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40) 경사(慶事) <51~55회>

오늘의 쉼터 2014. 7. 2. 15:40

 

금병매 (140)

 

 

경사(慶事) 51회 

 

 

 

 잠시 후 반금련은 그 태 보자기를 들고 주방을 찾아갔다.

 

고요한 한밤중에 그녀는 혼자 주방에서 조심조심 딸그락거리며

 

그 태로 말하자면 불고기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먼저 꺼덕꺼덕 언 태 보자기를 불에 녹여서 태를 따로 떼냈고,

 

때낸 태 뭉텅이를 다시 번철에다가 흐늘흐늘 해지도록 녹였다.

 

그리고 그것을 도마 위에 옮겨 먹기 좋도록 도막도막 썰었다.

 

 




꼭 새끼 돼지 창자를 요리하는 것 같았다.

반금련은 그것을 어떤 식으로 요리하는 게 먹기에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안되지, 그냥 구워서 먹어야지”

그녀는 혼자 중얼거린다.

무당이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한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시킨 대로 해야지,

맘대로 요리를 해서 먹었다가는 효험이 없을지도 모른다 싶어서

그녀는 도막낸 태를 석쇠 위에 얹어서 불에 굽기 시작한다.

곧 지지지지... 소리를 내며 기름이 튀고, 냄새가 콧구멍을 찌른다.

흡사 돼지 창자를 굽는 것 같은 냄새다.

그것이 아기의 태라고 생각하니 반금련은 징그러워서 목이 찔끔 움츠러들면서도

입안에는 절로 군침이 돈다.

냄새가 너무 구수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다 구워진 태를 그릇에 담으니 큰 접시에 제법 수북이 한 접시다.

그것을 들고 살그머니 주방을 나서는데,

어디선지 별안간 꼬꾸댁 꼭꼬-첫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 깜짝이야”

반금련은 마치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놀란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는 격이다.

거실로 돌아온 반금련은 그 말하자면 태구이 요리를 탁자에 놓고,

소금 종지와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앉았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그 태구이 한 도막을 집어 소금에 찍어서 입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징그러운 생각이 들어서 절로 또 목이 움츠러든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못할까 하고 질끔 눈을 감고

입을 딱 벌려 얼른 그것을 입안에 집어넣어 와작와작 씹는다.

그리고 꿀컥 목구멍으로 넘겨 버린다.

삼키고 난 그녀는 온통 얼굴을 찡그리며 버르르 몸서리를 친다.

 말하자면 사람의 고기를 먹은 셈이니 그럴 수 밖에.

한 도막을 먹고 벌써 질려버린 반금련은,

“옳지, 그래야지”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독한 고량주를 가지고 온다.

 술을 마시고, 안주로 먹으면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경사(慶事) 52회 

 

 

 

 고량주를 두 어 모금 마시고나서 안주삼아 태구이를 한 도막 입에 넣어 씹으니

 

역시 기분이 안 좋기는 하지만 처음보다는 한결 낫다.

도수 높은 술을 두잔째 기울이며 그것을 먹을 때는 이제 맛까지 음미할 수가 있었다.

 

소나 돼지의 창자를 구우면 먹기가 질긴데,

 

태는 창자와는 다른 듯 삼박삼박 연하게 씹혔고, 맛도 구수해서 괜찮았다.

 

 




주기가 올라 눈앞이 아른아른해 오자,

반금련은 태구이 안주를 두 도막 세 도막씩 입에 넣어 불룩불룩 맛있게 씹어 댔다.

그것 참 별미라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남들이 다 잠든 깊은 밤중에 혼자서 두 눈을 반질거리며 태구이를 먹어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식인녀(食人女)같았다.

그렇게 태까지 먹으며 아들 갖기를 염원했으나,

반금련은 다음 달도 생리가 멎질 않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서서히 무르익는 어느 날 오후, 큰 잔치가 벌어졌다.

서문경의 아들 관가(官哥)의 마지막 이렛날이었다.

아기의 이름을 역술가가 관가라고 지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서문가(西門家)의 대를 이을 남아 탄생의 축하연이 펼쳐진 것이었다.

서문경은 근년에 드물게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현내의 유지들,

그리고 몇몇 고관들까지 초대하여 대대적으로 연회를 벌였다.

서문경의 오른편에 정실인 오월랑이 앉고,

왼편에 이병아가 일곱 이레 된 아이를 안고 앉았다.

