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68)
백사자 16회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고양이가 우는데 뭐가 어때서요?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건 당신도 아시잖아요”
“고양이가 울어도 글쎄 보통으로 우는 게 아니라, 이상스럽게 울더라 그거야”
“호호호... 이상스럽게 울다니 뭐 어떻게요?”
“낑낑 앓는 소리 같더라 그거야”
“하하하 하하하...”
반금련은 웃음소리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서문경은 좀 머쓱해진다.
자기가 잘못 들었던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였던 게 틀림없어서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시치미 떼지 말라구. 그렇게 시치밀 뗀다고 누가 모를 줄 알아”
“뭘 말이에요?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요”
“당신 숨소리도 이상하게 들렸단 말이야. 신음하는 소리가 틀림없었다니까”
“아니 여보, 그럼 내가 고양이하고 무슨 짓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뭐예요?”
“그렇다구. 고양이하고 붙은 게 틀림없어. 틀림없이 그런 소리였지 뭐야. 그래도 잡아뗄 거야?”
“나 참 기가막혀서... 고양이하고 붙는 여자도 있나요?”
“......”
“당신 도대체 날 뭘로 생각하고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시는 거예요?
내가 고양이하고 그런 짓이나 하는 여자로 밖에 안 보여요?”
반금련은 발칵 화까지 낸다.
“음-”
서문경은 또 좀 머쓱해진다. 자기 생각이 너무 지나쳤는가 싶기도 하다.
“고양이가 여기서 운 것만은 틀림없잖아”
“예, 난 외로워서 언제나 고양이하고 같이 지낸다구요. 낮이나 밤이나...”
“고양이하고 같이 지내면 안 외로운가?”
“덜 외롭죠. 당신이 날 안 찾아오시니까 그렇게라도 해야죠”
“그러니까 고양이하고 연애를 한다 그거 아니야?”
“서로 기가 막히게 정이 통하니까 연애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런가. 허허허...”
서문경은 그만 웃음이 나와 버린다.
“그런데 고양이는 어딜 갔지? 당신 애인 말이야”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침상 밑을 들여다본다.
두 개의 파아란 빛이 침상 밑의 어둠 속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백사자 17회
“저기 있군. 당신 애인”
“호호호...”
그만 반금련도 다시 웃음이 나온다.
“이리 나와. 왜 숨었지? 연애하다가 들켜서 숨었나? 괜찮다구.
서로 정이 통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뭐. 이리 나오라니까”
고양이는 마치 서문경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기어 나온다.
온몸이 온통 백설처럼 하얀 털에 뒤덮인, 어지간한 개만한 고양이를 서문경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본다.
그전에 봤을 때는 그저 예사롭게 여겼는데, 낑낑거리는 듯한 묘한 웃음소리를 들은 터이라
아무래도 이놈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같이 여겨진다.
서문경과 눈길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야웅 야웅-”
하면서 마치 샘이라도 난 것처럼 얼른 반금련에게로 다가가 서있는
그녀의 치마 밑으로 대가리를 들이민다.
그리고 그녀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깊숙한 곳을 향해 벌떡 일어선다.
“어마야- 왜 이러는 거야! 미쳤어?”
반금련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사정없이 차버린다.
여느 때 같았으면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사르르 눈이라도 감았을 터이지만,
서문경이 보고 있는 앞이어서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놀라고 있는 것이다.
반금련의 발길에 걷어차인 고양이는 냅다 비명을 지르며 후닥닥 거실로 도망쳐 나가버린다.
그 광경을 본 서문경은 아무래도 고양이와 반금련이가
그냥 정만 통해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재빨리 달려들어 그녀의 치마를 훌렁 걷어붙여 본다.
걷혀 올라간 치마 밑으로 내의를 모조리 벗어버려 알몸이 되어있는
그녀의 아랫도리가 드러난다.
“어머나! 왜 이래요? 미쳤어요?”
반금련은 냅다 쏘아붙이며 후닥닥 치마를 내린다.
얼굴이 발그레 물들어 있다.
“뭐 미쳐? 미친 게 누군데...응?”
그만 서문경은 냅다 반금련의 따귀를 한 대 갈겨 버린다..
“아이고!”
반금련이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서문경은 이번에는 냅다 발길로 그녀의 아랫도리를 걷어찬다.
“으악-”
두어 걸음 뒤로 비칠거리다가 그만 벌렁 넘어진다.
“더러운 년, 고양이하고 붙다니... 넌 인제 고양이하고나 살란 말이야”
서문경은 서슴없이 내뱉고는 성큼성큼 침실에서 나간다.
곧바로 자기 거처로 갈까 하다가 문득 춘매 생각이 나서
그녀의 방문을 가서 연다.
춘매가 놀라 침상에서 뛰어 일어난다.
백사자 18회
“어머나, 대감 어른”
“자고 있었나?”
“아니요, 잠들려던 참이었어요”
“가자, 내 방으로. 오늘밤엔 너하고 자고 싶다”
“어머, 좋아라”
춘매는 이게 웬 일이냐는 듯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서문경은 근래에는 이병아와 바깥에 있는 왕육아만을 상대할 뿐
다른 다섯 마누라들한테도 잘 안가는 터이어서 춘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춘매를 데리고 자기 거처로 간 서문경은 밤이 깊었지만 우선 술을 몇 잔 마셨다.
오늘은 관가가 아픈 바람에 바깥에서 술을 마시는 일 없이 퇴청을 하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두어 잔 했을 뿐이었다.
