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90)
제22장 일장춘몽 1회
그해 가을, 청하현내에 색다른 방문이 붙었다.
성내에는 물론이고, 성 밖에도 큰 촌락(村落)이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목에는 빠짐없이 나붙었다.
백성들은 그 방문을 보고 수군덕거렸고, 더러는 빈정거리며 웃어대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방문이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맞이하여 본 제형소에서는
홍아각(紅雅閣)에서 일할 관기(官妓)를 새로 널리 모집하고자 하니
많은 응모 있기를 바람.
첫째, 용모가 아름다워야 하고,
둘째, 십육세 이하라야 하며,
셋째, 여염집 처녀일수록 좋음. 일곱 사람을 채용하여 월 삼십냥을 주고,
기타 여러 가지로 후대할 것이니,
희망자는 ○월 ○○일 사시(巳時)에 본 제형소에 모이기를 바람.
산동제형소 전옥 서문경』
부전옥이었던 서문경이 ‘부’ 자를 떼내버리고, 이제 전옥이 되어 있었다.
무송과 내왕이의 손에 반금련을 무참하게 잃어버린 뒤로 서문경은 분노를 삭이고,
울화통을 가라앉히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다.
현상금까지 걸어서 그들을 붙잡아 들이려고 했으나, 허사로 돌아가고 나니
후일의 두려움도 쉬 가시지 않았다.
그런 불안하고 뒤숭숭한 기분을 달래고, 심기를 일진하기위해서
그는 감투를 한층 높이기로 마음먹었다.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백지사령서로 자기에게 부전옥의 감투를 씌워 주었던
이종사촌형인 동경의 양태사에게 곧 값진 예물과 많은 금화,
그리고 서찰을 보내어 전옥으로의 승진을 부탁했다.
그래서 하전옥을 딴 곳으로 밀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혀 관직의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일약 부전옥이라는 감투를 쓰더니,
일년 반도 채 못 되어 이번에는 전옥의 자리에 가볍게 뛰어오른 것이었다.
부전옥 시절에도 서문경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직무를 처리했던 터이어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감투에서 ‘부’ 자를 떼내버리고 나니 명실공히
제형소의 우두머리가 된 것 같아서 과연 심기가 개운하도록 새로워지고,
콧대가 한층 우뚝해진 느낌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
색정(色情)도 새삼스럽게 동하는 계절이어서 서문경은 전옥이된
첫 번째 사업으로 홍아각을 새롭게 단장하고,
관기를 모조리 새 얼굴로 갈아들이는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가 그런 착상(着想)을 하게 된 것은 비단 색정의 발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까닭도 있었다.
일장춘몽 2회
밤으로 집에서 자기가 어쩐지 불안했던 것이다.
서문경은 반금련이 살해당하고, 범인인 무송과 내왕이를 체포하지 못하자,
자기 집 대문에 문지기 대신 창과 칼로 무장한 관병을 배치하여 밤낮없이
두 사람씩 교대로 지키도록 조치를 했다.
그리고 집의 뒷문과 옆문을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폐문을 해버렸다.
그리고 밤으로는 자기 집 주변을 순라군이 수시로 순찰하도록 했다.
서문을 지키는 수문군에게도 무송이라고 의심이 갈만한
거구의 출입자를 검색하도록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
그러니까 그들의 재 침입에 대한 대비를 완벽하게 해놓은 셈이었다.
그런데도 서문경은 그전과 달리 밤으로 자기 집 침실에 누워 있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쉬 잠이 오지가 않았고,
잠이 들어도 이상스럽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개라도 짖을라치면 놀라 뛰어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서문경은 전옥이 되자 아예 자기의 잠자리를
홍아각으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무송과 내왕이가 침입했던 그날 밤 서문경은 왕육아의 집에서 잤었다.
남편과 동거를 하고 있는 그녀를 한집에서 데리고 자는 재미가
언제나 유별나서 서문경은 아직도 곧잘 그녀를 찾아가 외박을 하는 터였다.
