사람이 아니고 백제 사람이오.

어려서 경사 부여의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오랫동안

나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르다가 다 크고 나서야 비로소 왕실의 사람임을 알았소.

그러니 나 또한 그 태생이 아주 비천한 사람은 아니오.

내가 그대의 이름을 오래전부터 부여에서 듣고 꼭 한번 만나보기를 부처님께 빌었더니

그 정성이 통하였던지 하루는 꿈에 문수동자가 나타나 아무 날 아무 시에 속리악 호재에 가면

선화 공주를 보게 될 거라고 일러주더이다.

그리하여 신라 사람의 복색으로 신분을 감추고 속리악에 가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그대를 만났던 것이오.”



“하면 금성의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도 낭군님이 지어 퍼뜨린 것입니까?”



선화가 묻자 서동이 약간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대를 보고 나니 절륜한 미색이 소문에 듣던 것보다도 훨씬 윗길이요,

저만한 미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만 있다면 하루를 살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나는 신라 사람도 아닌 백제 사람으로 어찌 뜻 하나만 가지고 남의 나라 지엄한 왕녀를

아내로 맞을 수가 있겠소?

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끝에 지난번 문수동자가 감응했던 일이 떠올라

이번에도 불사를 찾아가서 백날 치성을 드렸는데,

과연 마지막 날 밤에 한 계책을 얻었으니

바로 금성의 아이들에게 노래를 지어 퍼뜨리는 것이었소.”

서동이 말허리를 잠깐 끊었다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마를 캐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며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한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지은 노래에는 가랑이를 들친다는 따위의 가사는 없고 다만

선화 공주가 서동을 밤에 몰래 만난다는 제법 점잖은 내용이었소.

그것이 어찌하여 그대를 심하게 모욕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는지

나도 실은 그 점이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궐에서 쫓겨나 지금 이처럼 고초를 겪는 것이 따지고 보니

모두 낭군님 탓이구려?”



선화가 앵도라진 얼굴로 서동을 할겨보자 서동이 껄껄 웃으며,



“그대가 겪은 고초야 지난 사흘 동안에 모두 위로가 되지 않았소?”



하여서 제법 호기롭게 덤벼들던 선화가 그만 안색이 홍변하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이미 흘러간 과거지사요,

정분이 새록새록 솟아난 두 사람한테는 더욱이 별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선화에게는 서동 장이 자신을 연모하여 불전에 빌었을 뿐 아니라

변복까지 한 채로 신라에서 살았다는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거기 비하면 있지도 않은 일로 자신을 탄핵하여 결국에는 대궐에서 쫓겨나게까지 한

신라 조정의 말 많고 탈 많은 벼슬아치들은 떠올릴수록 원수처럼 느껴졌다.

선화에게는 신라가 비록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지만 만정이 떨어져 하루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달고 온 몸종을 금성으로 돌려보내고, 상악으로 가려던 당초의 계획을 고치어

자신 역시 남장으로 변복한 채 서동을 따라 백제로 발길을 향하니,

이들이 불과 서너 해 뒤면 백제의 29번째 임금이 되어 장장 마흔두 해 동안 보위를 이어가게 될

장왕(璋王:시호는 武王) 부처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럴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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