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6장 세 공주 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38

제6장 세 공주 1

만명의 일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자 이번에는 신라 왕실이 공주들의 일로

또 한 차례 큰 소동에 휘말렸다.
 
본래 백정대왕과 마야 왕비 사이에는 아들은 없고 오직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는데,

장녀가 덕만(德曼)이요, 차녀는 천명(天明)이며, 막내의 이름은 선화(善花)였다.

장녀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사리에 밝고 민첩하여 어려서부터

곧잘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나이를 먹으며 차츰 불법에 심취하여 왕녀의 신분을 버리고

승려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덕만이 계축년 겨울에 이르러 이차돈의 감응으로 지은 왕도 북산 서봉의 자추사로

출가하려다가 그만 별궁 노태후의 갑작스런 서거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그 후로 백반의 처 남천(南天) 부인을 따라 법흥대왕 때 지은 고성(高城) 상악(霜岳: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란 절에 출입한 뒤로 다시금 출가하려는 뜻을 밝히니

왕과 왕비가 만시름에 잠겨 침식을 거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왕이 아무리 타일러도 덕만이 듣지 아니하고 되레 신라 왕실과 불법의 인연이 깊은 것을 말하니

왕이 크게 탄식하며 이르기를,

“자식의 일은 정말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더니 덕만을 보니 알겠다.

나의 세 딸 가운데 그 인성과 총명함으로 말하자면 덕만이 으뜸이라 늘

아들 자식처럼 여겨 가까이 두고자 하였거늘,

굳이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겠다고 저다지도 고집하니

부녀의 인연보다는 전생에 불가와 맺은 인연이 더욱 깊은 듯하구나.

일견 생각하면 법흥대왕께서 나라에 불법을 일으킨 이래로 민심이 순치되고

국력이 약동하여 이 나라 왕업이 크게 번창하였거니와,

덕만이 심신을 바쳐 불법을 봉행코자 하는 뜻도 과히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기왕 출가를 결심하였으면 크게 발심하고 치열히 정진하여 만법에 달통한 큰 부처가 되라 이르라.”

하고 마침내 출가할 것을 허락하였다.

이때가 을묘년(595년) 5월, 초여름의 일이다.

덕만이 부왕의 허락을 얻어 고성 상악의 장경봉 아래 장안사로 출가할 때

나머지 두 공주인 천명과 선화가 상악 구경이나 하겠다고 따라갔다가 천명은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내 환궁하였지만

선화는 상악의 경치에 반하여 열흘 가량을 더 절에 묵었다.

천명은 그 사람됨이 온순하고 행장과 거동에 격조와 품위가 있었으며

예를 알고 부모의 뜻을 중히 여기는 것이 능히 주위의 찬사를 받을 정도였으나,

그 아우 선화는 성품이 발랄하고 매사에 꺼리는 바가 없을 뿐더러 인물과 자태가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천명이 매양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행동거지로 세간의 흠모와 존경을 받는 몸이라면

선화는 오직 그 절륜한 미색과 요염한 자태로 사람들의 입초시에 자주 오르내렸다.

선화가 왕녀 셋 중에서도 인물이 제일 빼어났지만 나라를 통틀어서도 그만한 미색이 드물어

조정의 백관들 가운데 선화의 인물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이가 없고, 드디어는 나라 밖까지

그 소문이 알려져서 수나라 문왕(文王)의 사신이 금성에 왔을 때도,

“신라국에 선화 공주가 천하절색이라 하니 감히 청하건대 먼발치에서나마

그 미색을 뵙고 갈 수만 있다면 영광이겠나이다.”

하고 청한 일까지 있었다.

