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66) 백사자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18:31

 

금병매 (166)

 

 

백사자 6회 

 

 

 

 이병아의 거처 쪽이었다.

 

관가의 울음소리에 틀림없었다.

 

반금련은 관가가 왜 저렇게 울고 있는가 싶어서 그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이병아의 거처는 새로 증축을 한 뒤 한동안은 별채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다.

 

 




서문경이 그곳으로 오가기가 불편해서 회랑을 거기까지 이어놓아

지금은 신을 신지 않고도 오갈 수가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뜻밖에도 관가가 혼자서 자다가 깬 듯 침상의 포대기 위에 앉아 울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우리 관가가 혼자 있구나. 모두 어디 갔지?”

반금련은 약간 놀라며 안고 있던 고양이를 얼른 방바닥에 내려놓고

침상으로 다가가 대신 관가를 안는다.

그런데도 관가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울지 말어. 관가야 나 몰라? 나 큰엄마라구. 큰엄마가 안아주는데 울다니...”

반금련이 얼러대자 관가는 잠시 울음을 그치고 눈물이 흥건한 까만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울기 시작한다.

돌이 멀지 않은 관가는 이제 사람을 곧잘 알아보는 듯하다.

“아이고 관가야, 참 고운 옷을 입었네.

이렇게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울다니... 울지 말라니까”

반금련은 관가가 입고 있는 진홍색 담으로 지은 아기 옷을 정말 곱다는 듯이

눈여겨 들여다본다.

그녀의 곁에 서있는 고양이도 그 빨간 옷이 눈에 인상적으로 비쳐 들어오는 듯

유난히 두 눈을 반질거리며 빤히 쳐다본다.

이병아가 관가에게 그런 진홍색 담으로 옷을 지어 입힌 것은 무당의 말을 듣고서였다.

이병아는 자기의 귀한 아들일 뿐 아니라,

서문가의 대를 이을 유일한 사내아이인 관가가 아무쪼록 병 없이 잘 자라도록

한 달에 두 차례 초하루와 보름이면 으레 단골무당을 찾아가 축원 드리기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겨울이 가까워지는 지난달 초하루에 찾아갔을 때 무당이,

“아기에게 붉은 빛깔의 옷을 지어 입히도록 하는 게 좋겠수”

하고 말했던 것이다.

“왜요?”

“다가오는 겨울에 아무래도 아기에게 마귀가 근접할 조짐이 보이니,

액막이로 붉은 옷을 입히는 거라우.

붉은 빛깔을 보면 마귀도 겁이 나서 근접을 못하는 법이거든요”

그 말을 들은 이병아는 그날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저자 거리를 찾아가

진홍색 담을 떠가지고 와서 아기의 옷을 지었던 것이다.

 

 

백사자 7회 

 

 

 

 얼러도 그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관가를 안고 반금련은 내실에서 복도로 나갔다.

 

도대체 아기를 혼자 재워놓고 모두 어디로 갔는지 집안이 호젓하기만 하다.

유모인 여의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어 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유모란 노상 아기 곁에 붙어 있어야 할 터인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기 어미인 이병아도 춭타를 한 듯 안 보이고, 수춘이도 자기 방에 없었다.

 

 

 




“모두 어디 갔지? 이거 야단났네”

반금련은 좀 큰소리로 투덜거리듯 내뱉는다.

고양이가 울어대는 아기를 향해 저도 짜증이 나는 듯,

“야옹 야옹-”

하고 소리를 지른다.

“백사자야, 가만있어. 너까지 그러면 더 신경질이 난다구”

반금련은 고양이를 나무라듯 뇌까리고는 도리없다는 듯이

우는 관가를 안고 집안에서 바깥으로 나간다.

자기 방으로라도 일단 데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자 아기는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

그 대신 깜짝 놀라듯이 눈물에 젖은 까만 두 눈을 반짝 뜨며 바르르 떤다.

추웠던 것이다.

별안간 찬 공기가 얼굴과 목을 휘감자 관가는 온몸을 바짝 오그리며

반금련의 품안으로 파고든다.

우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제 딴엔 놀라고 있다.

어린 관가의 그런 모습이 반금련은 귀여우면서도 한편 재미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한번 가지고 놀아보고 싶어진다.