술을 춘매에게도 조금 먹이고서 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서 서문경은 춘매의 옷을 하나하나 아랫내의까지 모조리 벗겨냈다.
그리고 자기는 내의를 입은 채 그녀의 알몸을 안았다.
슬슬 등을 어루만지고, 앞가슴을 주무르면서 서문경은 입을 연다.
“춘매야, 얼마만이지?”
“글쎄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나지 뭐예요”
“그랬던가? 허허허...”
“대감 어른을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정말이야?”
“정말이고 말고요”
“좋아하는 사내가 없는 모양이지?”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대감어른을 두고 제가 달리 누굴 좋아한단 말이에요. 말도 안돼요”
“그래? 음-”
서문경은 입을 춘매의 한쪽 귀로 가져가 귓불을 자근자근 부드럽게 씹는다.
잠시 그러고나서 또 입을 연다.
“춘매야”
“예?”
“너도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지 그래”
“고양일요? 뭘 하게요?”
“고양이를 키우면 외롭지가 않다던데...”
“누가 그래요?”
“네 주인이...”
“반금련 마님이요?”
“그래”
“그래서 마님이 늘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구나”
“안고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밤으로는 같이 자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같이 잔다구요?”
“그래, 이렇게 내가 너를 안고 자듯이 말이야”
백사자 19회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히히히...”
춘매는 놀란다. 그러면서도 킬킬 웃는다.
그녀가 그런 사실을 모를 턱이 없는 것이다.
방은 따로지만, 같은 거처에서 늘 시중을 들고 있는 터이니
반금련의 일상사를 춘매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년 늦은 봄에 반금련이 온몸의 털이 하얀 고양이를 한 마리 사가지고 와서
기르기 시작했을 때 춘매는 그저 취미로 그러는가보다 하고 예사롭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시도 고양이를 멀리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집안에서는 어딜 가나 안고 다니는 터이라
별안간 고양이를 무척도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밤 침실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의 낑낑거리는 소리와 반금련의 신음소리였다.
잠이 들려온 춘매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소리가 하도 이상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가 거실을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어서 침실로 다가가 보았다.
침실에 불은 꺼졌으나,
마침 달이 좋은 밤이라 창문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어서
방안의 광경을 어렴풋이 볼 수가 있었다.
“어머나”
그만 춘매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놀라는 소리가 뛰어나와 버렸다.
“누구야? 춘매냐?”
반금련의 목소리였다.
춘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보아서는 안 될 광경을 본 터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후닥닥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돌아가 침상의 이부자리 속으로 뚝 파묻혀 버렸다.
잠시 후에 반금련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춘매야, 일어나봐, 잠든 체하지 말고...”
그 말에 춘매는 도리 없이 이불을 들추고 부스스 일어났다.
“불을 켜”
춘매는 침상에서 내려와 방에 불을 켰다.
그런데 뜻밖에도 불빛에 비친 반금련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그제야 춘매는 입을 열었다.
“마님, 미안해요”
“미안할 것 없다구. 그 대신 말이야,
춘매가 입을 다물어주면 되는 거라구.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고 말고요”
“집안에 소문이 나면 창피하단 말이야.
고양이하고 연애를 한다면 모두 이상한 눈으로 볼 게 아니겠어.
그러니까 부디 입을 다물어줘. 알겠지?”
백사자 20회
“예, 염려 마세요. 마님”
“그 대신 말이야...자, 이거 받아”
“어머”
“입을 다물어 주는 대가라구”
반금련은 은화 한 닢을 춘매에게 내밀었다.
춘매는 마지 못하는 듯 그것을 받으면서도 아닌 밤중에 이게 왠 횡재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언제 왔는지 고양이가 반금련의 곁에 서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야웅 야웅-”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춘매는 반금련의 침실에서 밤으로 고양이와 사람의 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와도 일어나질 않고 이부자리 속에서 귀를 그쪽으로 곤두세워
그 소리를 들으며 공연히 혼자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하고 휴유- 나직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듣기가 몹시 거북하고 못마땅하기까지 한 듯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미쳤어, 미쳐. 아이구 망측해. 아이구 아이구”
하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을 알게 된 터이라 춘매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으나
은화를 받고서 약속을 한 터이라 끝내 그 비밀을 입 밖에 내질 않았다.
서문경은 한손을 춘매의 피둥피둥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있는 방방한 엉덩이로
가져가 슬슬 어루만지며 말한다.
“재미있는 모양이지? 웃는 게...”
“희한한 일이잖아요. 마님이 고양이하고 같이 자다니...”
“그런 줄을 정말 몰랐나? 한 거처에 살면서...”
“몰랐어요”
춘매는 딱 자르듯이 대답한다.
“밤으로 더러 침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텐데...”
“못 들었다구요. 제가 잠든 다음에 그랬는진 모르지만...”
“아까 내가 침실에서 반금련을 나무라준 것도 몰랐단 말이야?”
“자다가 그 소리에 깼지 뭐예요”
“더러운 여자라구. 고양이하고 연애를 하다니...”
“대감어른, 그럼 우리 마님이 고양이하고 그 짓을 했다는 말이에요?
고양이하고 사람이 그렇게 되나요?”
“글쎄, 나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거든.
내가 침실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고양이는 침상 밑으로 숨은 뒤였고
반금련도 놀라서 침상에 일어나 앉아 있었으니까”
“설마 마님이 고양이하고 그 짓이야 했겠어요”
“아니야, 둘이서 늘 그러는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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