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58) 야행(夜行)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12:11

금병매 (158)

 

 

야행(夜行) 11회 

 

 

 

 애저를 본 서문경은 대뜸,

“됐어, 됐다구. 엄마를 닮아서 미인이야”

 

하고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에 애저는 방글 미소를 지으며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떨어뜨린다.

왕육아는 눈매에 절로 어색한 빛이 떠오른다.

그러나 애써 예사로운 어조로 말한다.

“대감 나리, 그럼 딸애와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아직 가만있어요. 잠깐 얘기를 나누어 봐야지요”

서문경은 시치미를 뚝 떼고 점잖게 경어로 말한다.

한도국의 앞이니, 말하자면 부하의 아내에게 말을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어조에 한도국은 속으로 서문경에게도 역시 점잖은 면이 있기는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자, 그렇게 서있지 말고, 모두 앉도록 하구려”

“예”

한도국이 대답을 하고서 의자에 궁둥이를 내린다.

그러나 왕육아와 애저는 그대로 서있다.

내실에는 의자가 두 개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자를 더 가지고 와서 앉아요”

서문경이 왕육아에게 말하자,

애저가 의자를 가지러 나가려는 듯이 엄마를 힐끗 바라 본다.

그러나 왕육아는,

“괜찮습니다. 대감 나리, 저희는 서있죠 뭐. 어서 말씀을 하시지요”

하고 말한다.

서문경이 애저에게 묻는다.

“열다섯 살이라지?”

“예”

“그런데 키가 거의 엄마만 하군”

그 말에 한도국이 얼른 입을 연다.

“키만 멀쑥하게 컸지, 아직 철도 덜 들었지 뭡니까”

서문경은 들은 척 만척하고, 다시 불쑥 묻는다.

“이름이 뭐라더라?”

“애저예요”

“애저라... 이름도 좋군. 동경으로 시집가고싶지?”

“예, 히히히”

그러자 한도국이 또,

“보십쇼. 저게 저렇게 철이 없다구요”

하면서 조금은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솔직해서 좋군 그래. 허허허...”

왕육아는 멋쩍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없이 서서 빨리 얘기가 끝나기기만을 기다린다.

“애저야, 이미 얘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만,

네가 시집가는 자리가 아주 대단한 자리라구.

너의 남편 될 분이 누군가 하면 채태사의 집사야. 집사가 뭔지 아니?”

 

 

야행(夜行) 12회 

 

 

 

 “예, 압니다. 집안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래. 그런데 집안일을 맡아서 처리해도 보통 사람의 집안일이 아니라,

 

채태사라는 황제폐하 다음가는 권세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어른의 집안일을 맡고 있으니, 그분도 세력이 대단한 셈이지.

 

그러니까 네가 시집가서 잘하면 너의 아버지에게 조그마한 감투쯤은

 

하나 씌워드릴 수 있을 거라구”

 




“어머나, 그래요?”

애저는 놀라며 두 눈을 반짝인다.

“그리고 네가 그분의 아들만 낳는 날이면 호강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고,

아버지에게도 재물도 얼마든지 내려보내드릴 수 있을 거야”

“아이 좋아라”

역시 열다섯 살짜리답게 천진하다.

“됐어. 그럼 동경으로 시집 갈 준비를 서두르라구.

그쪽에서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며칠 안에 출발을 해야 하니까”

서문경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왕육아가 서슴없이 입을 연다.

“아직 시집보낼 아무 준비도 안해놓았는데, 어떻게 며칠 안에 출발을 하지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준비할게 뭐 있나요. 그저 몸만 가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서문경은 한도국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그 대신 아버지는 반드시 따라가야 된다구”

‘아버지는 반드시 따라가야 된다’ 는 말에 왕육아는 속으로 아,

그렇구나, 이 양반이 좋은 방법을 강구한다더니 바로 그게 틀림없구나 싶다.

한도국이 입을 뗀다.