며칠 전에 쏟아진 눈이 녹지 않고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경치가 산뜻하고

눈부시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관가야, 너 아직 눈이 뭔지 모르지? 자, 보라구. 저게 눈이라는 거야. 어때? 좋지?”

그러면서 반금련은 가슴에 품었던 관가를 바깥쪽으로 돌려 안아 눈을 보도록 한다.

아기가 눈이 뭔지 알 턱이 없다. 추워서 바르르 떨다가 새파랗게 굳어들며 다시,

“앙- 아응 아응-”

마구 악을 쓰듯 울기 시작한다.

“아니, 왜 또 울어? 방금 울음을 그쳐놓고...”

“아응 아응 앙 아앙-”

“저거 보라구. 저거, 저 눈. 하얀 눈. 얼마나 좋아. 자, 보라니까”

반금련은 그만 관가를 눈 위로 내던지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바짝 가까이 가져간다.

그럴수록 관가는 더욱 놀라고 추워서 찢어질 듯이 울어 제낀다.

 

 

백사자 8회 

 

 

 

 그때 유모인 여의가 정원으로 들어서며,

“어머나”

 

 




깜짝 놀란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관가가 깬 것도 당황할 일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반금련 마님이 관가를 안고서 이 추운 날씨에 바깥에 나와 어르고 있다니,

 너무나 뜻밖이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달려온 여의는,

“아이고 마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하고 미안한 듯이 묻는다.

“어떻게 된 일은 어떻게 된 일이야. 관가가 깨어서 혼자 울고 있잖아.

아기를 혼자 두고 어디를 갔다 오는 거지?”

반금련은 살짝 눈까지 흘기며 나무라듯 말한다.

“저... 배가 살살 좀 아파서 약국에 약을 얻으러 갔어요.

그동안에 깬 모양이죠. 잠들면 꽤 오래 자는데...”

“어서 받으라구”

“예”

여의가 받아 안자,

관가는 뚝 울음을 그친다.

그러자 반금련은 괘씸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관가를 바라보며 혼자말처럼 지껄인다.

“어머나, 사람을 알아보네.

나는 안고 아무리 얼러도 울음을 안 그치더니... 요 못된 녀석 같으니라구”

“사람을 알아 보고 말고요.

다음 달이 돌인데 사람도 못 알아보면 병신이지요”

“그런가...”

“아이고 아기가 추워서 새파랗네.

마님, 이 추운 날씨에 왜 밖으로 아기를 안고 나오셨어요?”

그 말에 그만 반금련은 여의를 매섭게 쏘아보며 내뱉는다.

“뭐라구? 집안에서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기가 울음을 안 그치잖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래서 우선 내 방으로라도 데리고 가려 했다구.

왜?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요,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라...

아기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해서 한 말이에요”

“아기를 혼자 놔두고 집을 비운 게 잘못이지. 아기 에미는 어딜 갔어?”

“마님은 오늘 무당한테 가셨어요. 오늘이 보름이잖아요.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은 수춘이를 데리고 무당한테 가서 축원을 드리시지 뭐예요”

“무슨 축원?”

“관가가 병 없이 잘 크라고 말이에요”

“흥!”

반금련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코방귀를 뀐다.

그리고 얼른 곁에 서있는 고양이를 안아 올려 품안에 끌어안으며

종종걸음으로 자기 거처로 향한다.

 

 

백사자 9회 

 

 

 

 여의는 반금련의 뒷모습을 향해 힐끗 눈을 흘긴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은 것이다.

 

관가가 아무 병 없이 잘 자라라고 축원을 드린다는데 흥!

 

하고 코방귀를 뀔 게 뭔가 말이다.

“어쩌면 저 여자가 일부러...”

 

 




여의는 입속말로 중얼거린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까 우선 자기의 방으로라도 데리고 가려고 했다지만,

그렇다면 뭣 때문에 이 추운 날씨에 회랑을 통해서 속히 가질 않고,

정원에서 눈을 향해 아기를 내던질 듯이 가지고 놀았는가.

그게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하는 어른 짓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그 심보가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품안에 꼭 품고 있는데도 관가가 추운 듯 꼼지락거리며 칭얼대자 여의는,

“마님한테 일러바쳐야지”

나직이 내뱉고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간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자기 거처로 돌아가는 반금련은 심사가 몹시 지랄 같았다.