나이 많은 중신들은 대궐에서 선화가 궁녀를 거느리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종종

선 채로 넋을 잃었고, 젊은 총각들 가운데는 연정이 지나쳐서

마음의 병으로 도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본래 나라에서 말하던 미인으로는 소지왕 때 내기군(奈己郡:영주)에 살던

파로(波路)의 딸 벽화(碧花)와 진지대왕 때 사량부의 서녀 도화가 있었고,

진흥대왕 시절에도 화랑도를 만들면서 처음 원화(源花:화랑의 전신)로 받들게 했던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가 선화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선화의 신분이 원체 고귀하니 대개는 그림의 떡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고,

다만 혼기에 이른 성골 청년들이나 일부 왕족 출신의 중신들만이 따로 매작을 통하여

은근히 왕실의 의사를 물어보고는 할 따름이었다.

천성이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선화가 제 언니인 천명에게 매양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나는 이 나라 성골 청년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언니도 생각을 해보오.

여자가 일생을 함께할 천생배필을 고를 적에는 그 상대로 삼는 것이 천하의

모든 사내여야 할 텐데 어찌하여 우리 신라에서는 성골이니 진골이니 하는 것을 두어서

당최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만 짝을 찾아야 한단 말이오?

그렇다고 지금 세상에 성골 청년이 과연 몇이나 되며, 인물이 어째서 하필 성골 중에만 있겠소?

나는 차라리 평인으로 태어날 것을 그랬소. 평인이면 상대가 여북이나 많겠소?”

하고서,

“나도 만명 고모할머니처럼 내 배필을 내가 직접 나서서 구할 테니 두고 보오.

성골이 아니면 어떻고 신라 사람이 아니면 또 어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바다 밑 용궁으로 시집가서 살아도 그만이지.”

하여 천명이 웃으며,

“너의 말도 과히 틀린 데는 없다만 바다 밑 용궁에 어떤 사내가 있는지를

대궐 안에만 갇혀 사는 네가 무슨 수로 알겠니?”

자매가 서로 우스갯소리를 내곤 하였다.

선화가 상악의 장안사에 행차하여 여러 날을 묵는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나라 안의 젊은 낭도들이 국색의 자태를 구경할 양으로 수련을 핑계 삼아 상악 근방에

모여드는데, 그 숫자가 나날이 늘어나서 미구에는 산이 통째 북적거렸다.

선화가 궁녀들과 호위하는 병사 몇 명을 거느리고 이름난 절경을 돌아보노라니

여기저기에서 각기 다른 화랑의 무리가 하릴없이 고함을 지르며 말을 달리기도 하고,

활이나 칼로 저마다 무예를 뽐내며 어떻게든 시선과 관심을 끌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기에 딱하고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래도 정작 당자인 선화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우리를 옮겨가며 태연히 산천 경개를 둘러보고 이름난 곳과 풍광 좋은 곳을

두루 노닐며 궁녀들과 어울려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때는 바야흐로 한여름이라 초목 우거진 상악 일만이천 봉우리가

어느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고,

이곳을 모두 돌아보자면 열흘은커녕 백날이라도 모자랄 판국인데,

선화가 온 후로 산이 늘 북새통을 이루고 나날이 절 문이 번잡스러우니

조용히 정진하던 절에 중들이 갈수록 불평하는 소리가 높았다.

이에 장안사로 출가한 덕만이 선화를 불러,

“얘, 너는 이제 그만 환궁하는 것이 좋겠다. 어째서 진작에 천명을 따라가지 않았더냐?”

하며 나무라자 평소 큰언니 덕만을 어렵게 여기던 선화가,

“명일 아침 일찍 용소만 돌아보고 곧바로 떠나겠나이다.”

했는데, 뒷날 상악을 떠나기는 떠났으나

곧장 환궁하지 아니하고 다시금 명산 대천을 떠돌며 유람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선화가 궁녀들에게 말하기를 궁에 갇혀 사는 것이 답답한 줄을 몰랐더니

막상 바깥 세상에 나와보니 살 없는 옥살이요 지옥과 같다며 치를 떨고서,

“덕만 언니가 어째서 왕실의 영화로움을 버리고 출가를 하셨는지

이제야 그 속내를 훤히 알 것 같구나.

아, 나도 아바마마께 청하여 궐 밖에 나와 살았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비하여 내가 통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

이르는 곳마다 아리따운 얼굴에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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