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69)
백사자 21회
“직접 보지는 못하셨다면서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말이야,
내가 반금련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침상 밑에 숨었던 고양이가 기어 나와
글쎄 반금련의 치마를 들추고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뭐야”
“어머나. 히히히...”
“그것만 봐도 뻔하잖아. 늘 둘이서 그 짓을 하고 있는 거라구”
“아이 망측해”
“춘매야”
“예?”
“네가 말이야 한 번 살펴보라구.
정말 그 짓을 하는 게 틀림없다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어.
더러워서 어디 그런 여자를 집안에...”
“어머나, 그럼 내쫓으시겠다는 거예요?”
“글쎄,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고서... 좌우간 구역질이 난다구.
고양이하고 그런 짓을 하는 여자를 마누라라고 데리고 살수가 있겠느냐 말이야.
안 그래?
“그러시면서 왜 저한테도 고양이를 기르라고 하셨어요?”
“농담으로 한 소리지”
서문경은 춘매의 방방한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손을 그녀의 아랫도리 깊숙한 곳으로 옮긴다.
“아-”
손이 와닿는데도 벌써 춘매는 나직한 교성을 흘린다.
“한번 잘 살펴보라구. 실제 고양이와 어떤 짓을 하는지”
“예”
“자, 그럼 나도 벗어볼까”
“제가 벗겨 드릴께요”
“그래”
춘매는 발딱 일어나 앉아 벌써부터 숨까지 좀 가쁘게 몰아쉬며
서문경의 내의를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한다.
이튿날 새벽 일찍 서문경의 침실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온
춘매는 기분이 마냥 유쾌하기만 했다.
오래간만에 간밤에 두 차례나 화끈하게 서문경한테 귀여움을 받아서
몸이 묘하게 홀가분할 뿐 아니라,
반금련과 고양이의 관계를 살피라는 비밀 지시까지 받은 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어서 춘매는 다시 침상의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누워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금련과 고양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것은 춘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처음 그런 장면을 목격했던 그날 밤 침실에 불이 켜져 있질 않아서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으로 어렴풋이 봤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반금련은 반듯이 누워 있었고, 아랫도리에 고양이가 희끗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백사자 22회
그때 ‘어머나’ 하고 놀라질 않고서 가만히 눈여겨 훔쳐봤더라면
고양이와 뭘 어떻게 하든지 분명한 것을 알 수가 있었을 것이다.
춘매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망설여졌다.
서문경의 지시대로 은밀히 살펴서 사실대로 보고를 할 것인지,
아니면 반금련 마님을 생각해서 귀띔을 해줄 것인지...
만약 은밀히 살핀 결과가 실제로 고양이와 살을 섞는 그런 망측한 짓이라면
그 보고를 들은 서문경이 결코 반금련을 가만히 그대로 둘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쫓아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마님의 신세가 너무나 가련하지 않은가.
그런 동정의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고양이와 도대체 어떤 행위를 하는지
확실한 것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짓궃은 호기심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가 춘매는 살풋 또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떴을 때는 창문에 햇빛이 눈부셨다.
“어머나”
늦잠을 잔 것 같아 약간 놀라며 뛰어 일어난 춘매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대충 손으로 쓰다듬으며 거실로 나갔다.
반금련 마님이 혼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마치 심한 몸살이라도 앓고 난 사람처럼 하룻밤 사이에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아마도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았다.
“마님, 미안해요. 늦게 일어나서...”
춘매가 탁자 쪽으로 다가가자 반금련은,
“괜찮아”
힘없이 말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그런 웃음이었다.
춘매는 속으로 아, 싶었다.
분명히 마님이 간밤에 자기가 서문경에게 이끌려가서 자고 온 줄을 알 터인데,
조금도 언짢아하거나 얄미워하는 기색이 보이질 않고,
오히려 마님 자신의 어젯밤의 일이 부끄럽고 창피한 듯이 그런 표정이 아닌가.
탁자 쪽으로 다가간 춘매는,
“마님, 어디 아프세요?”
하고 진정이 밴 그런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
“그런데 얼굴이 무척...”
“잠을 깊이 못 자서 그래”
그러면서 다시 반금련은 춘매를 향해 쓸쓸하게 웃는다.
마치 실연을 하여 실의에 빠진 사람의 자조적인 웃음 같다.
백사자 23회
“마님”
“응?”
“간밤에 말이에요, 대감 어른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반금련은 약간 긴장이 되는 듯 입에 가져갔던 찻잔을 얼른 탁자에 놓고 가만히 춘매를 바라본다.
“저... 저한테 마님을 살피라지 뭐예요. 고양이하고 어떤 짓을 하는가”
“그래? 치사한 놈, 언제나 하는 짓이 그 모양이라구. 남자가 좀 정정당당하질 못하고,
누굴 시켜서 뒷구멍에서 살피도록이나 하고... 그래, 살펴서 어쩌겠다는 거야?”
“마님,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만약 고양이와 정말 그런 짓을 한다면 가만히 안 놓아둔다는 거예요”
“어젯밤에 발길로 걷어찼으면 됐지, 또 뭘 어쩌단 말이야?”
“발길로 차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여자를 마누라라고 데리고 살 수가 없다지 뭐예요”
“뭐라구? 데리고 살 수 없다구?”
“예”
반금련은 그만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다.
잠시 앞에 놓인 찻잔의 옆구리에 그려진 모란꽃 무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춘매야”
하면서 곁에 서있는 그녀의 한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는다.
“날 좀 도와줘”
“마님, 그러잖아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해드리는 거죠”
“아이 고마워. 정말 고맙다구. 그 대신 말이야 내가 돈을 듬뿍 줄게”
반금련은 곧바로 일어나 침실로 가서 장롱 깊숙이 넣어둔 돈주머니를 꺼내어
아가리를 벌리고서 손에 집히는 대로 한 웅큼 집어내어 가지고 온다.