비록 남편의 왼편에 앉기는 했지만,

아들을 낳는 바람에 이병아는 이제 서문가의 여왕격이었다.

모든 시선들이 그녀와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곧잘 집중되었고,

득남의 찬사가 그녀에게 모아졌으며,

주연이 서문경보다 오히려 그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절로 다른 부인들은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맹옥루만은 잉태를 해서 배가 꽤나 불룩해진 터이라

조금도 풀이 죽을 까닭이 없지만 말이다.

부인들의 그런 표정을 보고서 술이 거나해진 축일념(祝日念)이

 커다란 목소리로 서문경에게 물었다.

“여보게 자네, 소문을 들으니 마누라들한테 아들낳기 시합을 시켰다면서? 그게 정말인가?”

서문구걸 중에서 술에 취하면 거침없이 입을 놀리기로 이름이 나있는 친구인지라 서문경은,

“그런 소문이 났던가? 허허허...”

웃어 버린다.

 

 

경사(慶事) 53회 

 

 

 

 “웃는 걸 보니 정말인 모양인데...

 

자, 그러면 일등은 이병아 부인이고, 이등은 어느 부인이 하실까?”

축일념은 주기가 올라 번들거리는 눈으로 서문경의 양쪽에 세 사람씩

 

나란히 앉은 부인들을 쭉 훝어본다.

 

 




다른 하객들의 시선도 부인들에게 집중된다.

서문경은 저 친구 또 시작이구나 싶었으나, 그저 싱글싱글 웃는다.

이병아도 저 양반 농담이 좀 지나치지 않나 싶으면서도 자기는 일등을 했으니

기분 나쁠 것은 없어서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다른 네 부인들은 대체로 모두 표정들이 좋지가 않다.

뭐 저런 무례한 사람이 다 있나 하는 그런 기색들이다.

그중에서 특히 반금련은 못마땅한 듯

초승달 같은 두 눈을 더욱 가느다랗게 해가지고 쏘아본다.

“여보게, 자네는 짐작을 할 거 아닌가, 몇 번째 부인이 이등을 하겠어?”

“글쎄, 세 번째 마누라가 임신을 했으니까, 아들을 낳기만 하면 이등이겠지”

“아, 그런가. 세 번째 부인이 어느 분이시더라...”

그러자 맹옥루가 축일념을 향해 멋쩍은 듯이 웃음을 띠어 보인다.

“저분이시구먼. 미리 축하를 드릴테니 부디 아들을 낳아서 이등을 하시라구요”

그 말에 그만 반금련이 발끈해지며 냅다 쏘아붙인다.

“아니, 아무리 술에 취했지만 농담이 너무 지나치군요. 듣고 있을 수가 없다구요”

“농담이 아닙니다. 진담이라구요”

“당신이 뭔데 남의 부인들 앞에서 일등이니 이등이니 그따위 건방진 소리를 하나요.

실례 되는 줄도 모르는가요?”

“남이 아니라 친구라구요. 친구의 부인한테 농담도 못하나요?”

“농담도 농담 나름이란 말이에요. 기분 나쁘다구요”

“아하, 이등을 못해서 기분 나쁘다 그거군요”

“그러자 옆에 앉은 상시절(常時節)이 축일념의 옆구리를 콱 쥐어박으며,

“이 사람아, 그만!”

너무 심하다는 듯이 말린다.

“뭐라구요? 아이 속상해. 뭐 저런 남자가 다 있어. 술을 먹었으면 입으로 먹었지,

밑구멍으로 처먹었나, 모하는 소리가 없네”

반금련은 마구 반말로 내뱉으며 밖으로 나가버리려는 듯 자리에서 발딱 일어선다.

장내가 떠들썩해진다.

바로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하인 하나가 관원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섰다.

“주인어른, 관가에서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답니다”

 

 

경사(慶事) 54회 

 

 

 

 “뭐 , 기쁜소식?”

서문경은 난데없는 일에 약간 어리둥절하면서도 활짝 표정이 밝아진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방문 쪽으로 향한다.

자리를 뜨려던 반금련도 멈추어 서서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히 그쪽을 바라본다.

관원은 서문경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서찰을 건네면서 말한다.

“지사님께서 갖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응, 그래?”

서문경은 서찰을 받아 펼쳐본다.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야- 이게 왠일이냐, 이거 정말 뜻밖인데..”

서찰을 다 읽고난 서문경은 그만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내지르며 냅다 외치듯이 말한다.