용케 그날 밤 외박을 해서 화를 면했기 때문에 그는 숫제 앞으로는
늘 밖에서 자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홍아각을 마치 전옥의 관사(官舍)처럼 밤의 거처로 정하고,
집에는 낮으로 들르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 있는 관기들은 나이가 거의 모두가 스무 살을 넘었고,
얼굴뿐 아니라 몸뚱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터여서
서문경은 심기일전한 이 기회에 계집애들도 모조리 새것으로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말하자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닌가,
새로 운 여체(女體)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서문경이 그 계획을 몇몇 고위직이 부하 관원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어느 누구도 감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설사 속으로는 못마땅해도 새로 전옥이 된 서문경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겉으로는 모두가 수굿하게 찬성을 했다.
개중에는 한술 더 떠서,
“전옥 대감님, 그거 참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홍아각을 새로 단장하고, 관기를 모두 새얼굴로 바꾸면
그야말로 우리 제형소의 분위기도 활짝 밝아질 것입니다.”
하고 알랑방귀를 뀌는 작자도 있었다.
그렇게 하여 관기 모집의 방문이 현내에 널리 나붙게 된 것이었다.
일장춘몽 3회
관기를 뽑는 그날 사시가 가까워지자,
제형소의 마당에 수많은 처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용모도 가지가지였고, 맵시도 형형색색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모두가 아직 앳되어 보이고 고왔다.
첫째 용모가 아름다워야 하고,
둘째 십육세이하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제형소의 앞마당이 별안간 풋풋하고 화사한 꽃밭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일곱 사람을 채용하는데 무려 육십여명이 모였다.
관원이 나와서 정렬시켜 앉힌 다음,
선발(選拔)에 임하는데 있어서의 주의사항을 시달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한 사람씩 선발 장소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선발은 두 차례의 면접을 통해서였다.
일차는 세 사람의 고위직 관원이 면담을 해서 두 사람에 한 사람 꼴로
미리 절반은 추려내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선이었다.
예선에 통과한 처녀만 본선인 이차 면접실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전옥인 서문경 스스로가 선발관이 되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본심에서 서문경의 눈에 든 일곱 처녀만이 뽑히는 것이었다.
일차 면접을 맡은 세 관원은 한결같이 밝고 생기까지 도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늘 죄인들만 다루어 오는 터이라
그들의 얼굴은 항상 화라도 난 사람처럼 굳어져 있게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앳되고 고운 처녀들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무슨 죄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미인을 골라내는, 희한하다면 희한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방으로 들어와 세 관원이 나란히 앉아있는 앞에 와 서서
너붓이 절을 하고나면 우선 성명과 주소,
부모의 직업 따위를 물어보며 용모와 말씨를 살핀다.
용모가 눈에 들고 말씨도 분명하면 이번에는 이리저리 돌려 세우며 몸매를 훑어본다.
몸매도 괜찮게 빠졌으면 다음에는 노래를 불러 보도록 하고,
춤도 추어 보도록 시킨다.
노래와 춤은 당장 능숙한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팔다리와 허리가 낭창낭창하게 흔들려 소질이 보이면 된다.
채용한 뒤에 일정기간 관기로서의 교육을 시키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여염집에서 자란 처녀가 벌써 그런 것에 능할 턱이 없으니,
오히려 능숙하면 기방 경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꼬치꼬치 캐물어 본다.
자격의 셋째는 여염집 처녀일수록 좋음으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런 식으로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내키는대로 물어보고 시켜보고 해서
두 사람 이상이 가(可)라는 판정을 내리면 예선 통과자로 분류가 되어
본심인 이차 면접실로 보내지는 것이었다.
일장춘몽 4회
예심을 진행시켜 나가던 세 관원은 어떤 한 처녀를 두고
가부(可否)를 선뜻 결정하지 못해서 망설이게 되었다.
그 처녀는 방에 들어설 때부터 유난히 세 관원의 눈길을 끌었다.
다른 처녀들은 거의가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는데,
그 처녀는 문을 열고 방에 발을 들여놓자
대뜸 낯익은 사람들이라도 대하듯이
세 관원을 보고 방그레 미소를 떠올렸던 것이다.
