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6장 세 공주 5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43

제6장 세 공주 5

범이 꼬리를 감추고 나자 청년이 선화와 궁녀들이 모여선 곳으로 왔다.
 
선화가 눈빛을 반짝이며 청년의 생긴 것을 뜯어보니

위풍이 뛰어나고 지기가 호걸다울 뿐만 아니라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콧날이 오똑 선 것이 마치 뛰어난 석공이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용모가 수려했다.



“호환을 당한 분은 아니 계십니까?”



청년이 예를 갖추어 묻자 나이 많은 궁녀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괜찮지만 저 뒤에 호위하는 군사 두 사람이 화를 당해

그 중 한 사람은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생사조차 모릅니다.”



“허허, 호위하는 군사들까지 데리고 왔으면 지체 높은 집안의 낭자들이

분명한데 범이 우글거리는 호재까지는 대체 어인 일들이시오?”



“여기 이분은 왕실의 선화 공주님이시고 우리는 모다 궁에 사는 나인들이오.

공주님께서 나라의 명산 대천을 두루 유람하시는 중에 이곳 서악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 절경에 반하여 심산에 깊숙이 들어왔다가 그만 일이 여기에 이르렀소.”



궁녀의 말을 들은 청년이 깜짝 놀라 선화를 보고는,



“정말 선화 공주님이시오?”



하고 되물었다.

선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는 도령은 뉘 댁의 자제분이오?”



하고 반문하니 청년이 묻는 말에 답은 아니한 채

선화의 인물에 한동안 넋을 잃고 섰다가,



“선화 공주님의 미색 절륜한 것이 신라에서는 제일이라더니

오늘 직접 공주님을 뵈오니 천하는 물론이거니와 천상의 선녀라도 공주님께는 미치지 못하겠소.

과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우십니다.”



하고 탄복하였다.

선화가 내심 우쭐하고 기뻤으나 청년의 복색이 특이하여 신분을 짐작할 수 없는지라,

“도령은 어디에 사시는 뉘시오?”

하고 먼젓번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하였다.

청년이 대답하기를,



“지금은 호환당한 군사들을 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여기서 금성까지는 길이 아직 먼데 공주님이 호위병도 없이

그 험하고 먼 길을 어찌 무사히 갈 수 있겠소?”



말을 마치자 궁녀들에게 물어 호위장 두관이 있다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선화가 궁녀들과 더불어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기다렸으나 청년도 두관도 오지 않았다.

그러구러 긴 여름해가 서봉으로 기울고 산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청년이 혼자서

털레털레 산길을 내려오더니,



“이것이 호위장의 옷입니까?”



하고 물었다.

궁녀들이 보니 두관이 입었던 옷이 분명한데 곳곳에 범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고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선화가 그것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내가 두관의 말을 듣지 않아서 공연히 그 충성스러운 사람을 범한테 잃었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청년이 선화의 슬퍼하는 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고정하십시오. 호위장이 호환을 당하여 죽었으니 여기서 금성까지는 제가 모시겠소.”



하고는 무리를 인솔하여 호재를 내려왔다.

일행이 산자락 밑에 당도하니 겁을 내어 따라가지 아니했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이 그들을 보고는,



“따로 군사들이 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하자 선화가 깜짝 놀라 청년의 옷소매를 그러잡고 말하기를,



“비록 군사들이 있다고는 하나 저들의 절반은 처음부터 내 명에 따르지 않았던 자들이요,

나머지 절반은 범을 보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간 자들이므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미 호재에서 죽은 목숨이려니와 다행히 이름도 모르는 도령을 만나

명을 부지하게 되었으니 제발 금성까지 나를 호위해주오.

그 은혜는 반드시 보답을 하겠소.”



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청년이 빙긋이 웃으며,



“아리따운 공주께서 저를 중히 여기시고 그처럼 말씀하시니 영광입니다.

비록 살림이 궁핍하여 마 뿌리나 캐고 살던 몸이지만 기꺼이 공주님을

금성의 대궐까지 안돈히 모시겠습니다.”



쾌히 허락하므로 선화가 크게 기뻐하며 당석에서 죽은 두관의 뒤를 이어 호위장에 임명하였다.

범을 만나 곡경을 치른 후에 선화가 하릴없이 유람하려던 뜻을 통연히 고쳐 먹고

날만 새면 길을 재촉하고 해가 져도 한동안은 수레를 멈추지 아니하였다.

일행이 압독군의 공산에 당도했을 때 궁녀들이 선화에게 권하기를,



“저곳이 바로 신라의 5악 가운데 중악입니다.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으니 둘러보고 가시지요.”



하자 선화가 산은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내처 가자. 너희들은 산이 징그럽지도 않으냐?”



하며 앵도라진 낯으로 꾸짖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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