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6장 세 공주 2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39

제6장 세 공주 2

선화의 일행이 고성 상악을 떠난 지 수일 만에 삼년산군 서악(西岳:속리산) 근방에 당도했다.
 
삼년산군은 삼년산성이 있는 곳이요 백제와 지경이 인접한 땅으로,

자비왕 13년(470년)에 이르러 3년 역사 끝에 성을 축조하였다고 붙은 이름이다.

후에도 자비왕의 장자인 소지왕 때 일선(一善:선산) 지방에서 징발한 장정 3천 명으로

성을 개축하였고, 진흥대왕이 국원(國原:충주)을 빼앗아 소경(小京)으로 만들면서

이 지역이 나라의 요지가 되었는데, 그 분기점이 백제와 벌인 관산성 전투였다.

당시 신주의 군주로 있던 김무력이 고우도도와 더불어 백제의 성왕을 죽이고

관산성을 공취한 직후 진흥대왕이 북한산에 행차하여 강역을 개척함으로써

비로소 서해안으로 통하는 육로를 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국력이 크게 번창하였다.

국원소경은 남역에서 가장 유명한 철(鐵)의 산지여서 삼국이 저마다 탐내던 곳이었다.

게다가 서해안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으므로 지리상 왕경이 서해에서

멀리 떨어진 신라의 형편으로는 이 부근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여기에 나라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진흥대왕 이후 서해안 일부를 수중에 넣은 신라는 중국의 진(陳)나라와 사신이며

물자를 교환하는 한편 국원소경 주변에 대한 방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훗날 당(唐)나라와 교통하는 관문이자 서해안의 요지인 당성군(唐城郡:화성군)의

당은포(唐恩浦)에 이르는 길을 신라에서는 7백 리 당은포로(唐恩浦路)라고 불렀는데,

그 당은포로 7백 리가 왕도 금성에서 신라의 중악(中岳)인 압독군(대구)의 공산(公山)을 돌아

일선군과 사벌주(沙伐州:상주), 관산성을 지나고, 삼년산군과 만노군을 차례로 육행하여

당성항(당은포)까지 이르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신라에게 뺏길 수 없는 요지였다면 국경을 접한 백제로서도

당연히 되찾아야 할 요지 중의 요지였다.

이런 연유로 나제 국경이 맞닿은 국원소경 부근과 당은포로에선 건국 이래로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한창 다툼이 치열할 때는 성을 빼앗고 뺏기는 것이

조석으로 달라 하룻밤 사이에도 성루의 깃발색이 뒤바뀌곤 하였다.

국원소경을 둘러본 선화 일행이 삼년산군 속리악에 이르렀을 때

선화가 산중에 깊이 들어가려 하니 궁녀와 호위하는 군사들이 일제히 만류하기를,

“이곳은 국경에서 멀잖은 곳으로 산세가 험하고 특히 호환이 잦기로 이름난 산입니다.

오죽하면 호재라는 메가 다 있겠나이까. 하니 차라리 일선군 쪽으로 남향하여

중악이나 구경하시고 귀경하는 편이 한결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선화가 고집을 꺾지 않을 뿐더러,

“호재라구? 아니, 범이 얼마나 많으면 그런 메가 다 있지?

예까지 와서 그곳을 보지 않고 간다면 내 언제 이 먼 길을 다시 와서 구경을 하겠느냐?

입궁하면 천명 언니며 궁인들에게 할 얘깃거리도 있어야 하니 어서 그곳으로 나를 인도하라.”

하고 말하여 호위장으로 따라왔던 두관(荳官)이란 자가 기겁을 하였다.

“호재에 사는 범은 다른 짐승의 고기는 먹지 않고 유독 사람의 골육만을 탐하는데

그 까닭은 예로부터 주변에 전쟁이 극심하여 범이 사람의 고기에 입맛을 들인 탓입니다.

이쪽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호재의 범은 사람을 물고 가도 금방 죽이지 아니하고

마치 배부른 괭이가 쥐를 잡아 놀듯 여러 날을 곁에 두고 발로 희롱하여 마침내

스스로 까무러친 후에야 뜯어먹는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삼년성변에 살던 장정 세 사람이 범을 잡으러 갔다가 둘은 죽고

한 사람은 한쪽 다리를 물어뜯긴 채로 도망쳐 왔는데,

그가 눈으로 본 범만도 다섯이더라 합디다.”

두관이 공주에게 잔뜩 겁을 준 뒤에,

“군사들도 호재에 간다면 따라가지 않으려는 이가 태반일 것이니

기껏해야 10여 명의 군사로 어찌 소신이 공주님의 안위를 보장하오리까.

그저 달리는 수레 위에서 조망이나 합시오.”

하였다.

그럼에도 공주가 웃으며,

“나는 그런 곳일수록 더 재미가 나겠소.

운이 좋으면 범의 꼬리라도 볼 것이니 여러 말 말고 어서 갑시다.”

도리어 범을 만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처럼 재촉하였다.

선화가 호위병도 호위병이지만 먼발치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뒤를 쫓아오는 몇 무리의 낭도들을 믿어 조금도 겁이 없었다.

게다가 만일 범이 나타난다면 낭도들의 용맹과 기개를 시험해볼 수도 있고,

개중에 마음에 드는 짝을 구할 수도 있지 않으랴 은근히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두관이 마지못해 호위병들에게 호재 말을 꺼내자 짐작했던 대로 절반이 넘는 자들이

다투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효수를 당할지언정 그 명은 따르지 못하겠소.”

하고 거절하므로 하는 수 없이 지원하는 자만 추렸는데,

병사 스물다섯 가운데 말없이 가겠다는 자가 자신을 포함하여 고작 여덟이었다.

두관이 나머지 자들은 산자락 밑에서 기다리게 하고 공주의 거기를 호위하여 호재로 향하였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그만 길이 끊겨 수레가 더 나아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속리악 중에도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난 호재는 워낙 험준한 고봉이라

도저히 수레로 넘을 길이 아니었다.

두관이 길이 끊기는 곳에서 옳거니 하고 공주에게 다시금 되돌아갈 것을 권하니

공주가 수레에서 내리며,

“상악에서도 다리품을 팔지 않았소?

그러하고 본래 산은 걸어서 다녀와야 진적한 유람이지.”

하고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레까지 버리고 호재로 향하면서 호위장 두관의 마음이 마치 적진에 홀로 들어온 듯이나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가파른 산모롱이를 돌자 누군가가 바위에 범의 형상과 더불어 ‘호재’라고

경계하는 문구를 새겨놓은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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