세 관원 앞으로 걸어오면서 조금도 서먹서먹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밉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귀염성이 흘렀다.
용모 역시 깜찍하게 생겼으면서도 앳되어 보이고 고왔다.
그래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키가 유난히 작기 때문이었다.
난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었으나,
보통 처녀들의 어깨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키였다.
그러니까 난쟁이와 보통 사람이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처녀가 앞에 와서 서자,
한 관원이 대뜸 물었다.
“키가 왜 그렇게 작지?”
그러자 그 처녀는 대답 대신,
“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런데 그 웃는 품이 여간 귀엽지 않다.
양쪽 볼에 보조개까지 선명하게 패인다.
“왜 웃지?”
“물으시는 말씀이 우습지 뭐예요”
목소리도 말고 부드럽다.
“어째서 우스워?”
“키가 왜 작은지 제가 알 수가 있나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만들어 주신 거죠 뭐”
“그럼 아버지 어머니도 작은 모양이지?”
그 질문에 처녀는 좀 망설이는 듯 하더니,
“그렇지 않아요.
두 분 다 보통 키는 된다구요”
하고 분명한 말씨로 대답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보통 키는 되는데,
왜 딸은 저렇게 작게 만들었을까? 그거 참 이상한데···”
“하하하···”
처녀는 또 귀엽게 웃는다.
“아마 아버지 어머니가 만들 때 실수를 했던 모양이지? 그렇지?”
“예, 그런가봐요”
“허허허··· 좋아, 그건 그렇고, 이름이 뭐냐?”
“국주(菊朱)예요. 국화 국자, 붉을 주자”
“성은?”
“화(華)씨구요”
“화국주라··· 나이는?”
“열여섯 살이에요”
일장춘몽 5회
“사는 데는 어디야?”
“도화촌(桃花村)이에요”
“아, 도화촌··· 복숭아밭이 많은 곳 말이구나”
“예, 맞아요. 우리 동네를 아시는 모양이죠?”
“응, 가본일이 있지, 아버지는 뭘 하나?”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국주는 머뭇거리다가 정신을 가다듬듯
재빨리 분명한 말씨로 대답한다.
“농사를 지어요. 복숭아밭도 있고요”
“농사도 짓고, 복숭아밭도 있다··· 그럼 부자겠는데···”
“예, 부자예요. 마을에서는 제일 부자죠”
그러자 다른 관원이 불쑥 묻는다.
“집이 부잔데, 뭣 때문에 관기가 되려고 하는거지? 이상한데···”
국주는 당황한다.
허를 찔린 듯 얼굴까지 살짝 붉어진다.
그러나 깜찍하게 생긴 그녀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으며 변명을 하듯 늘어놓는다.
“아버지가 아파서 누워 계시지 뭐예요.
벌써 여러 달이 되셨다구요.
그래서 제가 돈을 벌어서 아버지 약을 지어 드릴려구요”
“부잔데, 네가 돈을 벌지 않아도 얼마든지 약을 지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나릿님,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집에 있는 돈으로 지은 약과 딸이 벌어서 지은 약은 다르다구요.
정성이 깃든 약이 훨씬 효험이 있을 거 아니겠어요.
우리 아버지의 병은 중병이란 말이에요.
어쩌면 마지막이 되실지도 모른다구요.
딸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저도 효도를 한번 해보고 싶지 뭐예요.
혹시 제 정성이 통해서 아버지의 병이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지원을 한 거라구요”
“음- 그래?”
관원은 기특한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두 관원도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국주의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부잣집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낙방을 할까봐 머릿속에서 재빨리 꾸며낸 말이었다.
그 말을 곧이 들은 관원들은 더 묻는 일은 그만두고,
그녀를 옆으로 뒤로 돌려 세워보고 나서 노래를 시켰다.
그녀는 노래도 제법 간드러지게 잘 뽑았다.
“노래도 소질이 있군. 어디 이번에는 춤을 한번 추어보라구”
“예”
국주는 조금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풀나풀 가볍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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