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38) 경사(慶事) <41~45회>

오늘의 쉼터 2014. 7. 2. 12:40

금병매 (138)

 

 

 

경사(慶事) 41회 

 

 

 

 서문경은 과연 그전과는 많이 달랐다.

 

아내들과의 약속대로 순번을 지켜 꼬박 꼬박 씨를 뿌려 주었다.

 

그전 같으면 약속이고 뭐고 오래지 않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서

 

다시 기분 내키는대로 놀아날 터인데 말이다.

송혜련의 자살이 말하자면 충격 요법이 되어 그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반금련 다음 차례는 오월랑이었는데, 정실인 그녀는 남편과의 동침을

그저 그전과 별다름없이 자연스럽게 가졌다.

굳이 또 잉태를 해서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그런 욕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더운 여름밤이어서 비취헌이 커다란 욕조속에 남편과 함께 들어가

서로 몸을 씻어주기도 했지만, 결코 물속에서의 정사 따위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정사는 장난이 아니니, 어디까지나 격식대로 치러야 된다면서 침상으로 남편을 이끌었다.

그런 그녀를 서문경은 역시 여느 여자들과는 다른 데가 있다싶으며 내심 무척 흐뭇하게 여겼다.

오월랑 다음은 이병아였는데, 그녀 역시 자기차례가 되어도 평상시와 별로 다를바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임신을 한 몸이라,

경쟁심 같은게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정사가 부담스러운 듯한 태도였다.

그래서 서문경은 하룻밤만 그동안의 외로움을 조심스러운 자세로 덜어주고,

그다음 날 밤에는,

“여보, 당신은 임신도 했고 하니 혼자 자도 되는 거지?

덥기도 한데 둘이 같이 자는게 오히려 지겹잖아?”

이렇게 넌지시 말을 꺼내 보았다. 그러자 이병아는,

“호호호... 당신 좋을대로 하시라구요”

쾌히 응낙을 했다.

그래서 서문경은 이병아몫의 나흘밤을 은밀히 손설아를 찾아가 그녀에게 씨를 뿌려 주었다.

자기가 말한대로 그녀를 각별히 위해 주는 셈이었다.

맹옥루와 이교아는 기녀출신이지만, 본래 무던한 성품이어서 씨를 받는 차례가 되어도

반금련처럼 방정을 떨지도 않았고, 손설아처럼 안달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의 정사때와는 좀 달리 씨를 정성껏 받으려는 듯 열을 올렸고

남편을 그전보다 한결 소중히, 그리고 정겹게 대했다.

그전에는 하룻밤 자고가면 또 언제 남편구경을 할지 기약할 수가 없어서

안타깝고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닷새 동안을 계속 동침을 하는터이라 월등히 흡족했고,

또 순번이 다 끝나면 다시 제비뽑기를 해서 차례를 정하여

닷새동안 호강을 하게되어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경사(慶事) 42회 

 

 

 

 모두 한 차례씩 오일간의 씨받이가 끝나자,

 

부인들은 다시 제비뽑기를 해서 새로 순번을 정했다.

 

서문경은 아내들과의 약속을 지켜 다시 그 차례대로 씨를 뿌려 나갔다.

서문경이 아내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좇는 것은 그녀들보다 오히려 자기가 더 간절하게

 

아들 갖기를 소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을이 다가와 우수수 부는 바람결에 낙엽이 흩날리기 시작하자,

서문경은 타고난 일종의 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람기가 또 꿈틀거려서 견딜 수가 없어

곧잘 바깥으로 나돌았다. 물론 서문구걸들과 어울려 기방을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내들과의 약속을 송두리째 져버리지는 않았다.

간혹 한 번씩 외박을 하는 일은 있어도 그 순번을 어기지 않고 지켜 주었다.

반금련의 차례 때에 혹시 외박을 하는 일이 있으면 그녀는 어디 가서 누구하고 자고 왔느냐고,

만약 내가 아이를 못 가지더라도 그건 당신이 약속을 위반한 탓이니

그쯤 알라는 식으로 강짜를 부리며 어거지를 썼다.

