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세 공주 7
대왕이 이튿날 편전에 나가니 백관들이 모여들어 극간하기를,
“지금 선화 공주에 대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추문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날만 새면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왕실을 희롱하고 백성들은 둘만 모이면
왕실의 체통과 권위를 비웃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의 앞날이 큰 걱정이올시다.
부디 전하께서 대의를 헤아려 선화 공주를 먼 곳으로 유배시키고 나라의 흔들리는
근본과 왕실의 무너진 기강을 되살리소서.
이것만이 누란의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하는 길이요,
만일 사사로운 정 때문에 이를 미룬다면 미루는 만치 해를 입을 것입니다.”
하고 입을 모았다.
개중에 특히 심한 주장을 펴는 사람이 각간 임종과 이찬 남승이었다.
대왕이 신하들의 위로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공주를 귀양까지 보내자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용안에 가득히 고통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을 앉았다가,
“유배지를 정하여 귀양을 보내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나 사단을 가리고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때를 놓치면 어려운 법이므로 경들은 며칠만 더 기다려보라.”
하고 가까스로 백관들을 물린 뒤 곧 사람을 시켜 숙흘종을 궁으로 청하였다.
숙흘종이 왕의 부름을 받고 급히 입궐하여,
“찾아계신지요.”
하며 부복하니 대왕이 침통한 얼굴로 선화의 일을 말하고 나서,
“작은할아버지께서도 노래를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하고 물었다.
“망극합니다.”
숙흘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대왕이 그즈음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오직 숙흘종을 상대로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선화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도무지 아는 바가 없다고 하는데
그 말하는 품새가 아무리 보아도 거짓은 아닌 듯하니
이런 답답한 노릇이 천하에 다시 있겠습니까.
왜 이런 해괴하고 망측한 일이 벌어졌는지 그 까닭도 알 바가 없으나
아이들의 부질없는 노래를 가지고 굳이 선화를 귀양살이까지 보내자는
중신들의 뜻 역시 과인으로서는 바이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선화의 일을 어찌 처리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에 숙흘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또한 왕실의 사람으로 이런 말씀을 여쭙기가 되우 송구하오나
상께서 늙은 것을 청하여 특별히 물어보시니 감히 아룁니다.
그런 노래가 어찌하여 만들어졌는지는 신이 생각하기에도 의문이올시다.
하지만 그 노래로 하여 일이 예까지 이른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싶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상의 슬하에 왕통을 대물림할 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 숙흘종의 말하는 바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여,
“그 일이 지금 선화의 일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자 숙흘종이 음성을 낮추어 은밀히 답하기를,
“비록 전하의 춘추가 다음 대통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이나 이는 나라의 대사 가운데 하나로,
후사를 정하지 아니하고 제왕이 붕어하면 나랏일은 모두 중신들이 화백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하니 왕실로서는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왕이 보위에 계실 때 중신들의 뜻과 막상 왕이 붕어하신 이후 화백의 처신이
판이하게 다를 수가 있으므로 이것이 누대에 걸쳐 늘 왕실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신의 형님이신 진흥대왕께서 개국 27년 병술에 아직 심신에 아무 탈이 없었음에도
나라의 중신들을 모아놓고 상의 선친이신 동륜으로 하여금 왕태자로 삼았던 이유 또한
바로 이러한 까닭이올시다.
본래 왕통으로 말하자면 나라의 근본이 흘러가는 물길이요,
이것이 만 사람의 눈에 면경같이 보여야 부질없는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지금 왕실에 태자로 세울 적자가 없으니 대신들간에는 다음 왕통에 대하여
자연 구구한 짐작과 억측들이 난무하고 이를 틈타 만 가지 가설이 횡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하께서 끝까지 적자를 두지 않으면 누가 과연 다음의 대통을 이어받겠나이까?”
하며 대왕을 바라보았다.
대왕이 허공을 응시하고 묵묵히 앉았다가,
“덕만이 비록 여자이나 그 인품이며 자질이 과인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하자 숙흘종이 빙긋이 웃으며,
“중신들간에는 덕만의 자질을 높이 말하여 적자가 없을 경우에 여자로 대통을 잇는 것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없지 않습니다.
이 말들이 중신들 사이에서 나돈 지가 이미 오래지요.”
하고서,
“그러나 여왕으로 대통을 이은 예가 전고에 없으므로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만일에 덕만이 아니면 또 누가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글쎄요, 덕만이 아니면 천명과 선화가 있지만 굳이 선례를 따르기로 들면 결국은
나의 두 동생 가운데에서 결정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딱히 지금으로만 말하자면 백반이 제일 유력하지요.
그 다음이 국반이고, 굳이 꼽자면 전왕의 아들인 용춘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래 국반은 신의 경우처럼 왕통에는 별반 뜻이 없는 사람이요,
용춘도 비록 자질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추종하는 세력으로 보아 상의 아우인
백반의 상대는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오직 백반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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