“동경까지 갈려면 노자도 꽤나 많이 들텐데, 걱정이네요”

“어허, 그런 걱정은 말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챙겨 준다구”

“아이구 죄송해서...”

절로 한도국의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들고 또 걱정을 늘어놓는다.

“저는 아직 한번도 동경엘 가보지 못했는데, 애저를 데리고 저 혼자서 어떻게 가지요?”

“자네 참 걱정도 많네. 누가 자네 혼자서 데리고 가라 그러던가?

그리고 시집가는 신부가 걸어서 가는 법이 있는가? 가마를 태워서 보내야지”

“동경까지요?”

"물론이지“

그러자 애저가 또

“아이 좋아”

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야행(夜行) 13회 

 

 

 

 “대감 어른, 이거 정말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하지요?”

“난 이일이 내 일과 마찬가지니, 너무 그렇게 고마워할 거 없네”

 




그러자 왕육아도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절까지 하면서,

“정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대감 나리”

하고 말한다.

서문경은 말없이 그저 싱그레 웃는다.

속으로 매우 재미있다 싶은 것이다.

둘 사이의 은밀한 감정은 깊이 묻어둔 채 한도국의 아내,

그리고 애저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능청스럽게 해내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한 말에는 새삼스럽게 ‘당신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 는

그런 뜻도 담겨있는 듯해서 기분이 흐뭇하다.

“여보, 집에 술이 있어?”

한도국이 왕육아에게 묻는다.

“없는데요”

“그럼 애저를 시켜 얼른 특급주를 한병 사가지고 오도록 하라구.

그리고 서둘러 안주도 좀 만들고...”

“예, 그러죠. 그럼 대감 나리,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왕육아가 서문경에게 공손히 절을 한다.

그리고 모녀가 내실에서 나가려하자, 서문경은 불쑥 입을 연다.

“그만둬요. 별로 술 생각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제부터는 애저를 아무데나 함부로 내보내지 말라구요.

특히 밤으로는 절대로 혼자서 외출을 시켜서는 안돼요. 알겠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대감 나리, 제가 가서 술을 사가지고 올께요”

“그만 두라니까요. 아주머니도 밤으로 혼자 밖에 나가면 안된다구요.

어떤 세상인데 여자가 밤에 혼자서...”

“그럼 애저하고 둘이서 갔다오죠 뭐”

“안돼요. 밤에는 여자만 둘이 다니는 것도 좋지 않다구요”

그러자 한도국이 눈치를 알아챈 듯,

“제가 갔다 오지요”

하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서문경은 그제야 마지 못하는 듯,

“별로 술 생각이 없는데... 좋아, 그럼 자네가 얼른 갔다 오게. 몇 잔만 마시고 가기로 하지”

하면서 싱그레 웃는다.

술을 사러 나가는 남편에게 왕육아는 안주를 만들 고기도 좀 사오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자기는 주방으로 가서 우선 있는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안주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애저는 너무 기분이 들떠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듯 자기 방으로 가 아직 철이 덜 든

열다섯 살짜리답게 창문을 열어놓고 밤하늘을 내다보며 감미로운 연가를 흥얼거린다.

 

 

야행(夜行) 14회 

 

 

 

 똥땅똥땅 똥땅똥땅... 주방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문경은 공연히 기분이 좋은 듯 혼자서 싱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잠시 후 의자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방을 나간다.

똥땅똥땅... 칼질하는 소리가 멎는다.

그러자 한쪽 방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애저가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구나 싶으며 서문경은 가만가만 주방 쪽으로 간다.

 




“여보”

낮은 목소리로 부르며 서문경은 주방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어머나”

약간 당황하듯 왕육아는 서문경을 돌아본다.

“며칠만이지?”

“너무 놀랬지 뭐에요. 당신이 우리집엘 직접 오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왕육아는 두 눈에 나긋한 미소를 떠올리며 속삭이듯 말한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면서 서문경은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돌아선 채 가만가만 계속 일손을 놀리고 있다.