그러나 다른 부인들은 자기 순번 때에 서문경이 외박을 해서 하룻밤쯤 씨를 못 받아도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러면 그렇지, 그양반이 별수 있겠냐고 씁쓰레하게 웃기도 하며 그정도로나마 순번을

어기지 않고 계속 약속을 지켜나가는 게 도리어 신통하다는 그런 반응들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무렵,

이미 임신을 하여 만삭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병아는 예외로 하고,

그 동안 비교적 공정하게 골고루 씨를 받은 다섯 부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임신이 되었다.

 맹옥루였다.

아이를 가지려고 별로 아등바등하지도 않았는데,

용케 씨 하나가 터를 잡아 싹이 텄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서문경은 무척 기뻐서 이병아 때와 마찬가지로 당장 축하연을 베풀려고 했다.

그러나 당자인 맹옥루는 완강히 사양을 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부인들의 심정을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축하연을 벌인다 해도 결코 축하의 분위기가 되지 않는다면서,

이병아의 임신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다르기는 뭐가 다르지?”

서문경이 묻는 말에,

“그때는 아들 낳기 경쟁을 시작하기 전이잖아요.

그러니까 모두 부럽고, 조금 기가 죽으면서도 축하할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구요.

축하는 고사하고 속으로 오히려 미워서 못견딜 거예요.

그런 심정을 이해해야죠.

나중에 정말 아들을 낳으면 그때 축하연을 벌여도 늦지 않다구요.

그래야 나도 떳떳하구요”

맹옥루는 이렇게 대답했다.

 

 

경사(慶事) 43회 

 

 

 

 평소에 있는 둥 마는 둥 그 존재가 희미했던 맹옥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너무나 지당하고 속이 깊은 말이어서 서문경은,

“아하, 그래? 그럼 그러지. 흠-”

 

하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이번에는 반금련이 임신을 했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있어야 할 생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히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서문경은 점잖게 묵살을 했다.

“맹옥루도 임신을 했는데, 축하연을 안했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안하는 게 옳지”

“맹옥루는 자기가 안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안하겠다는 사람은 그만두고,

하겠다고 원하는 사람은 해주는 게 옳잖아요”

“안 그렇다구. 누구는 안했는데, 누구는 하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구.

그리고 공평한 처사도 못 되고... 안 그래? 허허허...”

반금련은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눈을 짓궂게 흘기고, 입을 삐쭉거리면서 속으로,

"흥! 언제부터 자기가 그렇게 공평한 처사 좋아했지?“

하고 이죽거렸다.

그런데 다음 달 반금련은 생리가 있었다.

어쩌다가 몸이 안 좋았던지 한 달 그것을 걸렀던 것이다.

반금련은 무척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며,

“뭐 이래. 참 더럽네. 축하연을 베풀었더라면 큰 망신을 할 뻔했지”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그녀는 임신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질 않았다.

나중에 낙태를 했다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변명을 하든지,

그렇지 않고 진짜로 곧 임신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해가 바뀌어 신년이 되었다.

새해가 되면 언제나 관습적으로 서문경은 일년 신수(身數)를 보는데,

역술가(易術家)의 말이 동방의 떠오르는 해가 집 대문에 비치는 격이라면서,

정월에서 삼월 사이에 두 가지 큰 경사가 있을 대길(大吉)한 운수라는 것이었다.

그 예언이 틀리지 않는 듯 이병아는 정월이 다 가기 전에 아들을 순산했다.

그녀가 해산을 한 것은 축시(丑時)였는데,

그 자정이 지난 한밤중까지 서문경은 잠을 이루지 않고,

산모가 진통을 계속하는 옆방에서 소식을 기다리며 떠나질 않았다.

그런 서문경을 보고 해산바라지를 하던 의원이나 몇몇 하녀들은 주인어른에게

그런 지극한 일면도 있었던가 하고 내심 감복을 하기도 했다.

 

 

경사(慶事) 44회 

 

 

 

 산모의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첫닭이 울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혼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서문경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듯했다.

 

얼른 술잔을 놓고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러나 차마 옆에 있는 산실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문 밖에서 머뭇거렸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며 황급히 하녀가 나타났다.

 

바로 서문경에게 소식을 알리려고 뛰어나오는 참이었다.

 




“아이고 주인어른, 아들입니다요, 아들!”

그 하녀는 희색이 만면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오, 그래? 야- 신난다. 이게 웬 일이지? 와”

서문경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냅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얼씨구 좋다, 정말 좋구나. 나에게 아들이 생기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얼씨구절씨구...”