아들 하나 낳았다고 초하루와 보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무당한테 축원을 드리러 가다니,

 더럽고 아니 꼬왔다.

이병아가 못마땅할 뿐 아니라,

이 추운 날씨에 관가를 밖으로 안고 나왔다고 대놓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한 유모란 년까지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제까짓 게 뭔데 감히 누구한테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느냐 말이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다란 말인가.

혼자서 울고 있는 관가를 달래려고 했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서...

그년이 속으로 사람을 깔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싶으며,

“어디 이년 두고 보자”

하고 반금련은 중얼거린다.

속이 뒤틀리고 배배 꼬여서 견딜 수가 없는 듯 몇 걸음 가다가는

또 그만 눈초리까지 바르르 떨면서,

“관간가 뭔가 고놈의 새끼 감기나 되게 걸려서 칵 뒈져 버려라”

하고 내뱉는다.

그리고 냅다 침까지 한 번 퉤! 하고 눈 위에 뱉아 붙인다.

마치 악이 받치는 사람 같다.

자기의 거처로 돌아가서도 반금련은 도무지 언짢은 심사가 가라앉질 않았다.

오늘 희한하게도 맹옥루와 둘이서 동성의 쾌락을 즐기게 된 터이라

마냥 유쾌하기만 할 텐데,

관간가 뭔가 고 녀석 때문에 기분을 망가뜨려 억울하기까지 했다.

춘매에게 안주를 한 접시 만들어 오도록 해서 술이라도 몇 잔 마셔야

속이 좀 누그러질 것 같아 그녀를 불렀으나 누구한테 놀러 라도 간 듯 없었다.

“이년은 또 어딜 갔지?”

반금련은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 뱉는다.

 

 

백사자 10회 

 

 

 

 몸종까지 속을 썩이는 걸 보니 오늘 일진이 옴 올랐구나 싶으며

 

반금련은 거실의 의자에 털썩 궁둥이를 내린다.

고양이가 마치 반금련의 그런 심기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한쪽 다리 곁에 바싹 붙어 앉는다.

 

그리고 파르스름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빨간 혓바닥을 가지고

 

치마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발목의 하얀 맨살을 살살 핥는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야웅야웅... 하다가 곧 오홍오홍... 하고 묘한 소리로 바뀐다.

 

제가 위로를 해드릴까요 하는 의사 같다.

 

 




반금련은 대뜸 고양이의 그 뜻을 알아차린다.

늘 고양이와 둘이 지내면서 밤으로는 한 이부자리 속에서 같이 자는 터이라

사람과 짐승이 절로 의사가 소통된 셈이다.

“싫어. 저리 가”

반금련은 고양이를 툭 차버린다.

“야웅” 하면서 고양이는 얼른 일어나 반금련을 헬끗이 돌아보고는

저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등을 돌리고서 웅크리고 앉는다.

잠시 반금련은 부은 듯한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 듯 고개까지 살짝 숙인다.

그러다가 가만히 얼굴을 들어,

“백사자야”

하고 부른다.

고양이가 돌아본다.

“이리 와봐”

한손으로 손짓을 해 보인다.

마지 못하는 듯 고양이는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다시 다가온다.

 앞에 와서 멀뚱히 쳐다보고 서있는 고양이에게 반금련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백사자야, 내가 심정이 상해서 살수가 없구나. 난 왜 아이를 못 낳지. 응?”

고양이가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야웅-”

부드러운 소리를 흘린다.

“너도 아까 봤지.

그 아기가 관간데,

이병아가 낳은 거라구.

이집안의 대를 이을 사내 녀석이지.

내가 낳은 아들이 대를 이어야 될텐데,

다 틀렸지 뭐야.

난 낳지도 못하니... 정말 난 슬프다구”

고양이는 꼬리를 조금 움직일 뿐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내질 않는다.

반금련의 슬픈 표정에 저도 가슴이 좀 멍멍해지는 듯 말이다.

“백사자야, 내 심정을 솔직히 말할까.

너만 알고 있어. 절대 비밀이야.

난 말이지 관가가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어.

정말이라구. 못 먹는 감 찔러나 놓는다는 심보지.

내 심정 너는 이해할 거야. 이해하지? 어때 대답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