“여보, 무슨 일인데요? 어디 좀 봅시다”

오월랑이 서찰을 받아 읽어본다.

그녀가 더 호들갑스럽게 놀란다.

“어머나, 어머나, 이게 정말 웬일이죠? 예? 햐-”

그러자 장내의 모든 하객들은 무슨 영문인가 싶어 수군거린다.

오월랑이 하객들에게 큰소리로 소식을 알린다.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집 어른께서 제형소(提刑所)의 부전옥(副典獄)이 되셨지 뭐예요”

그말이 떨어지자 부인들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환성을 내지른다.

기분이 상해서 퇴장을 하려던 반금련도,

“어머나, 그래요? 와-”

활짝 표정이 밝아지며 좋아서 못견딘다.

장내의 하객들도 놀라 떠들썩해진다.

방금 반금련과 티격태격하던 축일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야- 우리 친구가 부전옥이 되다니, 신난다-”

하고 냅다 큰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빈 잔을 들고 얼른 서문경에게 다가가,

“축하하네. 정말 축하해. 이사람아,

큰 감투를 썼으니 앞으로 날 좀 잘 봐주게. 알겠지?

자, 내 잔 받게나” 하면서 잔을 권한다.

기분이 너무 좋은 판이라 서문경은,

“암, 봐 주고 말고, 허허허...”

껄껄 웃으며 그 잔을 받는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우르르 일어나 빈 잔들을 들고 서문경에게 몰려간다.

관가의 몇몇 고관들도 의관을 고치며 일어난다.

득남 축하연이 그만 서문경의 등용(登龍)축하연으로 변한 셈이다.

 

 

경사(慶事) 55회 

 

 

 

 이튿날 아침, 서문경은 의관을 정제하고 말을 타고 현청으로 지사를 찾아갔다.

 

지사의 서찰에 동경의 조정(朝廷)에서 귀공(貴公)을 산동(山東)제형소의 부전옥으로

 

임명하는 사령서(辭令書)가 하달 되었으니

 

내일 아침 현청으로 나와서 받아가라는 사연이 축하의 인사와 함께 적혀 있었던 것이다.

지사는 서문경을 반가이 맞이하며 사령서를 건네주며

 

 




“진심으로 축하하오. 앞으로 서로 협조해서 잘 해 나갑시다.

그리고 양태사(揚太師)께서 귀공께 안부를 전하라는 분부가 있었다는구려.

사령서를 가지고 온 조정의 송달리(送澾吏)가 그러더라구요”

이렇게 말했다.

난데없이 산동제형소의 부전옥으로 임명이 됐다는 소식을 어제 서찰에서 읽고

서문경은 대뜸 동경에 있는 양태사가 내려준 특별 등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종사촌 자형인 양제독(揚提督)이 몇 달 전에 내각(內閣)에 중용되어 병무(兵務)를

총괄하는 태사가 되었던 것이다.

중신(重臣)들 사이의 세력 다툼이란 무상한 것이어서 반역죄로 몰려 옥에 갇혔던

양제독은 자기네 붕당(朋黨)이 정쟁(政爭)에서 이기자 무사히 출옥했었는데

이번에는 제독에서 태사로 오히려 그 직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서문경은 너무나 기뻐서 값진 선물을 보내어 축하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양태사로서는 이종사촌 처남인 서문경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해마다 생일날 그냥 넘기는 일이 없었고 이번에도 축하의 선물을 보내왔을 뿐 아니라

자기가 국사범으로 옥에 갇혀 있을 때는 딸 교랑(巧硠)과 사위 진경제(陣經濟)를 숨기듯이

데리고 있어 딸처럼 여겨 전당포 일을 맡기고 있으니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태사의 직위에 오르자

그 보답으로 서문경에게 특별 등용의 은전을 베풀었던 것이다.

황제는 양제독을 태사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석장의 백지(白紙)사령서를 하사했다.

백지 사령서란 황제가 옥새(玉璽)만 찍어서 주는 것으로 그것을 받은 신하가 마음대로

거기에다가 관직과 성명을 써서 누구에게나 발령을 내릴 수가 있는 그런 것이었다.

다만 지방 관아(官衙)에 한해서였고 또 책임자가 아닌 그 밑의 직위에만 가능했다.

아무 관직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대번에 우두머리가 되는 감투를 씌워줄 수는 없어서

그런 제한을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문경이 부(副)자가 붙은 발령을 받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