그것을 탁자 위에 주르르 쏟아놓으며 말한다.
“이거 다 가져”
“어머나”
춘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걸 다 갖고 말이야 서문경이한테 그저 고양이를 껴안고 자기만 하더라고 말해줘. 알겠지?”
“그러면 대감 어른이 곧이 안 들을 텐데요.
마님의 치마 속으로 고양이가 기어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시던데...”
“그러면 말이야 이렇게 말해.
고양이가 혓바닥으로 내 아랫도리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어요”
춘매는 탁자 위의 돈을 한 닢 한 닢 집으면서 살짝 미소를 짓는다.
사흘 뒤 해질 무렵에 춘매는 퇴청해온 서문경이 자기의 거실에
혼자 있는 기회를 잡아서 찾아들어갔다.
“춘매가 웬 일이지?”
뜻밖에도 서문경은 이렇게 말했다.
백사자 24회
“어머, 대감 어른, 제가 왜 찾아왔는지 모르시겠어요?”
“글쎄...”
“호호호... 며칠 전 밤에 저한테 무슨 분부를 내리셨는지 벌써 잊으셨나요?”
“아, 알겠어. 참 그랬었지”
그제야 생각이 나는 듯 서문경은 싱그레 웃는다.
그만큼 그는 매사가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대로고,
또 집안일 바깥일이 뒤섞여 늘 머리 속이 뒤숭숭한 나날이기도 한 것이다.
“제가 잘 살펴봤다구요”
“그랬더니?”
“고양이를 그냥 껴안고 자던데요”
“그것뿐이야?”
“그러다가 한번은 아랫도리를 고양이에게 내맡기더라구요.
그러니까 고양이가 혓바닥으로...”
“혓바닥으로?”
“예. 히히히...”
춘매는 킬킬 웃음이 나온다.
“그렇구먼. 고양이의 혓바닥이 사람의 혓바닥보다 좋은 모양이지”
“외로우니까 그러시겠죠 뭐”
“외롭다고 고양이한테 아랫도리를 내맡기다니... 더러운 여자라구. 알았어”
“대감 어른”
“응?”
“우리 마님을 이제 용서해 주시는 거죠?”
“도리가 없지 뭐. 만약 고양이하고 그 짓을 했다면 가만히 안두지만,
고양이의 혓바닥을 이용했을 뿐이니까 눈감아 줄 수밖에. 안 그래?”
“예, 대감 어른, 정말 고맙습니다”
춘매는 마치 자기가 용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좋아서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한다.
그리고 얼른 돌아서서 거실을 나간다.
춘매가 서문경을 찾아간 줄을 아는 터이라
반금련은 혼자서 거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춘매가 돌아오자 약간 주기가 도는 시선으로 가만히 그녀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본다.
“마님, 아무 걱정 마시라구요. 잘됐어요”
"뭐라고 해?“
“고양이의 혓바닥을 이용했을 뿐이니까 눈감아 주신다고 했어요.
도리 없지 뭐, 그러시더라구요”
“휴유-”
반금련은 이제 살았다는 듯이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쉰다.
그리고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그 잔을 춘매에게 내민다.
백사자 25회
“자, 이리 와 앉아. 우리 둘이서 오늘 저녁에 한 잔 하자구.
취해서 혀가 꼬부라지도록 말이야”
“하하하...”
춘매는 기분이 좋아서 웃으며 그 잔을 받는다.
그리고 의자에 궁둥이를 내려 반금련과 동석을 한다.
마님과 몸종이 한 탁자에서 단둘이 잔을 주고받으며 술을 마시다니,
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반금련은 이번 일이 충격적이었고,
무사히 결말이 나자 춘매가 더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춘매는 아직 술이 약했다.
두 잔을 마시자 눈 언저리가 발그레 복사꽃처럼 피어올랐다.
한결 윤기가 도는 듯한 두 눈을 반질거리면서 서슴없이 입을 연다.
“마님, 고양이하고 연애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좋지, 색다른 맛이 있다구”
반금련도 주기가 꽤나 오른 터이라 조금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예사로 대답한다.
“어떻게 하는데요? 연애를...”
“연애를 어떻게 하다니, 그걸 모른단 말이야? 그런 춘매는 아직 숫처녀란 말인가?”
“그럼 진짜로 남자와 관계를 하듯이 고양이와 그런단 말이에요?”
구체적으로 묻자 반금련은 좀 난처한 듯 대답을 안한다.
“고양이와 사람이 그렇게 될까...”
춘매는 미심쩍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그러자 반금련은 술잔을 들어 홀짝 한 모금 마시고는 상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때, 춘매도 한번 고양이하고 자보겠어? 오늘밤에 말이야, 내가 백사자를 빌려줄테니까”
이번에는 춘매가 대답을 안 한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런 표정으로 망설인다.
“데리고 자보면 고양이와의 연애가 어떤 것인지 알 게 아니겠어”
“...”
“생각이 있어. 없어?”
“글쎄요...”
“글쎄요라니,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거지.
좋아,, 빌려주지, 한 번 같이 자보라구. 기분이 어떤가”
그날 밤 이슥해서 반금련은 고양이를 춘매의 방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자기는 방문에 살짝 붙어 서서 안을 엿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야웅야웅... 하고 칭얼거리는 듯한 소리만이 들리다가 조금 뒤에는,
“아이구 가만 있어. 급하기도 하네. 옷을 벗어야 할 게 아니야”
하는 춘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반금련은 바짝 귀를 곤두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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