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6장 세 공주 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42

제6장 세 공주 4

저만치 산모롱이 아래에서 깨끗하게 흰옷을 차려입은 헌걸스러운 풍채의

청년 한 사람이 그다지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일순 선화와 궁녀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허깨비가 아님을 알자

지옥의 문턱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운 심정이 되었다.



“여보세요!”



선화가 지체도 잊고 팔을 흔들며 큰 소리로 청년을 부르니

청년이 선화를 비롯한 궁녀들과 그 앞에 도사리고 있는 범을 한꺼번에 발견하고서,

 


“훠이! 훠이!”



마치 새를 쫓는 시늉으로 활개를 치며 달려왔다.

청년이 집채만한 범을 보고도 도망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을 구하러

뛰어오는 것을 본 선화가 그 기백이며 의리에 크게 감동하였으나

뒤이어 무기도 없이 범과 어찌 대적하랴 싶어 걱정이 앞섰다.

범이 뒤에서 달려오는 청년을 보고는,



“어흥!”



하고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겁을 주었지만 청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순식간에 범의 앞으로 달려온 청년이 팔소매를 둥둥 걷어붙이고,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너 따위가 나타나 행패냐?”



사람을 대하듯 호통을 치니

범이 여전히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굵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청년이 범의 대가리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오호라, 내 지난번에도 너를 이곳에서 본 적이 있으니 생면부지는 아니로다.

이눔아, 네가 나를 모르겠느냐?”



하며 알은체를 하였다.



“처자는 어디에다 두고 너 혼자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

청년이 사뭇 표정을 부드럽게 하여 묻고 일변으론 손을 범의 벌린 아가리로 가져가서

목덜미를 쓰다듬으려 하니 범이 처음에는 고개를 내저으며 경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양순한 눈빛이 되어 청년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청년이 팔로 범의 목을 껴안고 대가리를 어루만지며,



“이제야 나를 알아보겠느냐,

하하. 네 비록 미물이지만 전날의 인연을 기억하는 것이 기특하고 가상하다.”

하자 범이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청년의 손등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집채만한 범이 청년의 가슴에 고개를 들이박고 교태까지 부렸다.

사나운 범을 한순간에 괭이 다루듯 하는 청년의 재주에 선화가 그만 넋을 잃었다.

겁에 질렸던 궁녀들이 팔짝팔짝 뛰며,



“마마, 살었습니다요! 이제는 살아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요!”



하고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저 도령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금성으로 데려가서 후한 상금을 내리셔야겠습니다.”

하고 제안하니 선화가 웃는 낯으로,



“암, 여부가 있겠느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청년 가까이 달려가서 그 이목구비의 생긴 것이며

사람의 됨됨이를 세밀히 뜯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범이 있어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청년이 범과 더불어 한참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놀더니 이윽고,



“이제 너의 집으로 가거라. 훗날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자.”



하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범이 못내 아쉬운 듯이 킁킁거리며 청년의 주위를 맴돌다가 청년이 다시금,



“냉큼 가지 못하겠느냐?”



하고 고함을 지르니 청년의 얼굴을 빤히 올려본 뒤에 마지못한 듯이 걸음을 옮기는데,

그 가는 방향이 청년의 가리킨 곳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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