절로 노랫가락도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병아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은 이튿날 날이 밝자 곧 온 집안에 퍼졌다.

근래에 드문 큰 경사라고 모두들 기뻐했다.

물론 다섯 부인들도 모두 얼굴에 희색을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내보이는 표정이었고, 속마음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기분들이 씁쓰레했고, 특히 반금련과 손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기까지 했다.

이병아가 아들을 낳아버려서 그녀들은 이제 모두가 패자(敗者)가 되어버린 셈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맹옥루를 제외하고 자기네들은 아직 임신도 못한 터이니 말이다.

반금련은 유산을 한 것으로 그때는 모두에게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서문경은 이튿날 당장 대대적인 축하연을 베풀려고 했다.

그러자 오월랑이 만류를 했다.

“왜 그러지? 아들을 낳았으니 축하연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잖아”

“물론 당연하죠. 그러나 그렇게 급히 서둘 일이 아니라구요.

산모는 아직 기진맥진해서 늘어져 누워 있는데,

우리들만 부어라 마셔라 하고 즐길 수가 있느냐 말이에요.

그건 축하가 아니잖아요”

“음- 하긴 그렇군”

“그러니까 산모도 건강을 되찾고,

아기도 좀 제 모습을 갖춘 다음에 축하연을 베푸는 게 옳아요.

그래야 산모가 아이를 안고 그 자리에 참석을 할 게 아니예요”

“당신 말이 옳다구. 그럼 언제가 좋을까?

“내 생각에는 마지막 이레 때가 좋을 것 같애요”

 

 

경사(慶事) 45회 

 

 

 

 “마지막 이레면 일곱이레 때 말이지?”

“그렇죠”

 




“그럼 보자... 칠칠이 사십구라, 앞으로 사십구일이나 남았네. 그렇게 미룬단 말인가?”

“그때 바깥손님들도 초대해서 축하연을 베푸는 게 어느 모로나 타당하다구요.

잔치를 대대적으로 베풀어도 명분이 서고 말이에요”

“맞아, 초대되어 오는 손님들도 당연한 일로 생각할 것이고...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서문경이 자기의견에 쾌히 따르자,

오월랑은 기분이 좋아서 한마디 덧붙인다.

“대대적인 축하연은 그때 벌이기로 하고, 축하주를 마시는 일이야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당신 기분을 위해서 우선 오늘 저녁에 우리끼리 한잔해도 좋고요”

“그러자구. 임신 축하연 때처럼 우리끼리만...”

“저녁 식사를 겸해서 해도 되겠죠?”

“되고말고. 그렇게 준비하라구”

득남을 해서 기분이 매우 좋은 터이라,

서문경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시원하게 응낙을 한다.

그날 저녁 서문경은 다섯 부인들과 함께 식사를 겸한 주연을 벌였다.

서문경으로서는 아들을 얻은데 대한 자축(自祝)의 자리라고 할 수 있었고,

부인들로서는 득남을 한 남편을 축하해주는 조그마한 잔치인 셈이었다.

아들을 낳은 당사자가 빠진 터이니 말이다.

아들을 낳지 않은 부인들이 남편의 득남을 축하해 주다니,

매우 특이한 주연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부인들은 대체로 그 표정은 밝은 편이었으나,

속은 결코 겉처럼 밝지가 못하고, 오히려 어두웠다.

경쟁에 저버린 처지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섯 부인들 가운데서 가장 심사가 뒤틀리고, 입맛이 쓰기만 한 것은 반금련이었다.

그녀는 이병아가 아들을 낳아 버린 게

마치 무슨 자기의 앞날을 가로막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가뜩이나 이병아가 자기 다음으로 들어와서 서문경의 애정을 빼앗아간 터이라

내심 늘 질투를 느껴왔었는데, 아들까지 낳아버렸으니

아직 임신도 못한 자기는 이제 보기 좋게 그녀에게 떠밀려난 꼴이 되어 버린 게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반금련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지 자기도 아들을 낳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그래야 좀 속이 풀리지,

그렇지 않고는 꼬치꼬치 말라 비틀어져버릴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이튿날 반금련은 무당을 찾아갔다.