서문경은 그만 그녀를 뒤에서 지그시 끌어안는다.

“어머, 점잖지 못하게...”

그녀는 살짝 뒤돌아보며 눈을 곱게 흘긴다.

서문경은 두 손으로 그녀의 뭉클한 앞가슴을 어루만지고,

아랫도리는 벙벙한 엉덩이에 밀착시켜 가만가만 밀어붙인다.

“아으... 이러지 말아요. 남편이 돌아온단 말이에요”

“음...”

나직한 신음소리가 서문경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애저가 나와요”

왕육아가 놀라며 다시 냅다 똥땅똥땅... 칼질을 시작한다.

서문경도 얼른 그녀에게서 떨어져나가 주방 입구로 물러선다.

애저가 방에서 나와 이쪽으로 오는 기척이 나자,

서문경이 점잖은 목소리로 커다랗게 말한다.

“아주머니, 나 목이 마른데 차부터 우선 한잔 줘요”

“예, 대감 나리 곧 차를 가져다 드릴 테니 방에 가 계세요”

일부러 애저 들으라고 왕육아도 큰소리로 능청스럽게 지껄인다.

그러자 다가온 애저가 두 눈에 생글생글 웃음을 띠며,

“대감 나리, 제가 차를 가져다 드릴께요. 방에 가셔서 앉아 계시지요”

하고 말한다.

싱그레 웃어 보이며 서문경은 점잖게 다시 내실로 간다.

 

 

야행(夜行) 15회 

 

 

 

 한참 뒤에 내실에 술자리가 마련되어 서문경과 한도국이 마주앉았다.

 

한도국이 따라준 특급주를 서문경이 쭉 들이켜고 있는데,

 

왕육아가 마지막 요리인 듯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다란 접시를 들고

 

들어와 탁자 한가운데 놓는다. 그리고,

“대감 나리, 안주는 시원찮지만 많이 드시지요”

 

 하고는 방에서 나가려 한다.

 




그러자 서문경이 불쑥 말한다.

“아주머니도 이리 와 앉아요. 의자를 하나 가지고... 같이 한 잔 합시다”

“아니예요. 저는 술을 못해요”

왕육아가 사양을 하자, 서문경은 한도국을 보고 농반진반인 그런 어투로 투덜거린다.

“남자만 둘이서 이거 뭐 술맛이 나나. 안 그래? 자네 어떤가?”

눈치 빠른 한도국이 얼른 입을 연다.

“여보, 의자를 하나 가지고 이리 오라구.

 대감 어른께 당신이 술을 한잔 따라드려야지”

꽤나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왕육아는

방에서 나가더니 곧 의자를 한 개 들고 도로 들어온다.

마지 못하는 듯 네모진 탁자 쪽으로 다가와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그 옆쪽편에 의자를 놓고 가만히 궁둥이를 내린다.

그러니까 서문경과 남편의 중간 거리에 앉은 셈이다.

서문경이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켠다.

그리고 빈 잔을 탁자에 놓고는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왕육아는 그저 다소곳이 앉아 보고 있을 뿐이다.

“여보, 어서 대감 어른께 술을 따라드려”

한도국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제야 왕육아는 마지 못하는 듯 술병을 두 손으로 집어 든다.

서문경도 빈 잔을 든다.

왕육아는 입장이 매우 난처한 듯 묘한 표정으로 술을 따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편 앞에서 말하자면 간부의 잔에 술을 따르는 터이니 말이다.

그러자 서문경은 조금도 어색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기분이 좋기만 하듯

능글능글한 웃음까지 살짝 떠올리며 그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간부와 그 남편을 한 자리에 데리고 앉아서 술을 마시니

매우 색다른 재미가 있다는 듯이,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를 전혀 모르는 한도국은 그저 예사롭게 자기도 술잔을 든다.

쭉 잔을 비운 서문경은 서슴없이 왕육아 앞으로 내밀며,

“자, 아주머니도 한 잔 해요”

하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